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순희의 아포즘적 서정 산문을 소개합니다.
박소란 시인의 「심야식당」에서 흘러나온
늦은 밤의 숨결을 따라가다 보니,
사라진 자리마저 따뜻해지는 순간을 글로 붙잡게 되었습니다.
식탁 위에 식어가는 그릇 하나,
그 옆에 오래 놓여 있던 빈 의자 하나가
문득, 지나간 시간을 다시 데워주더군요.
닿지 못한 마음도, 끝내 건네지 못한 말도
밤의 조용한 불빛 아래에서는
아직 살아 있는 온기처럼 깜박였습니다.
삶은 붙잡을 수 없는 것들로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감싸는 온도를 찾아갑니다.
떠남과 기다림이 서로의 그림자가 되어
우리의 하루를 은근하게 데우는 것을 배웁니다.
그리하여 태어난 산문,
〈밤의 식탁은 아직 따뜻했다〉
오늘도 잔잔한 마음 하나를 데워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소란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이 싱거운 궁금증이 오래 가슴 가장자리를 맴돌았어요
충무로 진양상가 뒤편
국수를 잘하는 집이 한군데 있었는데
우리는 약속도 없이 자주 왁자한 문 앞에 줄을 서곤 했는데
그곳 작다란 입간판을 떠올리자니 더운 침이 도네요 아직
거기 그 자리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맛은 그대로인지
모르겠어요
실은 우리가 국수를 좋아하기는 했는지
나는 고작 이런 게 궁금합니다
귀퉁이가 해진 테이블처럼 잠자코 마주한 우리
그만 어쩌다 엎질러버린 김치의 국물 같은 것
좀처럼 닦이지 않는 얼룩 같은 것 새금하니 혀끝이 아린 순간
순간의 맛
이제 더는
배고프다 말하지 않기로 해요 허기란 얼마나 촌스러운 일인지
혼자 밥 먹는 사람, 그 구부정한 등을 등지고
혼자 밥 먹는 일
형광등 거무추레한 불빛 아래
불어 선득해진 면발을 묵묵히 건져 올리며
혼자 밥 먹는 일
그래서
요즘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진순희
늦은 밤, 식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그릇 하나가 나를 멈춰 세운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서 가장 먼저 식는 것은 음식이지만, 가장 늦게 식는 것은 기억이다.
조용히 그 앞에 앉아본다. 빈 의자 하나가 이렇게 큰 목소리를 낼 줄 미처 몰랐다.
떠난 사람보다 먼저 사라지는 것은 마음의 온도다. 그래서 자꾸 불을 켠다.
한때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서로의 젓가락 소리를 듣고, 숨소리로도 안부를 짐작하곤 했다.
이제는 그 소리들이 마음속에서만 되살아난다. 삶이란 때로, 식지 않은 그릇을 오래 들여다보는 일이다.
기억은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우리를 데워준다.
사랑은 남아 있는 자의 방식으로 다시 조리된다.
허기는 배보다 마음에서 더 먼저 찾아온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국물을 끓인다. 고지식하게, 습관처럼, 그러나 언제나 정직하게.
불 위에 올린 냄비는 말을 하지 않지만, 내 속사정을 잘 알고 있다는 듯 은근한 소리를 낸다.
삶의 국물은 끓일수록 진해진다. 상실도 그렇다.
혼자 먹는 밥이 외로움의 증거라고들 말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혼자 먹는 밥은 버티기 위해 스스로를 먹여 살리는 행위다.
해질 무렵의 그림자처럼 고요하고, 밤바람처럼 단단하다.
누구도 대신 씹어줄 수 없는 삶을 내가 삼키는 순간이니까.
외로움은 약해진 마음이 아니라, 스스로를 견디는 마음의 다른 이름이다.
오늘 밤, 식탁에 앉아 다시 그릇을 바라본다.
그릇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알 것 같다.
사람의 체온은 몸에서 사라져도 마음에는 아주 오래 머무른다는 것을.
그래서 불을 끄기 전에 이렇게 속삭인다.
우리는 결국, 함께 나누었던 온기로 내일을 버틴다.
“기억은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우리를 데워준다.”
-진순희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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