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절 버스로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송기석의 옆자리에 앉았던 ‘서연 맘’은 처음 보는 남자에게 신세 한탄을 하다가 목이 메기까지 했다.
“... 그러니까 우리 남편한테는 그게 한이 된 거라고요... 아휴, 내가 주책이죠? 별 얘길 다 하고. 꼭 내 남동생 같아서......”
“남동생 있으세요?”
“하나 있는데, 있으나 마나예요.”
“친동생들은 원래 그래요. 의붓동생이 더 쓸 만하죠? 하하하.”
이 대화를 앞자리에서 들은 구아정이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남 말고 네 가족들 좀 챙기라고!’하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버스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서연 맘이 돌변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펜션에서 신경을 쓴답시고 입구에 걸어놓은 플래카드-“202X 입시 세미나. 수험생 여러분 파이팅!!”- 를 보더니 대번에 트집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저런 현수막은 누가 걸라고 그랬지? 외부 사람 일부러 들어오라는 것도 아니고! 남한테 알려지는 게 싫어서 호텔도 피한 건데, 혹시 유투버나 기자들이 카메라라도 들이대면 어떡할 거예요?”
펜션 측에서는 부랴부랴 현수막을 뗐고, 두어 시간 동안 서연 맘의 의붓동생이 되었던 송기석은 적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대응하느라 쩔쩔매고 있었다.
프로그램은 바쁘게 돌아갔다. 진학상담사의 강연과 질의응답시간은 분위기가 너무 뜨거워서 예정 시간을 넘기고 넘겨도 끊을 수가 없었고 이어서 ‘수험생의 총명과 보양’에 대한 한의사의 강의 시간에는 엄마들의 집중력이 평생 신기록을 달성한 듯 보였다.
강의 중에 밖으로 나온 회장이 디너 준비 상황을 점검한 뒤 급히 전화기를 눌렀다.
“재호야, 엄마야. 오늘 어땠니?...... 수학 점수 나왔어?...... 짜증 내지 말고. 저녁 먹었어? 선생님 올 시간인데,... 알았어. TV보지 말고, 엄만 너 믿어. 알지?.......”
회장이 초조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고 보니 케이터링 업체에서 20인분의 저녁상을 차리고 있었는데 책임을 맡은 아가씨가 굉장히 어려 보였다.
“아가씨가 아주 앳돼 보이는데 일을 꼼꼼하게 잘하네요.”
회장이 구아정에게 소곤거렸다.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대신 나온 거래요. 그런데 일 잘하고 힘도 좋아요, 무거운 것도 번쩍번쩍 들어 올리고.”
깔끔하게 차려진 저녁상이 맘에 들었던지 회장이 아가씨에게 관심을 표했다.
“실례지만 올해 몇 살이나 됐어요. 보기엔 10대 같아.”
“저 열여덟 살인데요.”
“.......”
‘열여덟이면 회장의 아들 재호와 동갑! 기분이 묘했다. 죽을 둥 살 둥 공부해야 될 나이에 저러고 있다니, 일찌감치 포기한 걸 보면 아예 공부엔 깡통이었었나? 보기엔 똘똘해 보이는데, 부모가 얼마나 속 썩었을까? 아니 돈이 없겠지. 병약한 엄마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면.......’
한심하다가, 불쌍하다가, 그러다가 대견한 생각이 들었다. 일을 너무 열심히 했다. 재호처럼 짜증을 내지 않았다.
다들 맛있게 저녁을 먹는데 얼굴이 유난히 하얀 ‘성규 맘’이 이상하게도 밥을 못 먹고 있었다. 너무 긴장한 탓인지, 아니면 입맛에 안 맞는지... 구아정이 걱정을 했더니 성규 맘은 괜찮다며 그대로 자리를 떴다.
다음 시간의 주제는 ‘100일 기도의 사례 연구’라는 주제였다. 기도의 효과가 정말 있는지 없는지, 기도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을 얘기하는 시간이었다. 강사는 송기석이 섭외한 사람이었는데 원래 스님이었다가 깨달은 바가 있어서 목사가 된 사람이라 하니 그런 강좌를 맡기에는 적격!
첫날 프로그램은 거기까지였고, 마지막으로 선택 프로그램이 남아 있었다.
‘허심탄회한 대화의 시간’. 하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은 허심탄회해지기보다는 얼른 집에 화상통화를 하고, 화장을 지우고, 마스크팩을 붙인 채 쉬는 쪽을 택했다.
‘쓸데없이 이런 시간은 왜 집어넣은 거야?’하는 표정으로 엄마들이 각자 방으로 들어가고 나니 행사장에는 달랑 두 명의 회원만 남아 민망한 듯 회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창밖으로 억수같이 퍼붓는 빗소리가 들렸다.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회장은 구아정을 불러 프로그램을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다. 마음이 씁쓸했다.
“속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