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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붉은 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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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 김작가 Nov 22. 2021

어머니는 배추를 사러 밭으로 가셨다.

 김장을 했다. 세 개의 김치통을 꽉 채우고  따로 동치미와 깍두기까지  담았더니 마치 뭔가를 해결한 듯 마음이 후련하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김치는 주 메뉴다. 다른 반찬이 수두룩해도 눈은 맨 먼저 김치를 찾고 만약 김치가 없으면 먹을 게 없는 식탁이 되고 만다. 요즘에는 굳이 집에서 김치를 담지 않아도 김치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파는 김치가 있어 입맛대로 골라 사 먹을 수 있는 편한 세상이다.

집에서 김치를 담는다 해도 무척 간편해졌다.

배추를 다듬어 소금에 절이고 씻는 일이 김장의 전반전이라면 전반전의 수고 없이 절임배추를 주문하여 김치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김장이  일 년 중 가장 큰 행사였다. 식구가 많은 우리 집 김장은 온 식구들이 다 나서서  돕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날씨가 추워지면 우리 어머니는 배추를 사러 시장이 아닌 밭으로 가신다. 김장배추를 밭 떼기로 사려는 것이다. 시장에서 배추를 포기로 사는 것보다 밭에서 직접 구입하는 게 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밭주인과 어머니의 거래가 끝나면  배추는 우리들의 일감이 된다. 오빠들과 어린 동생들까지 모두 밭으로 나가서 배추를 뽑고 흙을 털어 리어카에 싣고 집으로 가져온다.

신발에 묻은 황토흙의 질컹거림을 즐기며 배추의 밑동을 깎아서 먹는 것도 우리들에게는 일 년에 한 번 갖는 유일한 재미였다.


밭에서 가져온 배추를 다듬어서 소금에 절이고  나면  양념 준비를 하느라 김장 전 날 밤에 어머니는 한잠도 못 주무셨다. 잠결에도 언뜻 도마질하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산더미 같던 배추가 풀이 죽어 있었다.


김장하는 날, 어머니의 하루는 바쁘다. 피라미드처럼 쌓아놓은 속재료들, 무와 갓, 미나리 파를 다듬어서 씻마늘과 생강을 절구에 찧는다. 봄에 담가놓은 젓갈을 끓여서 한지에 내리고 찹쌀가루로 죽을 쒀놓는다. 모든 양념을 고춧가루와 함께 넣고 버물이면 김칫소가 완성, 씻어놓은 배추가 물이 빠지길 기다리는 동안 한편에서는 된장을 넣어 삶고 있는 돼지고기의 구수하게 익는 냄새가 젓갈 냄새와 어우러진다.

그때쯤이면 품앗이를 하러 온 동네 아줌마들의 입담은 손보다 더 노련해지고 있었다.


맛깔스러운 김장김치를 집집마다 돌리고 나면 한바탕 잔치가 끝나고  어머니는 이내 몸살을 앓으셨다.


                              딸내미와 오손도손 우리 집 김장풍경


우리 어머니의 김장에 비하면 오늘 내가 한 김장은 소꿉장난과도 같다.

김장하는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던 아버지와 달리 남편은 에서 보조역할을 해주고 있다. 마늘과 생강을 다듬어 주고 손이 닿지 않은 곳에 있는 앙념통들을 가져다주는가 하면 무거운 김치통을 들어 옮겨주기도 한다.


김장을 하는 날이면 으레 먹어줘 하는 돼지고기 보쌈도 빠트릴 수 없다. 생굴을 넣어 만든 김치 속과 수육은 환상의 궁합이다.

수고해 준 남편과 조촐한 막걸리 파티로 김장을 마무리하였다.


김치 담는 법을 따로 배운 적은 없지만 해마다 어머니의 등 너머로 보고 배운 솜씨로 김치를 담는다. 내가 담은 김치 어디엔가 어머니의 손맛이 조금은 숨어 있을 것이다.

김장을 하고 나니 힘은 들지만 뭔가 든든하다. 힘들어도 내색 없이 일하시던 우리 어머니도 어쩌면 나보다 열 배 백배 더 뿌듯하셨을 것이다. 아마 이런 기분 때문에 큰 일을 치러내셨는지도 모른다. 우리 여자들만이 느낄 수 있 포만감이다.


올 겨울도 텃밭에서 배추를 뽑고 계실 누군가의 어머니, 이 맘 때면 택배회사가 바빠진다는데 그건 어머니의 사랑을 배달하는 김치박스가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식탁에 김치가 없으면 허전하듯 우리 어머니들의 헌신적인 김치사랑이 없었다면 매일 진수성찬을 먹어도 배가 고팠것이다.


헬스장에서 아는 얼굴들을 만났다. ''김장하셨어요?'' 이 맘때쯤의 인사는 김장의 여부를 묻는 게 대부분이다. 누구는 친척들이 모여서 함께 김치를 담았다고 하고 누구네는 시골에 사는 어머니가 보내준다고도 했다.

통배추를 사서 직접 간을 하여 김치를 담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절임배추를 사서 담은 사람도 있다. 어쨌든 집집마다 겨우내 먹을 김치를 장만해 둔 건 똑같았다.


힘은 들지만 누군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우리 어머니가 하셨고 이제는 내가 한다. 그리고 다음 세대가 이어가 주기를 바란다. 집집마다 비슷하지만 다른 김치의 맛, 주부의 손맛이 깃든 김치야 말로 최고의 진수성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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