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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xs Feb 14. 2023

레시피를 보라


레시피를 보라


아침 8시, 9살 남자 아들 현수 옷을 입힌다. 눈을 뜨지 못하고 어미새 먹이를 기다리는 아기새처럼 처량해 보인다. 학교 가야 하는데 몸은 침대에서 꿈쩍도 하기 싫다. 머리는 산발이고 양치도 안 하고  뽀얀 얼굴은 일회용 컵 홀더처럼 갈색을 띤다. 세수를 하기 전과 후가 이렇게 극명한 건 아이 피부가 좋아서 일게다. 지금은 얼굴색이 가장 지저분한 상태다.


겨우 학교 가는 길에 올랐다. 대장정의 시작은 비루했지만 마무리는 창대하게 만들고 싶다. 시간이 좀 여유가 있으니 오늘 저녁 일정에 대해서 논의해 봤다. 저녁에 식사하고 축구하고 카페 가서 공부하자는 큰 그림을 그렸고 저녁에 뭐 먹고 싶은지 물었다.


김치볶음
버섯요리
고기
참기름과 소금


정확하게 요구사항이 나왔다. 엄마는 오늘 야근이라 아빠가 저 요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아이는 막힘없이 말했다. 


"아빠는 요리 못해 알잖아? " 조금의 선처를 바라는 비겁한 변명을 했다.

"이 중에 필수, 필수가 뭔지 알아?" 갑자기 대화하다 말고 단어 뜻을 물어본다. 아빠 병이다

"응, 꼭 필요한 것"

"어, 맞아. 그래 필수로 해야 하는 음식은 뭐야?"

"음.. 다 해줘. 유튜브에서 레시피 보면 되잖아."

아이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아이의 말은 정확하게 명치에 꽂였다. 나는 쓰러졌다.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다

맞다. 다 나온다. 유튜브에 가면 뭐. 직접 해주지는 못해도 거의 해주다 시피하는 영상이 많다. 요리법을 몰라서 못한다는 말은 핑계고 아빠로서 직무유다. 

그래도 버섯요리는 구체성이 떨어지고 난이도도 최상이라는 선입견에 요건 엄마, 전문요리사, 오면 하는 걸로 하자고 협상을 시도했다. 하지만 아이는 단호박처럼 단단한 어조로 버섯요리에 대해서 정의 내렸다.


"응, 프라이팬에 참기름을 넣고 거기에 버섯을 넣어서 굽는 거야"

"아하!" 뭐 그 정도면 어렵지 않다. 해 볼만하다.


고기는 당연히 냉장고에 있을 테니까, 시간 배분만 잘하면 김치볶음과 버섯요리와 고기를 다 해 낼 수 있다.

자신감 뿜뿜하고 있지만 저녁에 현실에서는 어떤 상황이 올지 모른다. 우려되는 건 바로 장비? 와 재료가 어디에 있는지 헤맬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마음에 준비 단단히 하고 정성과 민첩함을 무기로 저녁 식사 미션을 마무리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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