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iendlyAnnie May 23. 2024

비오는 따뜻한 하루

조건 없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을까?

2021년부터 활동을 하고 있는 학교밖 청소년 연구소에서 은둔 청년들을 만나온지 3년차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4번의 오프라인 모임이 있었고, 이번 달 15일 부처님 오신 날에 4번째 모임이 있었다. 3년 동안 보아온 청년도 이번 기수에 처음 만난 청년도 있다.


매주 두 시간의 정기 모임과 일 년에 한 두번 있는 오프라인 모임에 시간을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어느새 아무 이유도 없이 모임에 빠짐없이 참여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바쁘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지만 언제부턴가 늘 그 자리에 머물면서 청년들이 올때마다 반겨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마다 어려움을 겪고 방으로 숨어들었던 청년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용기를 내고 있다.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들이 그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 섬세하고 예민한 그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고 힘들어 하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자신처럼 예민하고 여려서 힘든 사람들에 힘이 되어주려 노력한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이렇게 나이가 먹고도 가끔은 세상이 낯설고 힘들게 느껴지는데 이 젊은이들은 얼마나 더 세상이 힘겨울까 생각해보면 그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변화가 빠르고 사람 사이의 소통이 줄어드는 이 세상에서 모든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려버린다면 외로움과 부적응의 문제들은 더욱 커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 나라만의 문제는 아닌듯 하다. 미국에서도 외로움으로 인한 사망률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꼭 스스로 목숨을 잃는 이들만이 아니라 알콜 중독, 약물 중독 등으로 사망하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 제대로 소통할 사람들을 못 만난 탓에 그런 운명을 맞이한 것일지도 모른다.

외로움과 부적응의 구체적인 원인을 찾고자 한다면  간단하게 답할 수 없을 것이다.


복잡하고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발빠르게 적응을 해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그 못지 않게 많다. 자본과 능력주의의 관념에 익숙한 우리는 개인도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소득에 비례하여 개인의 가치를 따지고 있다. 물질주의가 만연한 세상 속에서 자신의 가치 없음을 직면한 우리는 큰 절망 속에 빠질 수 있다. 우리의 존재 가치는 물질에만 달려있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많이 안타까운 세상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많이 안타까운 우리들의 모습을 본다.


여하튼 우리 젊은이들이 조금 더 자신을 사랑하기를 바란다. 세상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변하지 않을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단단한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있길 바란다. 그래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함을 보여줄 수 있는 어른이고 싶다.


그렇게 우린 비오는 오월의 하루를 따뜻하게 보냈다. 산책도 하고, 그 유명한 남산 돈까스도 먹고, 누군가가 무료로 제공해 준 공간에서 서로를 느껴볼 수 있는 활동도 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주를 뽐내보기도 했다. 진심으로 서로의 아픔에 공감해주고 서로의 성장을 축하해 주었다. 대단한 성공이 아니라 작은 변화와 발전에도 진심으로 기뻐해주고, 진심으로 헤어짐을 아쉬워 했다.


일주일에 하루, 2시간씩 온라인으로 만났지만 그렇게 쌓인 2년이 넘는 시간들은 우리가 서로에게 서서히 스며드는 시간이었던것 같다. 조건 없이  서로에게 내어준 시간과 관심으로 우리는 어느새 서로를 걱정하고 위로하고 진심으로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는 사이가 되었다.


다양한 유형의 사랑이 있겠지만 내가 우리 별청년들을 만나며 보고 느꼈던 그들의 관심과 서로에 대한 염려와 격려를 담은 대화들 속에서 인간이 인간에 대해서 표현하고 베풀 수 있는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런 조건 없이 힘겨운 삶 속에서 타인이 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며 나누는 누군가가 있기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래도 살만한 게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들의 나눔이야 말로 진정한 인간애가 아닐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문자를 거부했던 소크라테스, 문자를 지키려는 현대인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