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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선 Sep 21. 2022

가을에도 찐빵이지

당신에겐 너무 먹기 쉬운 그것


9월에도 태풍이 올까 걱정을 하다니. '기후위기'가 한층 곁에 가까이 와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되는 요즈음이다. 녹아 줄어드는 얼음덩이 위에서 새끼를 끌어안고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흰 북극곰의 영상은 안타깝지만, 나처럼 어리석은 인간을 포함해 아직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곤 한다. '기후위기'의 근본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 한결같이 소리는 요란하지만 임계점을 지난 우리의 지구가 과연 얼마나 버텨줄지는 미지수이다. 여름은 흡사 아열대성 기후처럼 잦은 폭우로 불쾌할 만큼 습도가 높아졌고, 겨울이 겨울 답지 않다고 느끼기 시작한 지도 꽤 된 것 같다.  


그럼에도 오늘 나는 엊그제 만들어 먹은 찐빵 얘기를 하려고 한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찐빵은 '겨울'에 먹어야 제멋이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겨울 거리를 지나다 마주치는 찐빵의 느낌은 포근하기 그지없다. 가게 앞에 나와있는 호빵이 들어있는 찜통이라도 마주치면 '그래 이게 진짜 겨울이지' 싶기도 했다.  나는 그 하얗고 포근하고 말랑거리는 따끈한 호빵을 참 좋아했다. 그리고 호빵은 반드시 만두가 아닌 팥소가 들어야만 했다. 팥빵인 줄 알고 반을 잘랐는데 거기서 야채, 즉 만두 찐빵이면 세상 실망하는 단순한 인간이기도 하다.  


아, 그런데 그 호빵이 비건이 아닌 것이었다. 그래서 호빵들 아니 찐빵들과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본의 아니게 찐빵, 그것도 아주 큰 왕찐빵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고나 할까? 우유나 달걀 등의 동물성 제품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팥 왕찐빵을 와구와구 먹을 수만 있다면 뱃살 정도는 별 문제가 될 것 같지도 않았다. 며칠 전에는 문득 그 찐빵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무언가 달고 몸에 좋지 않은 것이 당긴다는 것은 심리적인 이유와도 연관이 있을 텐데 이 또한 스트레스로 인한 일종의 집착일 수도 있을 터였다.



때마침 누구 소개로 알아 사놓은 앉은뱅이 토종 우리 밀가루도 있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접고 그냥 내가 먹을 수 있는 비건 찐빵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통밀가루 2컵에 흰 밀가루 1컵, 이스트, 바다소금과 정제 설탕 말고 비 정제 마스코바도를 넣어 살 살 섞었다. 두유와 미지근한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빵 반죽을 했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오랜만의 빵 반죽이었다. 논 비건 시절 시중에 나와있는 핫케이크 가루에 우유를 섞어 간편하게 반죽해 굽는 팬 케이크야 종종 해 봤지만 말이다. 듬뿍 팥소까지 넣어 찐빵을 만들겠다는 야무진 베이킹 도전은 그야말로 드문 일이었다.


그렇게 알맞은 점도로 반죽을 한 덩어리에 일단 면포를 덮어놓았다. 생각보다 유튜브를 찾아보는 걸 귀찮아해서 어디까지나 감각으로 그렇게 했다. 다음은 팥소 만들기였는데 팥은 전날부터 물에 불려놓았다. 그 팥에 팥이 푹 잠길 정도로 물을 붓고 삶기 시작했다. 팥물이 끓기 시작하며 화르르 거품이 생길 때 팥물을 따라 버리고 다시 물을 부어 끓이기 시작했다. (팥소 만들기는 인터넷 검색을 했음) 두 번 정도 그렇게 따라 버린 후 다시 물을 부어 팥을 졸이다 팥을 갈아주고 마스코바도(비정제 원당)와 소금과 계피를 넣어가며 좋여줬다. 이때 팥이 냄비 바닥에 달라붙지 않도록, 즉 타지 않도록 불 옆에서 지켜있도록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빵속에 채울 팥소를 미리 만들어 쟁반에 놓아둔다. 그러는 동안 잘 발효된 빵 반죽을 알맞게 떼어서 찐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팥 찐빵의 완성이 거의 코앞에 다가온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그다음이야 김 오르기 시작한 찜통에 면포를 깔고 만들어 놓은 찐빵을 올리면 끝이다. 그렇게 고대하던 비건 팥찐빵의 탄생! 아니 뭐 해보니 그리 어려울 것도 없는 것이었다. 다만 흰 밀가루가 아닌 우리밀 그것도 통밀 가루이다 보니 비주얼 면에서는 시중의 빵보다는 못한 게 사실이었다.



오랜만에 빵을 직접 만들다 보니 맛을 내기 위해 뭐라도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왔다. 그러니까 통밀가루 특유의 뻣뻣함이랄지 그것을 부드럽게 해 줄 재료를 찾게 된다는 것과 같은 거였다. 결국 나는 물 대신 두유를 대체해 봤는데, 내 입맛에는 물 반죽이 더 내가 원하는 찐빵 맛에 가까웠다. 단순한 비교지만 어쩜 시중에서 쉽게 구매하고 유통되는 먹을거리 속에는 어쩜 우리가 모르는 재료들도 꽤 많이 들어가게 될 거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만든 첫 비건 왕(?) 찐빵은 비교적 성공한 셈이었다. 이대로 간다면 두 번째 세 번째 찐빵은 매우 성공할 것 같다. 하지만 언제 두 번째 찐빵을 시도할지는 아직 계획에 없는 게 현실적 구멍이기도 하다. 빵 표면의 야들야들함을 위해 우유나 닭알의 흰자를 바르는 대신 올리브유를 슬쩍 코팅해줬다. 내가 만든 비건 팥 찐빵은 수입산 흰 밀가루의 부드러움 대신 씹는 맛이 느껴질 정도의 투박한 식감을 지녔다. 찐빵 반죽에 마스코바도를 넣는다고 넣었으나 입에서 살 살 녹는 단맛이 전혀 나질 않았다. 단 맛을 좋아하는 나는 마스코바도에 한번 꾹 찍어서 먹으니 완벽했다. 왕 팥 찐빵에 대한 갈증은 그날로 완전히 해소되었다. 

그래, 비건은 가을에도 찐빵이지! 



왼쪽 : 완성된 찐빵 토종 우리밀가루만의 구수한 색, 가운데 : 삶은 팥에 설탕과 계피 넣으며 수분 날리는 과정,  오른 쪽 : 빵 속 채울 팥소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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