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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야 Sep 08. 2022

안전과 완전을 구별하지 못하는 무지

200710~0728 사건들을 바라보며

화가 치밀어 오른다. 어떻게 이 감정으로 일상을 챙길 수 있을지 앞이 캄캄하다. 피해생존자는 경험 뒤에 숨게 될까 봐 자신을 검열하고 지우고. 세상은 죽이고 용서받고 찍고 용서받고 강간하고 용서받고 욕하고 용서받고. 아픈 사람은 따로 있는데 도대체 자꾸 누가 용서하길래, 여태껏 이런 세상인 건지 알 수 없다.

 

멀리 있는 이를 위해서도 눈물을 흘리던 따스한 사람들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는 집단은 미워한다. 왜 누군가는 본인의 삶을 지키는데에 합리적인 이유가 필요한 걸까. 왜 인권운동은 '굳이' 하는 거니까 힘든 것이 당연해진 걸까. 


배우려 하지 않는 자부터 오래된 배움만을 믿는 자까지 변하지 않으면 다 똑같다.


놓지 못하는 사람과 언어가 있다. 사과하지 못한 일들이 있다. 아직도 반성하지 않는 일들이 남아있다. 잘못이 아니다. 다만, 자꾸 거짓을 덧붙이며 억지로 외면하는 일만큼은 제발 하지 않았으면 한다. 




며칠이나 잠에 들지 못하고 있다. 찢기고 찢어진다.


한 국가의 수도를 담당하던 정치인이 죽었다. 죄책감이었을까, 수치심이었을까. 성범죄자가 아닌 국민의 대표라는 수식어로 떠났다. 이제 그 무엇도 그의 죄를 벌할 수가 없다. 감옥에 있던 한 성범죄자는 팬데믹 시기에 모친상 공개 조문을 받았다. 어느 빈소든 떠난 자보다 남은 자를 위로하게 되나, 그 풍경은 하나의 코미디 콩트 같았다. 성범죄자여도 어느 연대에서는 건재할 수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한 쇼로 보였다. 같은 시기 대통령의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에서는 '여성 친화 대통령'이어서 20대, 50대 남성들 지지율을 잃었다고 발표했다. 여성들의 집단 이기주의 때문에 남성들이 대통령을 미워하게 됐다고. 아동 성착취 비디오를 25만 개 이상 공급한 한 남성은 이 나라에 감사인사를 남겼다. 청소년 성착취 비디오로 돈을 벌던 또 다른 남성은 매일 법정에 반성문을 제출한다. 


성범죄자의 창창한 미래, 방금 꾸린 가정, 도피를 위한 목숨은 오롯이 피해자를 공격하는 무기가 된다. 피해자의 미래, 가정, 목숨은 무기는커녕 방패도 되지 못한다. 처절하게 증명해도 소용없다.


무지. 안전과 완전을 구별하지 못하는 무지. 




요즘 자주 보이는 '역차별'이란 말이 가장 어렵다. 역차별이란 말은 다수 집단을 대상으로 한 차별 해소 방법으로 정의된다. 자신이 차별이 아닌 역차별당한다고 느꼈다면 그건 자신이 차별을 받지 않는 다수에 속한다는 뜻과 같다. 본인이 불편한 만큼 이 세상 차별 해소에 일조하는 것이니 차라리 귀엽게 자랑하는 편이 낫다. 스스로를 피해자로 정의 내리며 눈과 귀를 닫는 것은, 차별이 싫어 차별을 만드는 멍청한 굴레를 도는 것일 뿐이다. 기존에 존재하는 차별을 인정하고 철폐 운동에 함께 하는 것이 바르고 빠를 것이다.





권력이 쉽게 뱉는 언어는 폭력이 될 수 있음에 더욱더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언제든 누구에게든 우리가 당하고 보았던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저 입을 뗀 사람이 그들의 반응을 오롯이 감당해내고 있지만. 


우리가 무참하게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적응하고 있을 때, 그들은 이미 유대와 자리를 굳건히 하며 쉽게 주변을 배제한다. 나의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공간에서 객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기분이 상하지 않을 말과 시간을 고민하며 자연스럽지 않은 웃음을 지을 것이다. 고민하지 않는 자들은 그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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