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라가 말했다. '만약 이사를 가더라도 너무 멀리는 가지 마!' 맞아, 그 생각을 못했네. 주말에 휴무를 받아놓고 모처럼 한가한 금요일 밤. 부침개 몇 개 싸들고 식기 전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는 살아야지. 뮌헨의 겨울밤은 춥고도 긴데.
금요일 저녁세 가지 전을 부쳤다. 배추전, 양파전, 그리고 대망의김치전. 그날은아이의 친구 율리아나 집에서 한국의 야채 모둠전으로 저녁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작년 연말율리아나네와 송년회를 할 때 처음 선보인 한국의 부침개가바로김치전이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다가 다시 전을 부치게 된 사연은 율리아나 때문이었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율리아나가우리 집에놀러 왔다. 배가 고프다는 아이들에게 먼저차려준것은 배추전. 야심 차게 계획한 메뉴는아니었고, 그날 집에 있던 게 배추 한 통이었다. 배추전은 내가 먹고 싶어서, 아이들을 위해서는 소고기 야채볶음을 준비했다. 오랜만에배추전을하며뜬금없이 든 생각은'독일의 밀가루는 역시맛있다'는것.
배추를 2등분이나 3등분으로 큼직하게 썬다. 밀가루에 물을붓고 묽게 반죽한다.배추에밀가루반죽을입혀서부친다.간장에 물을 타서 찍어 먹는다. 이토록 간단한 레시피라니! 놀라운 건 율리아나의 반응이었다. 내가 부치는배추전을 무한리필로받아먹는 게 아닌가. 평소에많이 먹지도 않는아이가. (아마도 율리아나 파파가 채식주의자라 그럴 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이는?배추전에는 젓가락도 안 대고,소고기 야채볶음중에서도 소고기만 골라먹었다. 나는?소고기 향이 밴야채볶음에 밥만.
율리아나가 집으로 돌아갈 때 남은 배추전을싸주었다. 간장도위에 살짝 뿌려서.율리아나 엄마에게 들으니 그날 저녁 가족들이 맛있게 나눠먹었다고했다. 며칠 후 율리아나 엄마가SOS를했다. 율리아나가 그때 그 배추전을 먹고 싶다고했다나. 율리아나 집에 도착하니율리아나 엄마가 배추를 썰어놓고, 닭고기를 삶을 때 위에뜬 기름을 모아 두었다가 전을 부칠 때 쓰는걸 보았다. 그녀의 알뜰함에 반했다. 한국간장이 없어서 태국 간장에찍어 먹었다.맛이 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제안한 게 부침개 파티였다. 이런 메뉴는재료도 조리도 간단해야한다.음식은 또 손맛 아닌가. 외국 사람이 아무리흉내를 내도한국 맛을내기힘들다. 특별한식용유와간장도필요없고 우리 것이면 된다. 금요일 저녁 세 가지 부침개를 몇 장씩 부쳐 율리아나 집으로 갔다.우리 아이는 김치전을, 율리아나 남동생은 양파전을, 율리아나는 김치전과 배추전을 먹었다. 집에서는 안 먹더니 남의 집에서 자꾸만 더 먹겠다면 어쩌라는 건지. 우리 애 말이다.
새해에는 작은 집으로 이사를 생각한다는 내 얘기를 듣고 율리아나 엄마 이사벨라가 말했다. '만약 이사를 가더라도 너무 멀리는 가지 마!' 맞아, 그 생각을 못했네. 주말에 휴무를 받아놓고 모처럼 한가한 금요일 밤. 부침개 몇 개 싸들고 식기 전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는 살아야지. 뮌헨의 겨울밤은 춥고도 긴데. 그날 양쪽 파파들은 늦게서야 동참했다. 어디서나 일하느라 바쁜 아빠들. 남편이 와야 이사벨라와 독일어로 술술 대화가 되는데. 태국 사람인 이사벨라 남편 지미와 나는 옆에서 거들고.아이들은 떠들썩하게 뛰놀고.11월의 밤하늘은 높고도 검푸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