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홀리기로 결심한 영화

박찬욱의《헤어질 결심》

탕웨이는 도대체 뭘 먹었길래 이토록 멋지고 유들유들하고 카리스마까지 넘치는가. 박해일은 어쩌자고 이렇게 선하고 심란하고 속 깊은 형사 역에 딱 맞는 걸까. 박정민은 딱 한 장면 나오면서 저토록 멋있을 일인가. 그러나 정작 박찬욱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는 배우는 고경표 아닐까. 그가 "굿모닝."이라고 인사라는 박해일에게 "아, 불안하게 왜 아침부터 인사를 하고 그러실까?"라고 화를 내거나 회식 장소에서 술에 취해 상 위로 올라갔다가 넘어지는 장면에서, 그리고 "그 여자한테 초밥 왜 사줬어요?"라고 물을 때 우리는 '아, 저기 그냥 박찬욱이 있구나!'라고 느끼게 된다. 괴물 같은 배우다. 칸에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엔 주연 배우들부터 후반부에 나오는 김신영까지 고르게 다 연기를 잘한다. 딱 두 명만 빼고(누군지는 내 입으로 말 못 해요).

어쩌면 박찬욱의 영화는 모두 히치콕의 《현기증》에서 보여준 고소공포증의 변주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엔 아예 첫 장면부터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 그곳에 가서 내려다보는 사람, 올라가서 누군가를 밀치는 사람이 나온다. 그리고 영화사 제목처럼 계속 '모호'한 인과관계가 계속된다. 서래는 해준에게 미행을 당하지만 그걸 알고 심지어 즐기기까지 한다. 해준은 아내와의 성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정작 살인 용의자인 서래를 사랑하는데 정작 자기가 언제부터, 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아니, 박찬욱은 이런 걸 설명할 생각이 아예 없다. 벌어진 현상의 인과관계를 설명하기엔 세상이 너무 이상하고 안쓰럽고 절박해서 영화는 자꾸 이리로 갔다 저리로 갔다 헤매고 이야기들은 예고편처럼 분절된다. 원래 이상한 대사를 좋아하는 박찬욱과 정서경인 데다가 탕웨이가 한국의 사극 드라마를 보고 한국말을 연습하는 캐릭터라 엉뚱한 데서 '마침내...' 같은 부사를 쓰기도 하는데 박해일은 그걸 또 따라 하며 감탄한다. 살인사건도 연애나 섹스도 이 영화에서는 메인 주제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다. 우리는 신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는 존재이므로 그저 등장인물들의 동선을 따라가며 짐작해 볼 뿐이다. 그래서 신경질과 초조함, 그에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의상과 미장센 들은 그들을 지켜주는 최소한의 무기가 된다.

한때 우리는 피터 그리너웨이나 마틴 스콜세지가 있는 나라를 부러워했다. 그러나 이젠 우리에게도 박찬욱과 봉준호가 있다. 사람들은 뭐 이런 영화가 있냐고 화를 내면서도 이 영화를 보고 또 볼 것이다.  사랑하기 위해 헤어질 결심을 했다는 영화 대사처럼 이 영화는 친절함을 제거함으로써 관객을 홀리기로 결심한 영화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이 영화를 '호기심-진지-낄낄-아름다워-모르겠어-절실하긴 한데-멋있네'의 순서로 보면 된다. 물론 순서는 늘 바뀔 것이고, 그게 맞다. 나의 이런 궤변에 찬동하지 못하는 분은 곧바로 탕웨이를 생각하면 된다.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손익분기점을 넘으니까. 연기나 카리스마에서 전도연을 최고로 치던 아내가 이제 탕웨이로 갈아타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고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