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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양이 Oct 02. 2024

9. 밀실 밖의 홍콩 (1)

1.  그들은 밀실에서 나오기로 결심했다.


  여기서는 여자를 ‘A’로, 남자를 ‘B’로 부르기로 하자. 왜냐하면... 그들의 실명을 밝힐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자와 남자는 어느 빌라의 이웃집에 살고 있었지만 사실상 두 집은 내부통로로 이어져 있었기에 한 집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3년간 뜨겁게 사랑했다. 아무도 두 사람이 연인 사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 비밀스러운 공간은 그들이 사랑하기에 완벽한 조건이었기에 그 흔한 데이트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아니.......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이다. 그들은 두려웠던 것이다. A는 스테디셀러의 작가였고 B는 글로벌스타 반열의 뮤지션, 말하자면 두 사람 다 특급 유명인....... 나이는 여자가 조금 연상이었다, 조금... 열여섯 살 정도.......어떻게 쉽게 밀실을 벗어나 광장에 설 수가 있겠는가!     


  처음에 A가 여행사의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그를 맞이했던 구아정은 저도 모르게 악! 소리를 내며 황급히 종이와 펜을 챙겼고, 뒤이어 후광을 내뿜으며 B가 들어왔을 때는 무릎에 기운이 빠져 주저앉을 뻔했는데, 사연을 듣던 중 두 사람이 연인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걷잡을 수 없이 어지러웠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감동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충격? 기쁨? 어쩌면 그 비밀스러운 사실을 제일 처음 알게 된 사람으로서의 환희나 명예, 부담 같은 것이었을지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두 사람은 밀실을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한번 나가보기로, 둘만의 공간이 아닌, 다른 소음과 광경이 펼쳐지는 곳에서 타인에 섞여 차를 마시고 산책을 해 보기로 했다. 그들의 사랑은 세상에 던져져 확인될 필요가 있었고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때가 되었다.

  때마침 좋은 계기가 주어지자 둘은 더 이상 이 일을 미룰 수가 없었다. A는 교민회 초청 강연을 위해, B는 영화음악 작업을 위해 같은 시기에 홍콩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업무 일정 중간에 1박 2일을 비워 두었고 이 시간을 두둥실 여행클럽 에 맡겼다. 그 여행의 결과에 따라 두 사람은 긍정이든 부정이든, 이후의 행보를 결정하게 될 터였다.


  얼굴이 알려진 유명인들의 여행인 것만으로도 부담스럽건만 그들의 관계가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있었다. 말하자면 밀월이되 밀월로 보여서는 안 되는 여행! 이 여행은 두 사람의 미래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게 될까?          

  홍콩이라면 안수호의 손바닥 안, 그 자리에서 관광지도라도 그려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의뢰인은 그렇게 쉬운 상대가 아니었기에 세밀한 고려가 필요했다. 거리를 메운 중국 관광객들과 마주치지 않는 동선을 짜고, 의뢰인들의 문화적 소양에 어긋나지 않는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그리고 또 하나, 이번 여행에 적합한 동행인을 정해야 한다.


  “그들 둘만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을 만큼 노련한 매니저라야 해.”

  “하지만 그 매니저가 두 사람의 분위기를 망가뜨려야 한단 말이야.”

  “무슨 소리야?”

  “두 사람 사이에 매니저가 끼어있음으로 해서 이 여행이 밀월로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거지.”

  “하! 두 사람에겐 없는 듯, 하지만 남들의 눈에는 확실하게 ‘있어야’ 한단 말이군?”

  “그렇다면.......”     

  두둥실 여행클럽 이 내린 결정은 진태우 인턴 매니저였다. 그 초보의 데뷔전이 이렇게 빨리 치러지게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2. 홍콩...

  

  초고층 빌딩의 요란스런 불빛과 짙은 매연에 가려져 별들은 전혀 속삭이지 않는 도시. 그래도 냄새와 소음, 바쁜 발길들과 미소가 사람 사는 활기를 느끼게 하는 곳. 그곳에서 A와 B는 최선을 다해 각자의 일정을 소화해 나갔다. 하지만 그 공식 일정들이 실은 비밀스런 메인 이벤트를 위한 오픈게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당사자들을 제외하고, 홍콩 내에서 오직 진태우뿐이었다.    

 

  일정을 마치고 약속장소에 먼저 도착한 사람은 남자, 땀을 흘리고 있었다. 덥고 바쁘고 상기돼 보였다. 뒤이어 도착한 여자 역시 땀을 흘리고 있었다. B와 A는 서로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고도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밀실을 떠나서의 첫 만남이었다. A는 손수건으로 B 얼굴의 땀을 닦아 주었다. 진태우 매니저의 큰 덩치에 가려져 여자의 행동은 다른 이들의 눈에 뜨이지 않았다.

  스르르, 소리도 없이 굴러가는 리무진 렌터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면 오산이다. 세 사람은 짐을 끌고 이동한 뒤 택시를 타기 위해 10분 이상이나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홍콩은 자동차가 좌측통행을 하기 때문에 운전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진태우는 운전면허증이 없었고 중국어, 영어, 광동어....... 그 모든 외국어에 젬병이었으니, 그저 안수호가 자세하게 그려 준 지도에 의존해 무사히 택시 정류장에 줄을 서게 된 것만도 다행이었다.      

  아니다 다를까, 택시를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동안 호들갑스러운 한국어가 들려왔다.

  “어머, 어머! B 맞지? B!”

  “대박! 싸인 해달라고 해 볼까? 사진, 사진, 사진부터 찍어.”

  “혼자야? 누구랑 같이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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