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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Apr 25. 2022

랄프는 오늘도 실험실로 출근한다

고통 E등급의 실험은 왜 필요한 것일까?


우연히 잡지를 펼쳐보다 '랄프는 오늘도 실험실로 출근한다'라는 제목 앞에서 무엇에 덴 듯 움찔해진다. 


동물 실험을 하는 화장품은 물론, 가능하면 의약품도 동물 실험하지 않은 걸 찾는 비건인에게 이런 문장은 충분히 예민함을 불러온다. 자세히 안 봐도 어떤 글일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불편한 진실'을 알리는 글 일게 뻔할 텐데 안 본 척, 지나쳐지지가 않는다.


어제 4월 24일이 '세계 실험동물의 날'(World Day for Labortory Animals)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기사  제목은 실험실에서 테스터로 일하는 토끼 ‘랄프’의 삶을 다룬 단편 영화  ‘랄프를 구해줘’ 속에서 따온 것이란 걸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또한 인터넷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웨비 어워드(The Webby Awards)’ 후보에 올랐으며 어제 '실험동물의 날'을 기념해 한국판이 개봉된 것이다.



요즘처럼 하 수상한 시절에 '실험동물' 이 뭐 어쨌다고, 대개들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그나마 유지하던 사회 관계망의 인맥들이 줄어드는 주제라는 거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기왕에 끄집어낸 김에 '실험동물'에 대한 얘기를 좀 더 해보기로 한다. 동물보호운동 시민단체인 비 시모(비건 시민들의 모임)의 보도자료에 보면 인간과 동물이 공유하는 질병은 1.16%에 불과하기에 동물실험은 불필요하다고 한다. 실제로 매년 미국에서는 동물실험을 통과한 신약의 부작용으로 매년 약 10만 명 이상의 환자가 사망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합리적 연유로 해외에서는 동물실험을 없애가는 추세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2020년에 역대 최고로 많은 414만 마리의 동물들이 고통스러운 동물실험으로 죽었다고 한다. 게다가 1/3(약 175만 마리) 이상이 '고통 E등급' 동물실험 속에서 죽어갔다고 하니 이 명분 없는 죽음의 실험실을 계속 유지하려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국제적으로도 비인도적이며 효용성이 떨어지는 동물실험을 줄이는 실정임에도 국내의 실험은 최근 8년간 연평균 14.6% 증가하는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동물실험'은 동물이 느끼는 고통의 정도에 따라 가장 낮은 A 등급부터 가장 심한 E등급까지 5단계로 나누어진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자행하는 고통 E 등급 동물실험은 극심한 고통을 가하고도 관찰하기 위해 마취제, 진통제 등을 투입하지 않는 실험이다. '고통 E등급'의 동물실험은 살아있는 동물의 다리를 절단하거나 배를 가르거나 피부를 찢거나, 독성 약물 등을 주입하는 등 동물들에게 심각한 고통과 통증을 유발한다. 그럼에도 '연구의 순수성 확보'라는 미명 아래 대체를 위한 그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언제였던가, 대학의 실험실에서 행해진다는 '동물들을 추모하는 제사'를 다룬 기사를 보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연구'라는 이름으로 희생되는 수많은 동물들을 불쌍히 여겨 추모한다는 거였다. 과연 이 추모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 연구의 가치가 인간과 공유하는 게 실제 불가하다는 걸 실험자들은 혹시 알고 있는 건 아닐까? 꼼짝 못 하게 결박 지은 동물을 찢고 발리고 해부하며 그들 자신조차도 해괴한 모순 앞에 불편했던 건 아닌지? 결국은 그 불편한 양심의 가책이 '추모제'라는 형식으로 나타났던 건지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같은 인간으로서 랄프에게 참으로 미안하다. 도대체 '인간'은 언제까지 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같은 이 지구상의 동물들을 착취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먹고, 입고, 신고, 찢고, 태우고, 병균을 주입하고 언제까지 이토록 무서운 일을 계속할 것인가.


반려동물과 가족이 되어 따뜻하게 품고, 호흡을 나누며 그들이 주는 무한한 사랑과 영혼의 순수함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불편하고도 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더 이상 '동물들을 추모하는 제사' 따위 지낼 일을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제발 이제 그만 '실험실로 출근하는 토끼들'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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