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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양이 Sep 27. 2024

7. 도사는 어디에 있는가? (2)

그때였다.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고깃배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물고기로 가득 찬 그물이 여기저기 펼쳐지고 자잘한 은빛 생선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물고기들은 얼마나 힘이 좋았던지 받쳐놓은 통을 벗어나서 이리저리 튀어 다녔고 어떤 놈들은 배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길가까지 날아와 펄떡거렸는데, 또 그놈들을 잡아서 챙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주로 아이와 노인들이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조 씨와 한시욱 앞으로도 멸치 몇 마리가 튀어왔다. 한시욱은 그 멸치를 주워서 제일 가까운 곳에 있던 노인에게 내밀었다. 노인은 고맙다는 말도 없이 그것을 꾀죄죄한 봉지에 넣더니 신이 나서 이렇게 말했다.

  “먹으러 가지!”

  한시욱이 대답도 없이 노인을 따라가자 조 씨도 그 뒤를 따랐다.


  노인은 전봇대가 서 있는 어느 담장 밑에 쪼그려 앉았다. 주머니에서 초고추장 병이 나왔다. 노인은 펄떡이는 멸치를 고추장에 살짝 찍어 입 안에 통째로 집어넣고는 우물우물 씹었다. 한시욱이 노인을 따라했고 조 씨는 한시욱을 따라했다. 노인의 주머니에는 아니나 다를까, 차가운 소주 한 병이 준비돼 있었다. 멸치 회를 통째로 먹고 나서 소주 한 모금으로 입가심을 하니 개운하고도 뿌듯했다.

  노인은 또 둘을 데리고 어느 식당의 뒷문으로 가더니 주방 아줌마를 불러냈다. 노인과 주방 아줌마 사이에 몇 마디가 오간 뒤 노인은 식당 뒷골목의 무너진 화단에 걸터앉았다.

  한시욱이 물었다. “기러기를 보셨습니까?”

  노인이 대답했다. “날지 못하는 기러기를 봤네.”

  그러고 있는데 퉁퉁한 주방 아줌마가 말없이 뒷문을 탁탁 두드렸다. 그 신호를 받은 노인이 벌떡 일어서서 찌그러진 냄비 하나와 구운 멸치 몇 마리를 받아왔다. 냄비 안의 국물에서 구수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찌그러진 냄비에 담긴 멸치국물과 구운 멸치 몇 마리.......그것이 조 씨의 어떤 기억을 건드렸을까? 아니면 식당 뒷골목의 염세적 분위기, 아니면 노인과 한시욱의 선문답이 어떤 깨우침을 주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소주 몇 잔으로 술기운이 올랐을까? 조 씨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노인도 한시욱도 왜 우냐고 묻지 않았다. 조 씨도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 국물까지 다 마셔 버린 조 씨가 드디어 눈물을 거두고 한시욱에게 이렇게 따지듯이 물었다.

  “도사님 만나러는 대체 언제 갑니까?”

  그러자 노인이 주저 없이 나섰다.

  “도사를 찾는다면 날 따라오게.”


  이제 일행은 세 사람이 되었다. 조 씨와 한시욱 매니저, 그리고 멸치를 줍던 노인은 터덜터덜 걸어서 어촌을 벗어났고, 아는 사람의 트럭을 얻어 타고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 가는 곳마다 노인, 혹은 한시욱과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이동을 도와줬고 출출해질 때마다 희한한 음식을 먹었다.

  예를 들면 어딘가에는 나물을 파는 자판기 같은 것이 있었다. 그 자판기에서 콩나물과 무나물, 호박 나물을 샀는데, 그것이 정말 기계인지, 아니면 기계 같이 생긴 틀 속에서 사람이 내밀어 준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아무튼 조 씨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렸고, 노인과 한시욱은 드문드문 알 수 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네모가 구를 때까지 기다려야겠습니다.”

  “네모는 동그라미를 두고 떠나는 법이다.”

  “.......”

  “물이 차오르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벌어지는 것들이 나타나겠지요.”


  조 씨는 이런 뜬구름 잡는 대화들에 대해 무관심했다. 그러나 청정한 산속에서 신선의 모습으로 구름을 타고 다니는 도사를 만나는 일은 시나브로 포기에 다다르고 있었다. ‘아마도 이 시답잖은 노인이 소위 “도사”라는 사람인가 보다.’ ‘어차피  내 인생의 답을 찾지는 못 할 거, 여행비나 돌려받으면 그만이다.’ 이런 계산을 하며 아마추어 사기꾼으로 여겨지는 두 사람을 따라가고 있었다.   

