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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Jul 30. 2022

풀꽃은 어디에서 왔는가

아힘사 라이프로 살아간다는 것


잠시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쉬다가 오는 천변 벤치가 있다. 가급적 택배 포장 쓰레기를 줄이고 싶은 마음으로 집 근처 마트엘 가곤 하는데, 어느새 짐이 가벼워도 들리는 곳이 되었다.  어떤 운 좋은 날엔 수면에 반짝이는 윤슬과 낙조를 볼 수도 있다. 저녁 무렵 햇빛이 빠져나가며 남겨진 희끗해진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거나 산책 나온 강아지들을 살피는 것도 그 순간의 소소한 평화라 할 수 있다.

 

어제는 세 개의 벤치 중 맨 왼쪽 벤치에 흔한 분홍 작은 꽃 하나가 놓인 걸 보았다. 그 꽃이 아니었다면 오른쪽이나 가운데 자리에 앉았을 텐데 , 분홍의 흔적에 이끌린 듯 거기로 가 앉았다. 나는 잠시 꽃을 치우지 않고 한동안 바라보았다.


'이 꽃은 어디에서 왔을까?'

벤치 앞에 한 무더기 꽃밭이 보인다.

'저기서 왔구나, 너는'  

하지만 그것은 이미 과거의 일, 한 때 흙속에 뿌리를 내리고 피었던 꽃은 서서히 시들어가고 있었다.


'아직 향기가 남아있을까'

나는 그것을 들어 코끝에 대어 본다.

꺾인 꽃은 지나치게 약하고 연약했다.

내가 그 꽃에 집중하는 동안 벤치 앞 무더기로 핀 분홍 꽃들은 때마침 부는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었다.

꺾인 꽃에 집중하고 있는 내가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는 것도 같았다.  


내 장바구니엔 플라스틱 포장이 싫어서 선택한 비교적 단출한 포장의 두부가 두모가 들어있다. 스티로폼과 비닐 랩으로 포장된 셀러리 반 단도 들어있다. 플라스틱 박스에 든 방울토마토 한 박스도 들어있다.

내가 아무리 애써봐도 이 견고한 플라스틱의 왕국을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꺾이기 싫었을 저 분홍꽃도 꺾으려는 손길을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찮은 그 '분홍', 손에 쥐고 올 때 한없이 흔들거리는 그 풀꽃 한 송이를 집에 가져와 물 담은 작은 유리병에 꽃아 보았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그 분홍에 제법 생기가 돈다. 좀 더 살아볼 예정인가 보다. 우연히 내게로 온 이 작고 귀여운 생명체를 내 소중한 친구인 고양이 메르씨 군에게 보여줬다. 제법 멋진 구도로 둘 사이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가만히 보면, 아니 그냥 무심히 보아도 이 세상 속 만물은 연결되어있지 않은 것이 없다. 하필이면 거기 그 꽃이 좋아 잠시 소유한 채 그 자리에 앉아있다 간 사람은 그 꽃으로 인해 잠시라도 행복해졌을까? 만일 그가 꺾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다만 갔으면 어땠을까? 어쩜 자기들 대신 꺾였을지도 모를 꽃을 잃은 꽃 무더기들이 신기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기나 했을까?


바람에 흔들리는 들꽃과 분주히 갈 길을 가는 개미들은 다 어디서 왔을까? 함부로 꺾거나 밟아도 될 생명이 과연 있기는 한 걸까? 개미를 밟기 싫어 땅을 살피며 걷는 나는 이 모든 생명들이 어디서 왔을지 짐작하기 어렵기만 하다. 나는 그저 이 생명들이 어울려 살기를 바랄 뿐이다. 누구라도 자신의 기쁨을 위해 타 생명을 해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꽃을 꺾은 그 마음을 비난하고 싶어지는 내 마음을 본다. 나는 그 마음을 경계하고 또 경계하기로 했다. 내가 그것을 비난하는 순간 내 마음속에 '신'은 사라지리라는 걸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잠시나마 사랑이 있던 내 마음의 자리에 공허만이 가득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저 풀꽃은 어디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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