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모이는 가운데, 연설은 계속되었다.
“술은 늘 우리의 곁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술은 엄격합니다. 만약 우리가 약하고, 병들고, 포로가 된 인간이라면 우리는 결코 술로부터 존중을 받을 수 없습니다........ 술과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우리는 우리가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것을 술에게 입증해 보여야만 합니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었지만 술꾼들은 이 연설에 감동하여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고된 신체단련과 명상을 택한 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구아정과 안수호가 마침내 고된 임무와 길고 긴 긴장으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구아정이 막 잠자리에 들려는데 펜션 사장이 불렀다. 내실로 들어가 보니 사장의 남편과 안수호가 이미 식탁에 앉아 밤참을 먹는 중이었다.
“어휴, 그간 고생 많았지? 정말 술꾼들 아주 징그러워...... 이제 일도 끝냈으니 긴장 풀고 우리끼리 한 잔 하자고 불렀어.”
사장은 냉동실 생선 사이에 꼭꼭 감추어두었던 보드카를 꺼냈다. 하긴, 여행매니저들은 금주를 서약한 적이 없었으니 마지막 날을 즐기지 말란 법도 없었다.
“자기들이 처음 여기 왔을 때가 10년 전이잖아. 그래도 이렇게 인연을 이어가고 있으니 좀 좋아?”
술이 한 잔 들어가자 모두 추억에 빠져드는 모양이었다.
10년 전 바닷가
구아정의 입술을 덮친 사람은 뜨겁게 구아정을 끌어안는다. 구아정도 남자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그의 무게와 체온을 느낀다.
“사랑해, 아정아.”
두 사람이 다시 한번 뜨겁게,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키스에 빠져 있을 때 아정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정아!!! 구아정-----”
안수호의 목소리다.
구아정과 남자는 급히 포옹을 풀고 모래밭에 앉는다. 목소리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잠시 후 안수호는 보트 뒤의 구아정과 남자를 발견한다. 둘 사이의 열기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안수호가 이렇게 말한다.
“어.... 같이 있었구나? 여자 애들이 너 혼자 나갔다기에..... 위험할 것 같아서.”
안수호는 그대로 돌아선다. 그리고 무겁게 걸음을 옮긴다. 그때 남자가 입을 연다.
“수호야!”
“응?”
안수호는 대답을 하면서도 쉽게 돌아보지 못한다.
“우리 사이..... 애들한테 얘기해도 될까? 네가 좀 도와줄래?”
술병이 반 이상 비었을 때 펜션 여사장이 해서는 안 될 말을 꺼내고 말았다.
“그때그 써클 회장 참 잘 생겼었지. 볼 때마다 이 아줌마가 다 마음이 콩닥콩닥하더라니까. 이번엔 같이 안 왔어? 약혼자만 보낸 거야?”
잠시 침묵이 흐르고 구아정이 폭발하고 말았다.
“그 나쁜 새끼는 지금 없어요.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몰라요. 아니, 살아 있어요. 본 사람도 있고, 편지도 보내요! 도대체 왜!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그 새끼는?”
원래 주사가 좀 있는 편이었지만 오늘은 강도가 높았다. 구아정은 울지 않았다. 대신 소리치고 던지고, 두드리고, 술을 병째 들이켰다.
“네가 뭐라고 그랬어? 10년 전에 바로 여기서! 이 바닷가에서! 절대 헤어지지 말자고! 인생을 여행처럼 살자고! 영원한 동반자가 되겠다고 했잖아! 네가 그랬잖아!”
사라진 약혼자 BJ에 대한 원망이 점점 걱정과 그리움으로 변해갔다.
“밥은 잘 먹고 있을까? 많이 아픈 걸까? 어디를 다쳤다든가, 아무튼 나쁜 일 때문에 내 앞에 나타나지 못하는 거라면, 어떡해?”
마침내 구아정은 안수호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중얼거렸다.
“어떤 꼴을 하고 나타나도, 설사 반신불수가 됐거나,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해도...... 난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제발 돌아오기만 해, 제발.....”
이미 오래전에 상처 난 안수호의 가슴에 굵은소금이 뿌려지고 있었는데도 안수호는 아픈 티를 내지 못했다. 조용히 구아정의 어깨를 감싸 줄 뿐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내실 부엌문 앞에서 구아정의 주정을 지켜보는 눈들이 있었다. 일곱 명의 술꾼들이었다. 금주여행에서 고주망태가 된 여행 매니저의 작태라니!
난처해진 안수호가 정중히 사과하고 벌금을 다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원한다면 회비도 환불해 주겠다고 그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술꾼들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정말이지 술을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 슬픔에 공감할 뿐이었다.
술을 마셔야만 할 이유를 찾은 술꾼들은 그 자리에서 여행 일정을 하루 더 연장하고 그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독에 빠져 일과를 하루쯤 빼먹는 일쯤 그들에게는 특별한 것도 없는 일상이었기 때문이었다. 펜션 여사장은 커다란 찜통을 올려놓고 해장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다음 날, 7명의 고주망태들이 술 냄새를 풍기며 여행사로 돌아왔다. 여행은 누가 봐도 실패였지만 아무도 여행사를 원망하지 않았고 환불요청도 없었다. 술꾼들은 뜨거운 포옹으로 여행을 끝내고 연락처를 나누고, 정기모임까지 정한 뒤에야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여행자 인터뷰 1>
애초에 그런 여행이 어디 있습니까? 전 벌금을 24만 원 정도 냈어요. 그 돈 내고 얻은 교훈은, 여행에는 술이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술을 더 많이 마시기 위해서 체력을 길러야겠어요.
<여행자 인터뷰 2>
그 집 해장국 끝내 줍니다! 우리 송년 모임 때 또 거기 가기로 했어요.
<여행자 인터뷰 3>
여행사 사장님 애인이라는 분, 제가 찾아드리고 싶어서 이것저것 여쭤 봤는데
사장님은 뻗어버려서 대화가 안 되고, 안수호 매니저 님은 자세한 얘기를 안 해 주시는 거예요. 우리 삼촌이 그쪽에서 일하시거든요. 정말 도와드리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