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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양이 Nov 06. 2024

24. 엄마라는 사람들 (3)

회장이 낮게 중얼거리며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누군가 자신을 불렀다.

  “회장님!”

  열여덟 살 먹은 케이터링 아가씨, 아니 그 ‘아이’였다. 아침 식탁을 미리 세팅하고 있던 중이었다.    


 “아까 어떤 어머니가 식사를 못 하시던데, 내일 아침에 다른 걸 준비해 드릴까요? 죽이나 뭐 그런 거......”


  뜻밖에도 책임감이 강한 아이였다. 또 재호와 비교되며 마음이 짠했다.

  ‘죽어라 공부해야 될 나이에......’

  특별히 준비할 것 없다고 대답한 뒤 회장은 식탁 세팅을 거들어 주었다. 갑자기 딸 같은 생각이 들었다.         

  “회장님 아드님 공부 시키는 데 한 달에 얼마 들어요?”

  아이가 당돌한 질문을 던지는 바람에 몇 마디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음식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보관 방법, 첫째 아들과 둘째의 성격 차이, 그리고 수험생활 비교. 케이터링 중 혼비백산했던 경험담, 수험생 엄마들의 일상.... 그러다가 아이가 회장에게 이런 의문을 제기했다.

  “그럼 아드님이 대학을 들어가고 나면, 그때부터 회장님은 할 일이 없겠네요.”     


  이상하게도 그 질문이 비수처럼 꽂혔다. 큰애를 서울대학에 보내고, 재호까지 대학에 보내는데 근 10 년의 세월을 올인했다. 10년간 그의 직업은 수험생 엄마였다. 그래서 그는 중요한 사람이었고 그만큼 당당했다. 그런데 이제 그 일이 끝난다. 말하자면 퇴직이고, 쓸모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테라스에서 비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구아정이 다가왔다.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싶던 차에 반가웠다.

  회장은 아주 오랜만에 자기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 보았다. 공부를 잘했고, 어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기자가 되어 날카로운 필발을 휘두르는 멋진 삶을 꿈꾼 적이 있었다. 수험생의 엄마로 사는 동안 아이의 꿈을 대신 꾸었을 뿐 자기에게 꿈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반면 구아정은, 현재 꿈의 한가운데에 살고 있는 여자였다. 여행자로 사는 것이 꿈이었으니까. 낯선 곳에서 낯선 존재로 사는 것을 추구했고 그것에 익숙했다. 그리고 그런 삶을 같이 할 사람들이 있었다. 안수호 선배가 있었고 B,J가 있었다. 아니, 있었었다.


  갑자기 암흑이 덮쳤다. 눈앞이 깜깜한 가운데 “어머!”하는 비명이 합창으로 들렸다. 정전이었다. 비는 점점 거세지고 천둥소리가 우르르 몰려왔다.     

  엄마들이 튀어나왔다. 랜턴을 찾고, 양초를 찾고, 한전 전화번호를 찾고, 우당탕 부딪히고....... 같이 암흑 속에 묻혔던 이웃집에 전깃불이 켜지는 게 보였는데 어찌 된 일인지 펜션은 아직도 깜깜했다.


  곯아떨어져 자고 있던 송기석을 간신히 깨워 일으켰지만 싱거운 소리뿐이었다.

  “정전이면 그거지! 두꺼비집! 그런데 두꺼비집이 어디 있을까? 두꺼비를 불러야지!  꾸엑꾸엑...”

  진태우는 건드리지 말라는 듯 옆으로 돌아누우며 말했다.

  “어차피 밤이고 비도 오는데 그냥 자면 되잖아요. 해가 뜨면 날이 밝을 텐데...”

  이럴 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남자들이었다.


  “그러니까 호텔로 갔어야지. 이런 민박집이 안전이 보장이 돼요? 와이파이도 제대로 안 터져 답답해 죽겠어. 내가 정말 말을 안 하려고 여태껏 참고 있었는데, 어떻게 할 거예요? 여행사! 이거 어떻게 할 거냐고? 많이 남길 생각만 말고 일을 제대로 했어야지!”


  구아정은 갑자기 빵이 먹고 싶었다. 빵을 먹을 수만 있다면 이 상황을 견딜 수 있을 텐데, 그러나 빵은 없었고 그래서 소리 지를 수밖에 없었다.


  “모두 미친 것 같아. 얼마나 웃기는지 알아요? 엄마라는 사람들......”      

 

 옆에 있던 송기석이 재빨리 구아정의 입을 막았다. 그러나 그 모든 여자들이 구아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이 빗속을 뚫고 오는 자동차 불빛이 보였다. 차에서 허겁지겁 내리는 사람은 안수호! 예정돼 있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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