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rianH Jun 20. 2019

'살랑' 멀리 떨어진 식탁

NO.1 - 불고기, 없는 것들 사이에 있는 것

 에디터 & 포토그래퍼 - 안휘수



냉장고가 텅 비었다. 항상 부지런히 반찬을 만들어 냉장고를 채웠었는데, 남아있던 반찬을 너무 오래 믿었던 모양이다. 이미 밥때가 되어서 장을 보러 나가기에는 망설여진다. 그나마 있는 마늘장아찌 하나를 반찬 삼아 밥을 먹기에는 밥상이 초라해서 싫다. 아직 아무것도 올려지지 않은 식탁을 채울 해결책이 필요하다.


냉동칸을 열었다. 송송 썰어놓은 파, 다진 마늘, 고춧가루 그리고 참깨가 항상 고정적으로 들어있다. 반찬을 만들 때, 국을 끓일 때는 한국인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재료들이지만 저것들만으로는 식탁을 풍성히 채울 수 없다. 냉동 음식을 즐겨 먹지 않아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것조차 없는 냉동칸 구석에 한주먹 크기로 조금씩 포장된 불고기가 있다. 지난번 본가에 올라갔을 때 어머니께서 직접 만드셔서 한 끼에 한 번씩 먹기 좋게 포장해주셨다. 반찬이 없을 때 프라이팬에 기름만 둘러 볶아 먹으라고 주신 것을 감사히 받아들고 내려와 냉동고에 넣어두고 한동안 까먹고 있었다. 

오늘이야말로 비닐에 붙어있는 얼음을 털어내고 불고기를 제대로 먹을 수 있는 날이다. 볼에 물을 담고 안에 포장된 불고기를 퐁당 빠트렸다. 얼어버린 고기가 제대로 익으려면, 적어도 한 시간은 녹였다가 팬 위에 올려야 한다. 배가 고프긴 하지만 읍내를 나갔다 오는 것이나 배달을 시키는 것보단 괜찮은 시간이니 차를 한잔 끓여놓고 기다리기로 한다.



“거기가 어디야? 거기 뭐가 있어?”

증평으로 이사를 한다고 했을 때 주변 지인들의 공통된 반응이었다. 필자 역시 지금의 집을 알기 전까지는 증평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지를 못했었다. 원래는 괴산군 증평읍이었으나 읍으로 남기에는 그 규모가 커서 하나의 군으로 독립한 지역. 정작 군으로 승격되니 너무나도 조그마한 곳, 거주민들은 주변 지역 대학생들이나 공무원 그리고 군인들이 대다수인 충청북도의 조용한 시골 동네가 증평이다.

“그래서 너 거기 가면 뭐 할 건데?”그리고 항상 따르는 질문에 담긴 의도는 호기심과 흥미가 아니었다. 20대 청년이 도시를 떠나려 노력하는 것은 듣는 이가 충분히 의아해하고 당황스러워할 이야기였다. 도시로 나아가기 위해, 도시에 남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는 시기에 역주행을 하려 한다는 것이니 당연한 반응이다. 그것도 읍내까지 8km나 떨어져 있고 하루에 버스가 열 대도 다니지 않는 조용한 동네로, 거기서도 마을 구석에 있는 허름한 한옥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니 말이다.



혹자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영향을 받은 것이냐고 물었다. 만약 필자가 그 영향을 받고 이곳에 왔다면 한 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갔을 것이다. 아쉽게도 이 조용한 시골 마을에는 멋있는 귀농 청년 류준열은 고사하고, 또래의 청년도 찾아볼 수가 없다. 무엇보다 필자가 도시의 삶에 지쳐 마음의 안식을 찾기 위해 고향을 찾아 내려온 김태리는 더더욱 아니다. 필자는 왜 그곳으로 가려고 하는지, 왜 이곳에 왔는지에 대한 질문들에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귀찮아서 대충 얼버무린 답변도 아니고 현인처럼 모든 것을 통찰하고 무관심으로 내뱉은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커다란 이유가 있어 선택한 결정이 아니었기에 그러한 대답 뒤에 오는 것은 대부분 만류였다. 가지 마라, 가서 뭐하냐 같은 합리적인 만류였다.



하지만 어느새 지금이 되었다. 올겨울에 이사를 와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사랑방에 불을 피웠다. 얼었던 땅이 촉촉해지고 여러 가지 작물들이 올라오자 그에 맞춰서 땅이 마르지 않게 부지런히 물을 줬다. 내가 원하지 않았던 풀들은 뽑아내고 내가 원하는 것들만 잘 자라도록 기둥을 박아줬다. 마당에 자라는 거슬리는 풀들을 뽑아내고 집 뒷마당에서 얼마 전 새끼를 낳은 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준다. 도시가스가 연결되지 않아 LPG 가스통에 가스가 얼마나 남았는지 틈날 때마다 확인해 준다. 인터넷은 따로 설치하지 않아 심심할 때는 묵혀뒀던 책을 꺼내 읽는다. 


하루하루 생활하는 모습이 어색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사를 오기 전 주변의 염려들은 필자에게도 두려움이 되었으나 정작 마주한 두려움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만류했던 이들은 이미 떠난 이를 말릴 수가 없었다. 사회로부터 배척은 자유가 되었고 인프라의 부재는 부지런함이 되었다. 외로움은 지난 사람들을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이유 없이 떠나왔지만, 이유 없이 남아있던 곳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고기가 얼추 해동이 되었다. 밭으로 나와 상추와 고추를 먹을 만큼만 꺾어 주방으로 돌아온다. 불 위에 팬을 올리고 기름을 두른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팬에 기름을 두르고 천천히 볶아준다. 냉장고에 남아있는 당근을 썰어 고추와 같이 그릇에 둔다. 상추도 같이 씻어 그릇에 담고 식탁 위에 올린다. 잘 해동되어 금방 익은 불고기도 식탁에 올리고 급히 만든 쌈장도 옆에 나란히 둔다. 오랜만에 먹는 다른 이가 해준 반찬이다. 

매번 혼자 앉아 먹는 식탁이지만 이번 식사는 더욱 시골에서 혼자 살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동시에 새로운, 스스로 선택해서 그만큼 흥미진진한 삶이 계속됨을 깨닫는다.




※ 위의 콘텐츠에 대한 모든 저작권은 '매거진 랑', 그리고 산하 에디터에게 전적으로 있음을 안내드립니다.




작가의 이전글 '동네랑', 공간이 함께 써가는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