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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Nov 12. 2019

율리아나가 사랑한 배추전

세 가지 부침개가 있던 저녁


이사벨라가 말했다. '만약 이사를 가더라도 너무 멀리는 가지 마!' 맞아, 그 생각을 못했네. 주말에 휴무를 받아놓고 모처럼 한가한 금요일 밤. 부침개 몇 개 싸들고 식기 전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는 살아야지. 뮌헨의 겨울밤은 춥고도 긴데.




금요일 저녁 세 가지 전을 부쳤다. 배추전, 양파전, 그리고 대망의 김치전. 그날은 이의 친구 율리아나 집에서 한국의 야채 모둠전으로 저녁을 먹기로 날이었다. 작년 연말 율리아나네와 송년회를  때 처음 선보인 한국의 부침개가 바로 김치전이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다가 다시 전을 부치게 된 사연은 율리아나 때문이었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율리아나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배가 고프다는 아이들에게 먼저 차려준 것은 배추전. 야심 차게 계획메뉴는 아니었고, 그날 집에 있던 게 배추 한 통이었다. 배추전은 내가 먹고 싶어서, 아이들을 위해서는 소고기 야채볶음을 준비했다. 오랜만에 배추전  뜬금없이 든 생각은 '독일의 밀가루는 역시 맛있다' .


배추를 2등분이나 3등분으로 큼직하게 썬다. 밀가루에 물을 붓고 묽게 반죽한. 배추에 밀가루 반죽을 입혀서 부친다. 간장에 물을 타서 찍어 먹는다. 이토록 간단한 레시피라니! 놀라운 건 율리아나의 반응이었다. 내가 부치 배추전을 무한리필 받아먹는 게 아닌가. 평소에 많이 먹지도 않는 아이가. (아마도 율리아나 파파가 채식주의자라 그럴 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이는? 배추전에는 젓가락도 안 대고, 소고기 야채볶음 중에서도 소고기만 골라먹었다. 나는? 소고기 향이 밴 야채볶음에 밥만.





율리아나가 집으로 돌아갈 때 남은 배추전을 싸주었다. 간장도 위에 살짝 뿌려서. 율리아나 엄마에게 들으니 그날 저녁 가족들이 맛있게 나눠먹었다고 했다. 며칠 후 율리아나 엄마가 SOS를 다. 율리아나가 그때 그 배추전을 먹고 싶다고 했다나. 율리아나 집에 도착하니 율리아나 엄마가 배추를 썰어놓고, 닭고기를 삶을 때 위에 기름을 모아 두었다가 전을 부칠 때 쓰는  보았다. 그녀의 알뜰함에 반했다. 한국 간장이 없어서 태국 간장에 찍어 먹었다. 맛이 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제안한 게 부침개 파티였다. 이런 메뉴는 재료도 조리도 간단해 다. 음식은 손맛 아닌가. 외국 사람이 아무리 흉내를 내도 한국 맛을 내기 힘들다. 특별한 식용유와 간장도 필요없고 우리 것이면 된. 금요일 저녁 세 가지 부침개를 몇 장씩 부쳐 율리아나 집으로 갔다. 우리 아이는 김치전을, 리아나 남동생은 양파전을, 율리아나는 김치전과 배추전을 먹었다. 집에서는 안 먹더니 남의 집에자꾸만 더 먹겠다 어쩌라는 건. 우리 애 말이다.


새해에는 작은 집으로 이사를 생각한다는 내 얘기를 듣고 율리아나 엄마 이사벨라가 말했다. '만약 이사를 가더라도 너무 멀리는 가지 마!' 맞아, 그 생각을 못했네. 주말에 휴무를 받아놓고 모처럼 한가한 금요일 밤. 부침개 몇 개 들고 식기 전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는 살아야지. 뮌헨의 겨울밤고도 . 그날 양쪽 파파들은 늦게서야 동참했다. 어디서나 일하느라 바쁜 아빠들. 남편이 와야 이사벨라와 독일어로 술술 대화가 되는데. 태국 사람인 이사벨라 남편 지미와 나는 옆에서 거들고. 아이들은 떠들썩하게 놀고. 11월의 밤하늘은 높고도 검푸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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