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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자리작가 Nov 12. 2024

시인께서 말하시네요.  [봄이다. 살아보자]

[책] 봄이다. 살아보자


한 분이 시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그분은 어릴 때부터 시를 좋아해 힘들 때면 시집을 보며 스트레스를 풀 정도로 시를 좋아하시던 분이셨죠. 시에 대한 이야기는 좀처럼 듣기 힘들어 신기했어요. 책을 읽는 사람들이 드물기도 했고, 그중에서도 시를 즐기시는 분들은 잘 없었어요. 가끔 읽는다는 분들은 있었지만요.


저는 시가 어려웠어요. 싫어한 건 아닌데 시에 대한 해석이 너무 난해했죠. 특히 시를 접한 게 대부분 학교 수업시간이었으니 따분하다는 인식도 있었던 것 같아요. 차라리 직관적으로 다가온 노랫말들을 찾아다녔죠. 그렇게 시에 대해선 무관심하게 지내왔습니다.


이런 제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 주시던 그분은 시에 대한 다른 면에 대해 설명해 주셨고,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읊으며 시가 그렇게 어려운 까다로운 문학이 아니라는 걸 가르쳐줬습니다. 그렇게 시에 대한 작은 호기심이 생겨 책을 찾다 보게 된 책이에요.


그러다 시집인 줄 알고 고른 책이 이 산문집이었어요. 시를 닮은 제목 때문이었죠. 당황스러지만 이것도 인연이라 생각하며 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읽으며 시인이 쓴 에세이는 어떤 느낌일까, 시인의 마음은 어떤가. 상상하면서 읽어가니 마치 시인님과 소담을 나누 듯했습니다.




맞아요. 나는 이 ‘맞아요’ 소리만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틀린 사람이 아니고 맞은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


맞다는 말이 주는 안정감.

틀리다는 말일 밥 먹듯이 들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 맞다는 말을 들으려고, 내가 하는 말을 상대가 받아주는 그 기분이 너무 좋거든요. 그런 말이 몇 개 있지만 그중 ‘맞아요.’가 가장 대표 격인 말이죠. 가끔은 너무 철없이 바라기도 하지만 그렇게라도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내 존재가 부정적이지 않음을 느끼고 싶어요.


세상에 모든 것들은 정답이 없지만 그렇기에 내 생각에 대한 답이 있는가? 하는 고민이 있어요. 제 생각이 어떤가에 대한 대답 말이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걸 왜 좋아하는지에 대한 답을 갖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해봐요.


저는 제 생각이 없었거든요. 그게 편했어요. 다수가 모인 자리에선 어쩔 수 없이 논쟁을 할 때가 오는데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싫어 가면 가는 데로 오면 오는 데로 그렇게 살았어요.


단체 생활에 중도를 지킨다는 건 하나의 지혜지만 그런 생활로 인해 ‘나의 답’을 잃어버렸어요.  이게 좋아, 저게 좋아라고 하던 시절은 너무 어릴 때가 되었죠. 솔직한 모습을 나눌만한 사람도 오래된 것 같고요.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도 그런 제 답을 찾기 위해서이기도 하고요.



생텍쥐페리의 말이다. ‘사랑은 둘이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앉아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은 좋은 관계로 오래 함께 살아온 부부 사이를 말해주는 것도 같다.


엑셀부부를 보며

엑셀 부부라고 요즘 유행하는 말이 있는데 상대방과 자신의 재산, 노동을 엑셀로 정리해  서로가 공평하게 분담하여 생활하는 젊은 부부들을 일컫는 말이에요. 이들은 양가 부모님에게 드리는 용돈이나 생활비를 넘어 가사노동까지 수치화하여 마치 회사생활을 하 듯 나누며 살죠.


생택쥐페리의 말을 보며 그들이 떠오른 이유는 가치관 때문이에요. 부부가 서로 엑셀을 쓴다는 건 두 사람이 서로 합의 하에 같은 목표를 추구하고  살아가는 거죠. 생택페리쥐의 인용문처럼 그들은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사는 게 아닐까요? 서로가 추구하는 목표가 다른 걸까요? 처음엔 이 말을 듣고 왜 엑셀부부가 떠올랐나 의문이었는데 곧 그 이유를 알았어요. 그들이 엑셀을 사용하는 이유가 서로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걷는다는 말은 그건 ‘나’가 아닌 ‘함께’ 하기 위해서인데 이들 부부는 애초에 엑셀을 쓰는 이유가 ‘내가 저 사람에게 더 베풀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죠. 같은 행동을 하면서도 다른 이상을 꿈꾸는 것이죠.


살아오면서 여러 선배 동료 문인들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정말로 문인들이 죽고 나면 그 문인의 책도 죽는 것을 보았다. 내내 잘 팔리던 책이 그 문인의 죽음과 함께 잊히고 있었다. 이것은 참 서럽고도 안타까운 곡절이다.


잊혀 가는 것과 새로운 것

지금도 수많은 책들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잊히지 않는다면 새로운 것을 기억할 수 없죠.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서 수많은 책들이 만들어지고 있고요. 심지어 많은 책들이 독자들에게 닿지 못한 채 사라지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분명 많은 책들이 잊혀 간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시간 앞에서 모든 건 잊히는 법이에요. 잊히지 않는다면 우린 새로운 것을 맞이할 수 없죠. 그렇기에 잊힌다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렇기에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것들이 대단한 것이죠.


그러니 잊혀 가는 슬픔이 느껴진다면 그만큼 새로운 것들을 맞이하는 것이니  기뻐해야겠죠.


그렇지만 잊히는 것들을 떠올리며 안타까운 건 어쩔 수 없나 보네요.






시인께선 우리를 풀꽃이라 말했어요.

사람들이 화단에 심고 싶은 그런 꽃이 아닌 길에 널려있는 흔한 잡초들이 피우는 꽃이며 특별하지 않는 존재들.


하지만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는 흔한 자신들을 실패자라 여기며 자괴감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화단에 핀 꽃만 꽃이 아니라 들에 꽃 피운 풀도 꽃이라며, 그래서 난 풀꽃이라 부른다고. 우리도 그렇다고.


시인의 말씀처럼 우리 역시 저들과 같은 꽃이라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마지막으로 시인께서 전하는 위로를 끝으로 마무리해 봅니다.


오늘날 힘든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자신이 마이너라고 생각되는가? 패배자라고, 낙오자라고 여겨지는가? 부디 그렇게 생각하지 말기를 부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자기만 손해다. 비록 조금 늦고 한두 번 실패했다 쳐도 내가 꽃이라고 생각해 보자. 언젠가는 성공하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믿어보자. 부디 그렇게 되기를 꿈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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