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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양이 Oct 25. 2024

19. 그곳에 가기 싫다. (2)

  아! 역시 이 여행은 무리였다. 더 늦기 전에 버스에서 내려야만 한다는 판단에 엉덩이를 드는 순간, 철컥, 문이 닫히고 부르릉 시동이 걸렸다. 그리고 ‘위잉’하며 에어컨이 가동되었다. 그 소리를 신호로, 버스 안의 승객들이 연습이나 한 듯이 일제히 서영진 쪽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움츠러든 서영진인 허겁지겁 창문을 닫자 사람들의 고개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세 시간 남짓이면 된다더니, 족히 여섯 시간은 걸린 것 같았다. 여행클럽에서 ‘T시에 대한 이해’라는 인쇄물을 주고 나창수가 간단히 요점을 짚어 주었는데 전혀 와닿지 않는 내용이었다.

  지리적 특성, 사적지, 관광지도, 맛집......, 그런 거야 으레 미화되고 과장되기 마련이었고, ‘T시 출신의 유명인들’이라는 항목이 있었는데 서영진이 좋아하는 배우 ‘배지원’이 T시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뜻밖이었다. 그러고 보니 ‘배지원’도 어딘가 맘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연기도 늘 비슷하고, 인터뷰도 좀 가식적이었던 것 같고.......

 그 지루하고 불안한 시간이 지나 버스는 T시의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한시라도 빨리 버스에서 내리려고 가방을 움켜쥔 채 서두르는 서영진에게 뒷자리의 땡땡이 무늬가 또 말을 시켰다.

 “여기 처음이신가? 어디 숙소는 정하셨고?”

 “예, 에.....”

 나창수가 건성으로 대답했는데 땡땡이 무늬는 두 사람을 그대로 놓아주지 않았다.

  “허어, 그렇게 서둘러 갈 생각만 하지 말고, 처음 방문을 한 곳에서는 무엇보다도 정보가 중요한 것이니까. 내가 주는 정보는 아주 요긴하고, 절대 후회할 일이 없는 정보들이거든......”

  땡땡이 무늬는 이렇게 시간을 끌며 서너 장의 명함을 내밀었다. 식당, 노래방, 콜택시 등등의 주소가 적힌 명함들이었다.    

 


  버스터미널을 나서며 서영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나 이제 절대 버스는 안 타요.”

  “영진 씨나 나나 똑같은 사람이에요. 나라고 버스 타고 싶겠어요?”

  이미 렌터카가 예약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서영진은 안도의 한숨의 내쉬었다.  

      

  민박집까지 가는 동안 몇 번이나 교통사고가 나는 줄 알았다. 나창수의 운전이 거친 것인지 T시의 교통질서가 엉망이었던 건지....... 그런데 더 큰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홈스테이(다시 말하자면 민박집)에 짐을 내려놓고 가방을 여니, 아뿔싸! 지갑이 안 보였다. 그 순간 영진의 머리에는 자동으로 하늘색 땡땡이 무늬가 머리에 떠올랐다.

  “하아... 기분이 안 좋더라니. 하늘색 땡땡이...”

이 말을 들은 나창수가 즉시 반응했다.  

  “사람을 덮어놓고 의심하면 안 되지.... 만! 우선 찾아봅시다.”     

  카드 분실신고를 하고 민박집 근처의 파출소로 찾아갔는데, 당직 경찰이란 사람은 안일하기 짝이 없었다.     

  “지갑요? 아아...... 신고가 들어오면 알려드릴게 전화번호 주고 가세요.”

  “그게 아니라, 버스에 이상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에요.”

  “그 사람이 여기 사람이던가요?”

  “맞아요. 분명 T시 사람이라고 했어요.”

  “에이, 그럼 아니에요. T시에 그런 사람이 있을라고?”    

  도대체 무슨 근거에서 나온 믿음과 자부심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 더 통할 것 같지가 않았다.  

   

  파출소를 걸어 나오며 나창수가 물었다.

  “지갑이 명품이에요?

  “그럼요! 큰맘 먹고 산 거란 말이에요.”

  “돈은 얼마나 들었는데?”

  “한 3만 원?”
   “그럼 깨끗이 잊읍시다. 일단 지갑이 비싼 거면 나라도 안 돌려줘요. 내가 갖고 말지. 그리고 3만 원은 회비 낸 거에서 돌려주면 되잖아.”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세요? 따라오세요. 내가 꼭 찾아낼 거예요.”


  서영진은 땡땡이 무늬에게서 받은 명함의 노래방과 식당을 앞장서서 찾아갔다. 하지만 그에 대한 설명이 너무 막연했으므로, 쓸만한 정보는 하나도 얻을 수가 없었다.     

  그곳에 잠시도 더 있고 싶지 않았지만 그날은 그 민박집에 머무는 수밖에 없었다. 불안하고 불쾌한 기분에 뒤척이는 서영진의 귀에 민박집 부부가 하룻밤에 쌓는 만리장성의 내용이 다 들어왔다.

  바쁜 집안일을 놔두고 하루 종일 놀다 들어오는 남편과의 부부싸움, 그러다가 둘이 술병을 기울이며 소급하는 지난날의 추억과 회한, 남편이 말아먹은 재산 내역, 여자가 구성지게 뽑아내는 노랫가락, 낡아 밝자 또다시 집을 나가는 남자. 그 뒤로 퍼부어지는 여자의 욕설과 한탄....... 투숙객에 대한 배려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런 곳이었다. T시가.   

  

  다음날, 지갑이 발견됐다. 터미널도 경찰서도 그 어디도 아닌, 서영진의 가방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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