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뷔페의 〈죽음> - 두 개의 문 사이에서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을 마주할 때면, 이미지가 제 마음속 기억의 문을 천천히 두드립니다.
하버드 VTS 이미지 글쓰기는 그림을 ‘분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림이 건네는 미세한 신호를 따라 내 안의 경험과 감정을 꺼내보는 글쓰기 방식입니다.
오늘은 뷔페의 어둡고 강렬한 이미지 속에서 저의 오래된 가족의 기억, 특히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산문시로 풀어보려 합니다.
그림이 불러낸 기억이 얼마나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지, 함께 천천히 따라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베르나르 뷔페, 고독의 선(線)으로 세계를 새긴 사람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 1928–1999)는 날카로운 선과 강한 대비, 그리고 스산한 색감으로 세계를 묘사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표현주의 화가입니다.
그의 그림은 언제나 가난·고독·고통·삶의 어두운 단면을 강렬한 선으로 파고듭니다.
특히 인물화와 정물화에서는 마치 삶의 잔인한 면을 가차 없이 들춰내듯 뼈대만 남은 얼굴, 칼로 그은 듯한 그림자, 텅 빈 배경이 특징입니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겉으로 말하지 못했던 마음의 흔들림이 시나브로 올라오곤 합니다.
그림이 질문하고, 그 질문이 내 안의 기억을 흔드는 방식. 그것이 바로 오늘 글쓰기의 출발점이었습니다.
하버드 VTS 글쓰기에서는 그림을 보는 순간 떠오르는 ‘첫 이미지’를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뷔페의 그림 속 해골 같은 얼굴, 검은 새, 그리고 가슴에 자리한 붉은 심장을 보는 순간 제 안에서는 오래전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불려 올라왔습니다.
이미지는 언제나 기억을 깨우는 ‘기척’입니다. 이 기척을 놓치지 않고, 단어로 붙잡는 것이 바로 산문시의 출발점이 됩니다.
결혼 하기 전 우리 집 안방에는 두 개의 문이 있었습니다. 한 문은 마루로, 다른 문은 유리창을 지나 곧장 가게로 이어지는 구조였지요.
요 위에 누워 계시던 어머니는 유리창에 스치는 그림자 하나를 보고도 누가 왔는지 알고, 어떤 바람이 스며드는지 느끼곤 하셨습니다.
그 시절의 방 구조는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삶 자체였습니다.
VTS 글쓰기는 이런 ‘공간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글로 끌어올립니다.
중풍이 찾아오던 마지막 날들, 어머니의 팔은 제 방향을 잃은 가지처럼 천천히 휘었고 말은 형태를 갖추기도 전에 공기 속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눈빛은 늘 유리창 쪽을 향했습니다. 그 시선 하나가 어머니의 마지막 의지였음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림 속 선 하나, 색 하나가 이런 장면을 다시 불러옵니다. 그림이 질문하고, 기억이 대답하는 순간입니다.
뷔페의 그림 속 붉은 심장은 죽어가는 몸의 끝자락에서 붙들고 있던 마지막 의지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심장은 허공을 힘겹게 밀어내던 어머니의 손짓과 겹쳐졌습니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순간.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장면. 산문시는 바로 그 ‘겹침’을 기록하는 글쓰기입니다.
다음은 그림이 불러낸 기억을
사진처럼 길어 올린 산문시입니다.
붉은 심장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흔들렸다. 뷔페의 그림에 머물던 작은 빛이 검은 새들의 기척 아래 눌려 있었고, 오래전 우리 집 안방의 공기를 떠올렸다. 안방의 문 하나는 마루로, 다른 문은 유리창을 지나 곧바로 가게로 이어졌다. 어머니는 요 위에 누운 채, 그 창에 스치는 그림자만으로 하루의 움직임을 가늠했다.
병은 몸의 깊은 자리부터 어머니를 천천히 기울여 놓았다. 팔은 마른 가지처럼 굽었고, 말은 혀끝에서 형태를 갖추기도 전에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럼에도 눈빛은 늘 유리창 쪽에 머물렀다. 가게에서 인기척이 일면, 어머니는 남은 힘을 모아 그 방향을 더듬듯 살피곤 했다.
어눌한 음절은 물결 위에서 깨지는 기포처럼 흩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문 앞에 선 검은 옷의 사람을 본 듯했다. 허공을 향한 손짓은 밀어내는 것도, 부르는 것도 아닌 어떤 경계의 신호였다. 문틈으로 스며든 어둠은 새 한 마리가 앉듯 방 한쪽에 내려앉았고, 어머니의 손은 그 그림자를 떼어내려는 듯 한 번 더 공기를 쓸었다.
저녁 무렵, 가게의 불빛이 유리창을 통과해 방 한가운데까지 길게 흘러들었다. 노을빛은 요 위에 누운 어머니의 얼굴 위로 얇게 번졌고, 숨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방 안에는 빛과 온도만이 남아있는 듯했다. 두 개의 문은 닫힌 채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그때의 빛을 떠올리면, 붉은 심장 하나가 어둠 속에서 먼저 떠오른다. 그 붉음은 어머니의 어느 마지막 순간과 포개져 흐르고, 두 문 사이에 머물던 공기는 이제 기억 속에서만 가볍게 흔들린다. 그 미세한 기척이 내 호흡 끝을 한 번씩 스쳐 지나간다.
하버드 VTS 이미지 글쓰기는 그림을 해석하기보다, 그림 앞에 섰을 때 문득 떠오르는 장면을 따라가게 합니다.
뷔페의 그림은 오래전 우리 집의 두 개의 문과 그 사이에 머물던 공기를 다시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림은 이상하리만큼 마음속 깊은 곳을 먼저 찾아갈 때가 있습니다.
어떤 순간, 닫혀 있던 시간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 장면이 스쳐가는 만큼만 글로 머물게 해보는 일.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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