  갑자기 노인이 조 씨에게 물었다.

  “자네는 커피 마시고 싶지 않나?”

  처음으로 구체적인 질문을 받은 터라 조 씨는 반가운 마음에 대답했다.

  “커피 좋죠.”

  “자네를 위한 커피가 있네.”


  노인이 앞장을 서고 두 사람은 뒤따르기를 한 시간 남짓. 작은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그 즉시 커피 냄새가 느껴졌다. 뭔가, 안식에의 그리움이 끼쳐지는 냄새였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카페나 다방 같은 게 있을 리 없는 풍경이었으니, 커피 냄새가 풍겨 나오는 곳은 무너진 담장 모퉁이에 있는 낡은 집이라는 것을 이내 알게 되었다.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가 툇마루에 앉아 보온병을 기울였다. 할머니의 맞은편에는  밀짚모자를 눌러 쓴 농부 한 명이 보온병에서 졸졸 흘러나오는 커피를 바라보고 있었다. 커피는 원색의 플라스틱 잔 테두리에 차오를 때까지 중단 없이 부어졌고 농부는 잔이 넘칠 새라 조심스레 받아들고는 한숨에 쪽 들이켰다. 그리고 요란하게 “크어!” 하는 소리를 내더니 목례만 남기고 즉시 자리를 떴다. 그 농부의 자리에 조 씨의 일행이 앉았다. 할머니는 묻지도 않고 플라스틱 컵에 커피를 따라주었다. 아마도 이미 여러 사람이 사용하고 씻어 놓지도 않은 컵인 듯했다.

  “얼른 마셔, 자네를 위한 커피일세!”

  머뭇거리는 조 씨를 보며 노인이 재촉했다.

  말도 안 되는 얘긴 줄 알면서도 왠지 거부하기는 싫었다. 조 씨는 홀짝, 커피를 마셨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달았다. 커피라고 말 할 수도 없는 그저 단 맛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 씨는 한 모금, 또 한 모금,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조씨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이번에는 그저 눈물뿐이 아니라 꺼이꺼이 울음소리까지 내며 울었다. 노인이 조용히 조 씨의 어깨를 두드려 주자 조 씨는 아예 노인의 품에 안겨 울었다. 커피를 타는 할머니는 이런 소동에도 관심이 없는 듯 또 물을 끓여 보온병에 달디 단 커피를 탔고, 지나가던 사람이 들러서 할머니의 커피를 말없이 받아 마셨다. 한시욱은 툇마루 끝에 걸터앉아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을 울던 조 씨의 흐느낌이 드디어 잦아들면서 그가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도사님....... 실컷 울었어요. 우리 엄마 생각이 나서 그만.....저의 어리석음과 저의 실책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이 평온해졌어요.”

  조 씨는 어느 틈에 노인을 도사로 부르고 있었다. 한시욱이 흥얼거리던 노래를 중단하며 슬며시, 조 씨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도사가 조씨에게 대답했다.

  “산이 있으니 물도 있는 법.......”

  이에 대해 조 씨는 뜻밖의 말로 대꾸했다. 모든 선문답의 대표격이자 최대 히트작이라 할 수 있는 한 문장.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지요.”

  그때였다. 도사가 벼락같이 호통을 치며 조 씨를 떠밀었다. 그 힘이 얼마나 셌던지 무방비로 있던 조 씨는 툇마루 밑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어디서 그런 헛소리를 지껄여?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걸 누가 몰라??”

  그러자 조 씨가 황급히 몸을 일으켜 도사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또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감히 도사님을 시험하려 들다니...... 도사님! 부디 저를 제자로 받아주신다면 진리에 이르도록 쉬지 않고 정진하겠습니다.”

  그렇게 어이없는 상황이 얼마간 지나가고 나서 조 씨는 도사의 허락을 받아내었다.

  “자, 내 제자가 되었으니 이제부터 나를 따라오너라.”

  “도사님, 지금 제가 도사님을 따라가면 이 세상과는 완전히 등을 지고 오로지 진리만을 찾으며 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 못난 저 때문에 고생한 가족들과 친구들의 얼굴을 보고 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의 말을 들은 도사는 한참이나 침묵하다가 이윽고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잘 생각했다. 그렇다면 네가 떠나기 전에 내가 밥을 한 끼 지어줄 터이니 그 밥을 먹고 떠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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