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수능을 보는 목요일
아침에 눈을 떴다.
늘 그렇듯
한 주의 가장 가운데에서 주말로 넘어가는
여느 목요일인데
오늘은 조금 특별하다.
작은 애가 수능 때문에 학교를 일찍 안 가서 조금 여유 있지만
나는 8시 반까지 성당에 가서 수능 기도를 드리기로 했다.
성당을 발을 들이게 된 건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부부 사이가 그리 평온하지 않았던 시절,
뜻밖에 둘째를 임신하게 되었고,
돌이 갓 지난 첫째와
무거워지는 몸
그리고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 사이에서
고귀한 아이가 뱃속에서 자라고 있음에도
불안과 불만이 내 안에 켜켜이 쌓여갔다.
어느 날
나의 직관이 발휘되었다.
큰 아이를 뒷좌석
베이비 시트에 태우고 운전을 하는데
뒷자리에서 큰 아이가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아이를 위한 여러 편리한 도구들을
아이들은 오롯이 이용하지 않는다.
유모차가 그랬고
베이비 시트가 그러했다.
그렇게 편리한 것을
아이는 불편해했다.
카시트에 앉아서
무엇이 마음에 안 맞는지
짜증을 내는 아이를
달래고 달래는데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또 한편으로는
뱃속에 있는 아이가
나의 짜증을
마치 영양가 있는 밥처럼
오롯이 흡수한다는 생각에
이름도 없는 뱃속에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신호대기 중
문득 길 건너 성당이 보였다.
첫 애와는 다르게
태교라는 것 자체가 없었던 둘째를 위해
갑자기
선물을 주고 싶었다.
종교를 주어야겠다!
물론 선택은 아이의 몫이지만
그 문을 열어 준다는 것이
나에겐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인 것만 같았다.
성당 문을 들어서는 순간,
왠지 모를 평안함이 나를 감쌌다.
배는 남산만 했고,
돌잡이 첫째를 품에 안은 임산부의 모습은
누군가에게는 짠하게, 누군가에게는 아름답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수녀님께서 물으셨다.
" 어찌 오셨어요? "
" 저 성당에 다니고 싶은데요. "
" 어머~ 너무 잘 오셨어요. 그런데 성당은 그냥 다닐 수 있는 건 아니고요..."
수녀님 말씀인즉슨
교구가 있고
교리라는 것도 받아야 했다.
나는 수녀님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
내가 살던 동네에 있는 성당으로 다시 가서
상담을 받고
교리를 등록했다.
매일 아침
돌잡이 아이를 데리고
뱃속의 아이와 함께 듣는 교리는
나에게 구원이었고, 힐링이었고, 위로였다.
세례 날짜에 앞서
작은 애가 나왔고
나는
부은 얼굴과 젖가슴을 부여잡고
나는 그렇게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다.
아이 둘에게도
유아 세례를 받게 해 주었고
어쩌면 힘들 수 있는
그런 시간들을
성당의 이모들과
수녀님
그리고 신부님 덕분에
그럭저럭 잘 지내게 되었다.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오후에
아이들과 사라지는 아내를
아이 아빠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달래고
달래서
아이 아빠도 세례를 받게 했지만
결국 신앙심이 두터워지기도 전에
어떤 계기였는지
아이 아빠는
온 가족 성당 금지령을 내렸다.
그렇게
나
그리고 두 아이는
성당에 이름만 남긴 채
성당을 잠시 잊고 지냈다.
무언가에 대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싶은 순간들이 온다.
큰 애가 고3이 되고
무언가를 해주고 싶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성당으로 향했다.
고해성사를 드리고,
정말 이기적인 마음으로 다시 성당에 나가게 되었다.
기숙사에 있는 큰 딸은
그리고 훈련으로 바쁜 둘째 딸은
일요일 저녁 가끔 나와 같이 성당을 나가 주었고
엄마의 고음불가의 성가가 아이들에게는 즐거움으로
서로에게 비는 평화는 서로의 사랑으로
그렇게 우리 삶에
종교는 다시금 스며들게 되었다.
