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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Feb 15. 2020

월세를 보태주시려는 새어머니께

나인 당케!라고 말씀드렸다


매달 1,000유로씩이나 새어머니의 도움을 받는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정중히 거절했다. 고맙습니다만 '나인 당케 Nein, danke!'라고 말씀드렸다. 지난번 진주 목걸이를 덥석 받던 때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서.


저 붉은 꽃들을 저토록 정갈한 대바구니에 담는다면!



작년 연말이었다. 뮌헨의 우리 동네 지하철 우반역방 두 개짜리 작은 아파트가 매물로 나왔다. 우반역을 기준으로 지금 살고 있는 집과는 반대쪽이다. 현관문을 들어서면 복도를 중심으로 한쪽엔 큰 . 다른 쪽엔 작은 방  옆작은 부엌. 정면의 욕실. 지하의 창고. 작은 방에는 손바닥만 한 발코니가 있는 미니 아파트다. 3인 가족이 살기에 그렇다는 뜻이다. 한국식으로 시원하고 넓은 거실은 없다. 아파트 앞에는 언덕이 있고 언덕 위에는 아담한 공원이 있다.


16 전만 해도 뮌헨에서  정도 아파트의 월세는 600유로다. 어떻게 그것을 아느2002년부터 3년 동안 프랑크프루트 근처 중부 독일의 헤센 지역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400킬로나 떨어진 뮌헨의 시세를 어떻게 알았겠나. 당시 뮌헨에 살고 있던 시누이 바바라의 이사를 도와주면서 주워들은 정보다. 바바라의 방 2개 아파트는 월세 600유로. 핫한 지역이었다. 새로 구한 곳은 방 3개700유로(지금도 비슷하다). 첫 아파트처럼 핫한 지역은 아니었다.


바바라가 살던 곳은 뮌헨의 대표 뮤지엄인 알테 피나코텍 앞. 사방으로 쭉쭉 뻗은 도로들. 울창한 가로수들. 레스토랑과 바와 카페들. 빵집과 중고 서점들. 산책하기에 최적인 거주 지역이었다. 시내도 가깝고 영국 정원도 멀지 않았다. 바바라가 갑자기 그 집을 떠나야 했던 이유는 집주인이 나가라고 했기 때문. 월세를 정해진 날짜에 입금하지 않는다고. 독일은 집주인이 세입자를 함부로 쫓아낼 수 없다. 법은 세입자 편이기 때문이다. 당시 그 집의 주인은 새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왜 그러셨을까. 지금도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여쭤보진 않았다.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었겠지. 바바라는 그 집을 몹시도 사랑했고, 울며 시아버지께 하소연도 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 이야기를 소환하는 이유는 새어머니를 흉보려는 게 아니다. 새해에 우리가 작은 아파트로 이사하려는 계획을 들으시고는 계속 반대하시기 때문이다. 짐도 많은데 세 가족이 방 두 개 아파트에 어떻게 사느냐는 것이 어머니의 반대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나는 우리의 계획을 수정할 생각이 없다. 작으면 어떤가. 짐은 줄이면 되고, 월세도 필요 없는 내 집이 최고지.



뮌헨의 빅투알리엔 마켓에 핀 레이스 꽃송이들



2주 전 주말이었다. 토요일 오후 2시. 아이의 한글학교가 끝난 후 기차를 타고 어머니가 살고 계신 레겐스부르크로 1박 2일 방문을 갔다. 남편은 1시간 반 거리인 이 도시에 갈 때마다 싸고 좋은 기차 편을 선호한다. 성인 기준 왕복 요금이 25유로. 일명 바이에른 티켓이 주인공이다. 성인 두 명은 32유로(1명당 7유로 추가). 거기다 아이는 공짜. 바이에른의 모든 도심 내 지하철, 버스, 트람까지 연계된다. 안 탈 이유가 없다. 노트북으로 일도 하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몸과 머리를 기도 하니 일석삼조.


"너희들만 괜찮다면, 지금 사는 곳 월세를 도와줄까?"

 

저녁을 먹고 보드 게임을  후 언제 함께 휴가를 갈 것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를 의논하던 중이었다.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이사 문제를 꺼내셨다. 내게 진주 목걸이를 주시던 날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모르겠다. 그때만큼 놀랐다. 사실은 그때보다 더 놀랐다. 그럴 분이 아니신데. 지금까 내가 아는 한 말이다. 진주 목걸이야 주실 수도 있지. 친어머니의 유품이라도 내 스타일이 아니라면. 남편도 깜짝 놀랐는지 잠시 말을 잃고 어머니 바라보았다. 우리의 무반응에 이번에는 어머니가 놀라셨는지  번째 제안을 살짝 수정하셨다.


"너희가 부담스러우반이라도."


뮌헨의 방 세 개짜리 우리 아파트 월세는 평균 2,000유로쯤 된다. 매달 월세 1,800에 난방비가 별도라 그렇다. 그렇다고 매달 1,000유로씩이나 새어머니 도움을 받는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정중히 거절했다. '고맙습니다만, 나인 당케 Nein, danke!'라고 말씀드렸다. 지난번 진주 목걸이를 덥석 받던 때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서. 우리한테 다 퍼 주실까 봐 경계를 늦추지 않는 북독일의 형네도 있고, 평생 새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약자라고 느끼는 시누이 바바라도 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어머니는 아쉬워하셨지만 어쩔 수 없는 거절이었다. 마음만은 진심으로 감사하며.


"놀랍지 않아? 어머니가 저런 제안을 하신 거. 내가 알던 어머니 맞아?"


아닌 것 같았다. 나중에 물으니 남편은 별로 놀라워하는 것 같지도 감동을 받은 것 같지도 않았다. 그다음에 이어진 어머니의 애처럼 해맑은 질문 때문에. 그럼 당신은 우리 집에 못 오시는 거냐고. 오시면 어디서 잘 수 있냐고. 아이와 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리 대답했. '어머니, 언제라도 오셔서 주무시고 가세요!' '할머니, 제 침대에서 주무세요!' 아이가 엄마 말을 멋지게 이어받았다. 어머니 얼굴에 베일처럼 드리웠던 근심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밤에 침대로 가면서 아이가 내 귀에 속삭였다.


"아까 할머니가 휴가를 같이 가자고 하신 건 우리랑 같이 있고 싶으셔서 그러시는 거야!"


내일은 아이의 생일날. 어머니가 뮌헨으로 오신다. 한 달에 한 번은 우리가 1박 2일로 어머니를 찾아뵙고 한 달에 한 번은 어머니를 뮌헨으로 오시라 했다. 매주 3회 안부 전화는 올해부터 시작이다. 한 주 내내 흐리고 비가 내리다가 오늘은 아침부터 해가 나왔다. 내일은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동물원에 갈 것이다. 동물원 안 레스토랑에는 돌아가신 시아버지와의 추억이 서린 곳. 그 말씀을 들을 때 가슴이 찡했다. 며느리 노릇한다고 따로 준비할 것도 없다. 밥도 어머니가 사주실 것이다. 동방의 며느리는 반가운 마음과 반짝이는 해만 준비해두 된다.



봄이 오는 뮌헨의 빅투알리엔 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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