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르르륵 드르르르륵 드르륵’
온 집안을 울리는 믹서기의 소리가 새벽에 일을 나갔다가 다시 잠든 내 방에도 크게 들린다.
얼마 전 사온 가평 잣을 믹서에 곱게 가는 소리다. 적당히 식감이 있을 정도로 몇 번 믹서기를 돌린 잣을 어젯밤 불려 놓은 쌀을 끓이다가 넣는다. 적당히 폭폭 끓으면 소금으로 간을 한다. 이렇게 엄마는 아침마다 잣죽을 끓인다. 이 잣죽은 오롯이 아빠의 몫이다.
작년 10월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후 병원에서 몇 달을 계시다 집에 오신 후로는 계속 죽으로 연명하고 계신다.
연하작용(삼킴 장애)에 문제가 있어 밥을 식도로 잘 넘기지 못하신다. 혹시 밥을 드시다 사래라도 걸리면 정말 큰일인지라 늘 유동식으로 드시고 있기 때문이다.
된장을 넣고 쌀이 으깨질때까지 폭폭 끓인 아욱죽도, 야채를 아주 잘게 다져 끓인 야채죽도 입맞에 안 맞으신다고 한다. 그러다 냉장고에 추석인지, 설인지 누군가에게 선물로 받은 잣으로 끓여드리는 고소한 잣죽이 그나마 입맞에 맞으셨나 보다.
“성희엄마 이것만 끓여줘!” 정말 오래간만에 국 그릇 반도 안되는 죽을 다 비우시고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아빠는 치매 판정을 받으셨다. 뇌경색이 온 부분이 인지능력에 관련된 부분이라 인지 장애도 오고 치매 4급 판정을 받으셨다. 숨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게 되던 일들이 하나 둘 아주 힘겨운 일이 되었다.
시간이란 개념이 없어지셨는지 매일 나가는 주간 돌봄 센터(치매 노인 관련 시설)에 1시간씩 일찍 나가 기다리시길래 숫자가 큼지막하게 잘 보이는 시계를 사드렸더니 시간은 보는데 그 시간과 나가는 시간을 연관시켜 생각하질 못하신다.
어떤 날은 꿈과 현실을 구분 못해서 주무시다 일어나 ‘까꿍이(막내손녀)가 밖에서 울고 있다고 찾으러 간다.’고 그러실때는 가끔 암담하다. 거기다 매일같이 간장종지 만큼의 독한 약을 아침, 점심, 저녁 들이키시니 혀의 감각이 있는게 이상한 걸거다.
뇌경색 이전부터 파키슨증상으로 손을 떨다보니 밥숟가락이 위아래로 20CM 정도는 흔들린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흘리는게 더 많아 보일 때도 있고, 이유식하는 아이처럼 앞치마를 목에 두르고 식사를 하시는 걸 보면 그나마 죽이라도 드셔 주시는게 감사한 일이다.
그 이후로 아빠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잣죽을 드신다.
처음 잣죽을 드시기 시작했을 때 나도 한두 번 먹어봤다. 고소롬한 잣의 기름기가 입에서 맴돌고 소금 간을 약간해서 짭쪼롬함이 식욕을 돋우었다. 그러나 정상인에게 죽은 어쩌다 먹는 음식이지 매일같이 먹을 만한 음식은 아니다.
저작운동을 해야 무언가 내 속이 든든함을 느끼는 것이 건강한 일반인의 ‘위’ 임으로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죽을 마다 않고 드시는 아빠에게 새삼 대단하다 생각이 들었다.
잣죽 말고 요즘 매일 같이 우리집 상에 오르는 메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된장찌개다.
집에서 엄마가 직접 담은 된장을 한 숟갈 푹 퍼넣고 애호박, 고추, 버섯, 두부를 넣은 늘상 먹던 된장찌개다.
두부랑 호박이랑 잘게 썰린 버섯을 숟가락 하나에 국물과 함께 푹 퍼담아 밥 위에 끼얹고 숟가락으로 밥알을 으깨가며 슥슥 세네 번 팔과 손을 움직이다 떠서 입으로 가져가면 첫맛은 짭짤하고. 뒤이어 씹히는 호박과 버섯도 설컹설컹 씹힌다. 그렇게 네 다섯 번을 우물거리다 짭짤한 국물을 한 숟가락 떠 먹으면 송송썰린 고추로 인해 매콤하고 개운하다.
이런 된장찌개가 우리 집 식탁에 오른지 거의 한달이 되어간다. 우리집 된장은 맛있다. 엄마가 작년에 시골에서 메주를 사와서 직접 담그신 거다. 아파트 꼭대기 층이라 옥상 문 앞에다가 된장 항아리를 넣어 놓고 1년을 숙성 시킨뒤 먹는데 항상 생각하지만 참 맛있다. 배추 겉잎을 삶아서 물에 식힌 후 냉동실에 한번 먹을 만큼씩 넣어놨다가 엄마 된장을 한 숟가락 퍼 넣고 바락바락 치댄 후 냄비에 넣고 끓인 배추 된장국이나, 봄철 냉이나 취나물, 머윗대를 이 된장에 무치면 그 쌉쌀하고 짭짤함이 입안을 향기롭게 한다.
된장의 향이야 향기롭다고 하진 않지만 퇴근할 때 나는 된장국의 냄새는 ‘집에 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입안에 침이 잔뜩 고이게 하는 진정한 밥도둑이다.
그런 향기로운 엄마의 된장찌개 역시 아빠의 선택이다.
아빠의 된장찌개 선택이 있기 전 엄마의 고민은 늘 메뉴선택이었다. 아프시기 전엔 밥하고 국만 있으면 밥 한공기 뚝딱 드시던 분이 이젠 “뭘 해줘도 잘 드시질 않아! 한 두숟갈 먹으면 맛없다고 치우라고 그래!” 하시며 엄마의 시름이 깊으셨었다. 그러던 아빠가 어느날 된장찌개가 맛있다고 이것만 끓이라고 하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잣죽과 된장찌개를 끓이신다.
많이 드시는 것도 아니고 국대접의 3분의 1정도의 죽을 그마저도 못 드실때도 있지만 어떤 날 컨디션이 좋으시면 조금 더 달라고 하시기도 하신다.
매일 같이 같은 음식을 만들어내는 엄마, 같은 음식을 꾸역꾸역 살려고 그야말로 입으로 집어넣는 아빠와 함께 식탁에 앉아 있음 함께 마주 앉아 식사할 수 있는 날이 과연 며칠이나 남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덜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죽을 크게 한 숟가락 뜨시고 부드럽게 갈려 푹푹 끓인 잣죽도 삼켜지지가 않아 고개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는 모습을 보면 된장찌개의 뜨거운 두부가 목에 턱 걸린다.
오년? 십년?
아빠의 시간은 나와 별개로 너무 빠르게 흐른다.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잡아놓을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매일 똑같은 된장찌개와 잣죽이라도 조금 더 드시고 지금처럼만 딱 요만큼만이라도 좋으니 함께 식탁 앞에 앉아 있으심 좋으련만...
드실 수 있으실때까지, 식탁에 앉아서 숟가락으로 음식물을 떠서 입으로 가져가실 수 있는 날이 조금만 더 있었음 하는 바램을 오늘도 가져본다.
“오늘도 함께 드셔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