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며 알게 된 삶의 맛들_12
음식 재료들 중에는 함께 요리했을 때 서로의 영양소를 상호 보완하며 궁합이 좋은 경우가 있고, 그렇지 못한 조합도 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선 늘 이런 음식 궁합 이야기가 가득했다.
“당근은 눈을 맑게 하고, 브로콜리는 비타민이 많아. “
“멸치는 뼈를 튼튼하게 하지. “
“시금치를 먹으면 뽀빠이처럼 힘이 세진다.”
엄마는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시면서 이런 말을 재밌게 하셨다. 식탁에서도 이어졌다.
“고기랑 버섯, 양파랑 같이 먹으면 찰떡궁합이야.”
“당근이랑 오이는 같이 먹으면 안 된다길래, 김밥에 같이 안 넣었지.”
“단호박 죽에 팥이 빠지면 섭섭하지!”
엄마의 말들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지만, 그 말들은 어느 순간 내 안에 스며들어 자라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아이들의 이유식을 만들게 되었을 때, 나의 몸과 마음 구석구석에 숨어 있던 그 이야기들이 불쑥불쑥 떠오르기 시작했다.
“엄마가 당근이랑 뭐랑 같이 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하며, 나는 음식 궁합을 검색하면서 건강한 이유식을 만드는데 노력했다.
“오늘 이유식은 뭐야?”
딸의 요리가 그저 소꿉장난처럼 느껴지는 엄마는 매번 전화 너머로 물어보셨다.
“오늘은~ 소고기, 양배추, 당근, 양파 넣었어요!”
“오~ 궁합이 잘 맞는 것들끼리 잘 만들었네! “
“엄마가 음식 궁합 얘기를 많이 해줘서 자꾸 찾아보게 돼요. “
“엄마 다 됐네~“
그렇게 음식 궁합에 대해 얘기를 하다 보니, 사람 사이에도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궁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나 사이에서도.
나는 외향적이라는 말이 정확히 어울리는 아이였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고 에너지가 넘쳤다.
반면 엄마는 내향적인 사람이었다.
사람들 앞에 쉽게 나서지도 않았고, 집안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며 깔끔하게 집안을 정리하거나 섬세히 일을 해내시는 모습이 더 익숙했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이 좋았고, 동네 친구 엄마들이 모여 우리를 지켜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였다.
그래서 엄마에게도 “엄마도 밖에 나와서 아줌마들이랑 이야기하고 제가 친구들이랑 노는 것도 보고 하면 안 돼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어린 마음에 친구 엄마들처럼 우리 엄마도 나를 지켜봐 주길 바랐던 것이다.
엄마가 없어 나는 조금 소외된 기분까지 들었으니까.
하지만 엄마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이미 집에서 다양한 부업을 하며 손을 쉬지 않던 엄마는 그런 자리에 나가는 것을 쓸데없는 수다라고 생각하며 거절하셨다.
나는 내심 속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엄마의 입장에서 그게 어떤 마음이었는지 잘 알 것 같다.
엄마는 굳이 나서지 않으면서도 늘 묵묵히 내 삶을 지켜보고 계셨던 것이다.
몇 년 뒤, 중학생이 된 나는 이야기를 꺼내는 방향이 조금 달라졌다.
그땐 좀 더 건방진 말투였을지도 모른다.
“엄마, 엄마도 회사 같은 데 다니면서 일 좀 해보세요! 왜 맨날 집에만 계세요?”
당시 나는 엄마가 늘 집에 계신 게 좀 불만스러웠다.
엄마가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활동을 하며 자신의 일을 찾길 바랐던 것이다.
그 말은 엄마에게 큰 충격과 상처로 다가갔다.
‘딸에게 능력 없는 사람으로 보였을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우셨다고 했다.
엄마는 평소 내향적인 성격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꺼리셨지만, 딸의 말이 꽤 깊이 남았던 것 같다.
엄마는 결국 일을 시작하셨다. 몇 가지 일을 해보시다가 정수기 회사에 입사해 정수기 관리일을 맡으면서 엄마의 꼼꼼함과 정성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능력을 인정받아 팀장이 되기도 하셨다.
20년 넘게 신뢰받는 직원으로 자리 잡으셨다.
엄마는 지금도 그날의 일을 말씀하시곤 한다.
“그때는 진짜 엄마가 너무 충격받았고 많이 속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하늘이가 엄마 인생에 새로운 길을 열어준 것 같아. “
엄마와 나를 생각하면 음식의 궁합에 비유하고 싶다.
엄마와 나는 서로 너무 다른 재료였다.
당근처럼 선명하고 단단한 나와 부드럽고 은은한 버섯 같은 엄마.
어린 시절에는 우리의 차이가 답답하게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다름이 우리를 더 조화로운 관계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음식의 궁합은 그저 색깔이나 비슷한 맛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완전히 다른 재료들이 만나, 각자의 부족함을 채우고 온전히 조화를 이루며 최상의 맛을 만들어 낼 때 진정한 가치를 가진다.
진짜 궁합이란, 함께 있을 때 각자의 영양소와 맛이 단순히 더해지는 것을 넘어, 더욱 커다란 힘을 발휘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다.
엄마는 나에게 세심함과 묵묵함을 가르쳐 주었고, 엄마는 나로부터 세상 밖으로 한 발 더 나아갈 용기를 얻으셨다.
서로 다른 재료처럼 우리는 차이를 인정하며 보완했고, 지금은 그 차이가 우리를 더욱 조화롭게 만들어 주고 있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하면 나의 단점이 보완되고 장점이 더욱 돋보인다.
하지만 반대로 서로 맞지 않는 사람과 있으면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너랑 나는 안 맞아”라고 쉽게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좋은 궁합도 노력 없이는 얻기 어렵다고 믿는다.
음식처럼 사람들도 서로 다른 성격과 특성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며 조화를 만들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궁합이란,
완벽하게 맞는 이들이 만나는 게 아니라, 다른 점을 인정하고 서로를 보완하며 완성으로 향해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