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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생각

두 번의 임신 그리고 출퇴근길에 대한 기억

by 찐보아이

배가 부르지 않았던 임신 초기에 임산부 뱃지 없이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에 앉는 게 굉장히 눈치가 보였었다.

임산부 뱃지가 있어야 당당하게 앉을 수 있는 자리였다.

그나마 배가 부를만큼 불렀던 임신 후반기에는 뱃지가 없어도 당당했다.


두번의 임신.

그리고 그때마다

뚜벅이였던 나에게 너무나 소중했던

전철 내 임산부 배려석에 관한 기억.

배려의 공간으로

꼭 꺼내보고 싶었던 이야기.

임산부 배려석,

시~작!


#. 아니 왜 중년의 아쥬머니가....


전철에 타자마자 핑크색 임산부 배려석이 어디에 있는지 부터 두리번 두리번 거렸다.

출근시간, 정거장을 지나면 지날 수록 더 붐벼지고 밀려지는 것을 알기에 필사적으로 나는 앉아야 했다.

앉으면 밀려도 배가 닿거나 쪼여질 상황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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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철 딱 타면 임산부 배려석을 제일 먼저 보고 자리 없으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찾아 이동하고 또 이동했다.

필사적인 찾음에도 불구하고 못 찾았을 때 나는 임산부 배려석 앞에 뱃지 달고 서 있었는데

그 때마다

임산부 배려석에 임산부 아닌 사람이 제일 많이 앉아계셨던 순으로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1. 5~60대 중년 아주머니

2. 70~80대 할머니

3. 5~60대 중년 아저씨

4. 20대 남자

5. 누가봐도 임신한것 같지 않은 20대


1위가 5~60대 중년 아주머니였는데 너무나도 당당하게 앉아계신 모습에 "설마. 임신이실 수도 있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임산부 뱃지 달고 서 있어도 제일 안비켜주셨다.......흑.

혹시 임산부 배려석을 중년여성약자석으로 오해해도 한참을 오해하셨던 건 아닌지 생각될 정도였다.

2번도 마찬가지이다.

70~80대 할머니 앞에서는 오히려 앞에 서 있는 자체가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임산부인 내가 당당해야하는데 백발의 할머니 앞에서 내가 오히려 이유없이 숙연해지고 내 권리를 내세워지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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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1.2번은 죄송하지만 반성해주셨으면 좋겠다.


3번 ㅡ중년 아저씨가 앉아계셨던 경우를 이야기해보겠다.

어느 때 처럼 임산부 배려석 앞에 섰는데 앉아계신분이 5~60대 중년 아저씨였다.

비켜달라고 이야기 하기에는 좀 무서웠다.

요즘 아무리 멀쩡하게 생긴 사람도 이상한 경우도 많고 괜히 시비라도 붙으면 나만 손해인 것 같아서

앞에서만 서 있었다.

"비켜주면 고맙고, 아니면 오늘은 서서 가는 날인 걸로!"

이렇게 마음 먹었다.


이따금씩 직접 말 못하는 나를 위해 주변에서 얘기해주는 경우가 있었다.


"아저씨~~여기 임산부 자리에요. 앞에 임산부 있어서 좀 비켜주세요!"


이렇게 말해주는 분 덕분에 나는 아주가끔 앉을 수 있었다. 너무너무 고맙다.

얼마나 용기내어 말해주셨을지. 감사감사할 따름이다.

근데 이런경우도 흔하진 않다.


4번ㅡ20대 남자가 앉아있었던 경우.

나도 한번은 용기내어 말해보고 싶었다. 마침 임산부 배려석에 대학생처럼 보이는 남학생이 앉아있길래 한번 말해봤다.


나; "여기.. 임산부 자리인데요?"


남학생: "아닌데요!!"


나: 맞는데요...............(목소리가 작아졌다)


남학생:(뒤돌아보며) 아 죄송합니다. (비켜줌)


나: (휴우 모르고 앉은 거였구나. 근데 나 20대 남학생에게 왜 쫄았나............)



임산부가 되면 평소 한 성격하고 따질 것 다 따지는 면모도 괜히 약해지는 것 같다. 혹시나 아이에게 영향이 갈까봐 본능적으로 순해지는 건지. 20대 남자애가 나 딱 쳐다보면서 아닌데요?!!했을 때 조금 두근거렸다. (싸움의 시작이 될까봐)

근데 자기가 잘못 앉은 걸 알고 나한테 사과했을 때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임산부는 몸의 변화에 마음도 여려지는 것 같다.

(휴우)


어쨌거나 나의 두번의 임신시절 내가 바라보고 겪었던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기억은 여기까지 이다.


이제는 내가 임산부 배려석 주변에서 임산부가 있으면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도와준다. 내 앞에 자리가 나면 내가 앉지 않고 가방 맡아놓고 밀려있는 임산부를 데려다 앉혀준다.


그렇게까지 할 필욘 없지만,

2016년, 2021년 전철 속 필사적으로 앉을 자리를 찾다찾다 못 찾고 밀려 있던 그때의 나를 데려다 앉혀주는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1번2번.

5~60대 아주머니와 7~80대 할머니는

옛날에 갓난아이 안고 집을 나섰던 그 때의 자신을 회상했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 가끔 전철에 오래 서 있을 수록 너무나도 간절하게 앉고 싶을 때가 있다

한살 한살 나이먹을수록 정말 더 그런 것 같아서 1번2번이 마음으로는 백번천번 이해는 된다.


하지만

너무나 귀한 새 생명이다.


나 또한 품어보았고

품어주셨고

품어갈 사회속에 살고 있다.


공간의 배려가 제일 필요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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