100일 기도를 나가보려고
무던히도 애썼지만
평일 100일 기도는 근무여건상 불가하였고
주말 100일 기도도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로 빠지기 일쑤였다.
그래도 수능날에는 꼭 나가야지.
그렇게 수능날이 되었다.
수능날, 성당에서는 아이들의 시험 시간표에 맞춰
기도가 이어졌다.
고3 수능 기도 단톡방에서
" 수능날 기도를 도와주실 어머님, 신청하세요."
라고 말씀 하시는데
그동안 무임승차를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고
그래도 모라도 하면
우리 아이에게 힘이 될까 무작정 신청을 했다.
" 1교시 2교시 3교시 4교시 신청받습니다. "
" 엘리아나 자매님 몇 번째 기도 하시겠어요? "
" 1교시는 제가 기도를 어찌하는지 아직은 부족해서 2교시하고 싶습니다. "
그렇게 나는 2교시 기도를 맡았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고
기도책과 여러 가지 준비물들을 챙겨서 성당에 나갔다.
자세히 못 본 내 탓인지
나의 운명인지
2교시 기도는 묵주 기도를 두 번이나 해야 하는 가장 긴 기도 시간이었다.
' 내가 잘할 수 있을까? '
그러면서도
이렇게 기도에 대하여 좀 더 잘 알게 되겠지.
그렇게 마음을 다 잡고
나의 이런 긴장감과 부담감을 우리 아이도 느끼고
아니 더 많이 느끼고 있겠지.
그 마음을 좀 나눈다는 마음으로 1교시 기도가 끝났다.
20분의 쉬는 시간 동안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혹시 실수라도 해서
경건한 마음의 다른 학부모들에게 부담을 드리면 어떡하지?
너무도 다행히도
딱 봐도
항상 기도를 큰 목소리로 앞장서서 하시는 두 분이 나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어 주셨다.
" 2교시 맡으신 어머님이시죠? "
' 그런데 어떡해요~ 제가 잘 못해서 혹시라도 다른 분들에게 피해를 드릴까 봐 걱정이 돼요. "
" 아니에요! 너무 감사한데요. 그냥 나오는 대로 해주시면 되세요. "
" 혹시 제가 자매님 옆자리로 옮겨도 괜찮을까요? "
" 아니에요~ 제가 자매님 옆자리로 옮길게요. "
그렇게 기도가 시작됐고
장장 100분의 기도를
옆에 계신 자매님의 도움으로
물론 실수도 있었지만
잘 해낸 것 같다.
후반부로 갈수록
끝나면 꼭 옆에 자매님께
양손을 잡고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다.
라는 생각을 할 만큼 여유도 생겼다.
다른 분들이 못 들으실까 봐
진심을 담아 꾹꾹 눌러 외운 기도는
내 머릿속에 깊이 새겨졌고
그 어느 때보다
진심 어리게
그리고
너무 정확하게 기도를 한 것 같다.
2교시가 끝나고
점심을 먹으러 내려가는데
작은애에게 카톡이 왔다.
" 엄마ㅡ 내가 학교 가다가 성당에 잠시 들어갔는데
엄마가 안보이드라. 목소리만 들렸어."
" 응 ㅡ 엄마 앞에서 기도했어."
" 그거 엄마 목소리 맞지? 다들 대단하시다. "
가끔은
엄마 노릇이랍시고 하는
어떤 행동들이 과연 아이를 위한 것일까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오늘
여느 날과 같은 목요일 아침을
아이를 위한 답 시고
기도를 드리고
성당 자매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위로도 받고
공감도 하고
멀리 있는 친구에게 응원도 받고
딸에게 인정도 받고
그렇게
여느 목요일이 지나가고 있었다.
엄마의 이 고군분투가
아이에게 닿겠지?
이 여느 목요일이
우리 아이에게
아니
모든 수험생에게 어떤 방식이든 닿겠지?
2025년 여느 목요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