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꼭 가야겠다고 생각한 여자

여군 장교 2년, 그 첫 번째 이야기

by 그레

남자들의 대화에는 꼭 군대 이야기가 끼어 있었다.

어린 시절, 특히 명절 술자리에서는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무용담이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단어들의 나열이었지만, 다른 남자 어른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궁금했다. 그리고 나도 한마디 끼어들고 싶었다.

그들만의 세계는 도대체 어떤 곳일까?

거기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무슨 규칙이 있는 걸까?

나는 그 세계에 들어가 보고 싶었고, 언젠가는 그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살면서 한 번은 군대를 가야겠다.”



[ROTC 지원서, 그리고 출발선]


그 결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졌다.

군대라는 세계를 직접 경험해야만 내 호기심이 풀릴 것 같았다.

마침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는 해, 어머니 지인 중 같은 과 선배가 ROTC로 임관한 사실을 들은 어머니가 학군단을 추천하셨다.


하지만 막상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자, 부모님은 모두 말리셨다.

이상하게도 그럴수록 내 마음은 더 단단해졌다.

이미 머릿속에는 ‘내 이름이 새겨진 명찰을 단 전투복을 입은 나’의 모습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ROTC 지원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몇 년간 내 삶을 완전히 바꿔 놓을 결정이었다.


합격 문자를 받던 날의 설렘이 아직도 생생하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하던 시기였지만, 앞으로 훈련에서 함께할 동기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기대가 부풀었다.


[시작된 후보생 생활]


대학교 3·4학년 시절, ROTC 후보생 생활은 고되고 바빴지만, 동기들은 그 속에서 도파민 같은 존재였다.

한 기숙사에 살며 매주 화요일, 목요일마다 군사학 수업을 들었다.

아르바이트, 대학 수업, 시험 준비, 학군단 일정까지…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흘렀다.

방학때는 동기들과 훈련을 받으며 추운 날씨, 더운 날씨를 이겨냈다.


때로는 교관님께 혼나기도 했고, 예기치 않게 칭찬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웃고 울며 보낸 시간은, 나를 조금씩 군대라는 곳에 적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임관하는 날이 왔다.

내 이름 앞에 ‘소위’라는 호칭이 붙었고, 나는 자대에 배치받았다.

[군대가 바꾼 것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전역 후, 나는 내가 꽤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예전엔 상상도 못 하던 상황에서 침착함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이집트 파견 전, 소장님, 과장님과 줌 회의를 할 일이 있었다.

이전 같았으면 손바닥에 땀이 차고 심장이 빨라졌을 텐데, 그날은 이상하리만큼 아무렇지 않았다.

마치 평소 하던 일처럼, 자연스럽게 화면 속 사람들의 눈을 바라보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유는 명확했다.

당직근무 때 하도 VTC(화상회의)에 참석했고, 상황조치 훈련에서 수도 없이 혼났기 때문이다.

새벽 1시, 2시, 심지어 4시에도 전화를 받고 즉시 대응하던 순간들이 쌓이며, 나는 어느새 단단해져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군대가 나를 이렇게까지 바꿀 줄 그땐 정말 몰랐다.

그곳에서 배운 건, 어떤 군사적 지식이 아니라

“나 같은 사람도 조금은 더 담담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게 내가 군대를 다녀온 가장 큰 수확이자,

지금 이집트라는 낯선 환경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