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은 언제나 환한 얼굴을 하고 우리 앞에 놓입니다. 누군가의 축하, 누군가의 사랑, 누군가의 다정이 담긴 듯 보이지요.
하지만 때로는 그 지나친 아름다움이 어떤 슬픔을 은폐하고 있는지, 우리는 좀처럼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꽃은 향기를 풍기지만, 그 향기 뒤편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멍든 숨을 감추고 있습니다. 꽃잎 하나하나에 덧입혀진 색은 그의 후회가 아니라, 폭력의 흔적을 덮기 위한 얇은 가면일지도 모릅니다.
이 시를 쓴 폴레트 켈리는 폭력의 밤 뒤에 찾아오는 아침마다 꽃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꽃의 향기를 맡으며 스스로에게 속삭였지요.
‘미안해하는 거겠지, 다시는 그러지 않겠지…’
그러나 꽃은 변화를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가슴을 파고든 건 사과가 아니라 공포였고, 그 공포 위에 놓인 꽃은 경고이자 예고였습니다.
이제, 그녀가 마지막으로 바라본 꽃의 의미를 우리는 한 번 끝까지 따라가 보아야 합니다.
-폴레트 켈리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제 생일이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니었어요.
우리는 지난밤 처음으로 말다툼을 했지요.
그리고 그는 잔인한 말을 많이 해서
제 가슴을 아주 아프게 했어요.
그가 미안해하는 것도,
말한 그대로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도 전 알아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우리의 결혼기념일이라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닌 데도요.
지난밤 그는 저를 밀어붙이고는
제 목을 조르기 시작했어요.
마치 악몽 같았어요.
정말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온몸이 아프고 멍투성이가 되어 아침에 깼어요.
그가 틀림없이 미안해할 거예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그런데 어머니날이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니었어요.
지난밤 그는 저를 또 두드려 팼지요.
그런데 그전의 어떤 때보다 훨씬 더 심했어요.
제가 그를 떠나면 저는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아이들을 돌보죠?
돈은 어떻게 하구요?
저는 그가 무서운데 떠나기도 두려워요.
그렇지만 그는 틀림없이 미안해할 거예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지요.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어요.
바로 제 장례식날이었거든요.
지난밤 그는 드디어 저를 죽였어요.
저를 때려서 죽음에 이르게 했지요.
제가 좀 더 용기를 갖고
힘을 내서 그를 떠났다면
저는 아마 오늘 꽃을 받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 시는 미국의 생존자 폴레트 켈리가 폭력의 굴레 속에서 벗어난 뒤 자신과 같은 이들을 돕기 위해 세상에 내보낸 목소리입니다.
폭력을 덮어버린 ‘꽃다발의 함정’
꽃은 흔히 사랑의 언어라고 말해요.
미안함을 전하고, 축하를 전하고, 혹은 마음을 대신하는 상징이니까요.
하지만 이 시 안에서 꽃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꽃은 폭력의 흔적을 덮는 포장지가 되고,
사과의 증거가 아니라 다음 폭력의 전조가 됩니다.
이 시는 묻습니다.
“왜 그녀는 꽃을 받았을까?”
그러나 더 무서운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녀는 왜 꽃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까?”
시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은 두 줄입니다.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사과의 증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폭력의 사이클을 굳히는 사슬입니다.
심리학자 레너 워커는 이를 ‘학대의 순환(Cycle of Abuse)’이라고 설명합니다.
긴장 고조
폭력 발생
사과와 선물(여기서 ‘꽃’)
일시적인 평온
그리고 다시, 똑같은 순환.
꽃이 오면 평화가 오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평화는 폭력 다음을 위한 침묵의 공백일 뿐입니다.
시의 3절에서 가장 아픈 고백이 등장합니다.
“제가 그를 떠나면 저는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아이들을 돌보죠?
돈은 어떻게 하구요?”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이 아니라 생존입니다. 폭력의 피해자는 폭력 그 자체보다 그 이후의 삶을 감당해야 하는 현실적인 두려움에 더 갇혀 있습니다.
경제적 의존, 아이들, 사회적 시선, 죄책감…
이 모든 것이 피해자를 가해자 곁에 머물게 합니다.
그 빈틈을 파고드는 것이 바로 ‘꽃’입니다.
꽃은 그 두려움을 잠시 잊게 하고, ‘그래도 그는 미안해하고 있어’라는 희망의 조각을 남깁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살아남기 위한 자기최면에 가깝습니다.
시의 마지막에서 우리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꽃은 언제나 잘못된 자리에 놓여 있었다는 것을.
생일도 아니고, 기념일도 아닌 날마다 받았던 꽃. 그것은 “미안해”의 상징이 아니라 폭력이 더 깊어지고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가장 ‘특별한 날’이 온 뒤,
그날 그녀는 마지막 꽃을 받습니다.
장례식 위에 놓인 꽃.
꽃이 사과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그 마음이 그녀를 끝까지 가두었던 거죠.
이 시는 한 여성의 비극이지만, 동시에 수많은 여성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폭력은 절대 사랑의 방식이 될 수 없고,
꽃은 절대로 용서의 증거가 아닙니다.
진짜 사과는 행동의 변화입니다.
꽃보다 안전이 먼저이며,
침묵보다 도움 요청이 중요합니다.
만약 그녀가 용기를 냈다면,
그녀는 “꽃을 받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우리는
누군가의 마지막 꽃이 되기 전에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건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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