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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Context Reboot

고양이를 찾으면 전단은 직접 수거하겠습니다 (1)

by Ellie






고양이를 잃어버렸다.

실종.

내가 이런 전단을 길가에 삐라처럼 뿌리는 날이 올 줄이야.


사건의 발단은 지난 주말 아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른한 주말 오후. 창가에 앉아 지척지척 내리던 가을비를 구경하던 그때. 회색빛 허공 위로 촘촘히 그어지는 흰 빗줄기를 바라보다 문득 밖에 나가 볼까란 생각이 들었다.

별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에 서 있으면 기분이 좋으니까.

우산을 들까, 우비를 입을까 고민을 하며 고개를 돌리는데 눈에 무언가 탁 걸렸다.

방 한구석에 암모나이트처럼 몸을 둥글게 만 채 잠들어 있는 다갈색 빛의 고양이.


몬티였다.


태어나서부터 늘 집 안에서만 지내던 나의 집고양이.

몬티가 아는 물줄기는 전부 금속 입구나 플라스틱 노즐을 거쳐 나온 것들뿐이었다.

싱크대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샤워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 가끔 정수기에서 튀는 물 같은 것들.

그래서였을까.

늘 누군가 틀어줘야만 나오는 물만 봐온 고양이에게, 하늘에서 곤두박질치는 빗줄기를 처음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틀지 않아도 펑펑 쏟아지는 물줄기. 너 그거 제대로 본 적 없지?


산책 길에 몬티를 데려간다.


충동적인 생각이긴 했다.

하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생각 같기도 했다.

아주 잠깐만.

비를 보여주고 오는 것쯤은.
우리 둘 다 물을 좋아하니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나는 내킨 김에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우비를 챙겨 입고 몬티를 품 안에 감싸 안자, 므에엥-. 아직 잠에서 덜 깬 아이가 작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을 나서 밖으로 한 발자국 내딛자 품속에서 몬티가 둥글게 몸을 웅크리는 게 느껴졌다. 손끝으로 가만 등을 쓰다듬어주며 우린 조금씩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줄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투명 우산 위로 빗방울이 쉴 새 없이 떨어졌다.

타닥, 타닥.

규칙적이면서도 불규칙한 리듬. 발밑으로는 젖은 아스팔트가 빗물에 반질거렸다. 철벅철벅 소리를 내며 걸음을 옮기는 동안 우비 단추 사이로 빼꼼 무언가 튀어나오는 게 보였다. 몬티의 분홍색 콧잔등이었다. 촉촉해진 코가 벌름거리기 시작했다. 분주히 냄새를 맡으며 빗속 세상을 탐색하는 모양이었다. 잔뜩 움츠러들었던 몸도 어느새 부드럽게 이완되어 있었다.

이젠 덜 무섭구나.

그래서 나도 더 욕심을 냈던 것 같다. 이대로 좀 더 멀리 가도 괜찮을 것 같다는.


그래, 조금 더 걸어보자. 괜찮을 거 같은데.


빗소리와 발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오후. 그렇게 얼마나 더 걸었을까, 문득 눈에 익은 풍경이 펼쳐졌다.

낡은 담벼락, 그 옆 작은 슈퍼, 골목 끝에 보이는 파란 대문.

이모네 동네였다.

이모를 언제 마지막으로 봤더라.

지난 설날?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어쨌든 꽤 됐다. 그 생각이 들자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이모네 쪽으로 향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잠시 후 문이 열렸다.


"비 오는 날엔 그냥 집에 있지 뭐 한다고 여기까지 왔어."


이모가 놀란 얼굴로 우릴 맞았다. 내 우비 안이 불룩한 걸 보더니 이게 뭐냐는 식으로 쳐다봤다. 몬티도 함께 왔다고 하자 작게 한숨. 내가 또 괜한 짓을 한다고 생각한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모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다.


"므엥. 므에엥."


안에 들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몬티가 울기 시작한 것이다. 낯선 공간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이모는 내왔던 차를 도로 가져가며 나를 향해 휘휘 손을 내저었다. 내가 뭐랬냐, 하는 표정이었다.

차는 입에도 대지 못한 채 다시 되돌아 나서는 길.

이모가 현관까지 배웅을 나왔다.

바깥은 아직도 비가 한창이었다.


"얼른 들어가."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우산을 펼치고 막 걸음을 떼는 순간이었다.


미끄덩.


발밑에서 무언가 쓸리는 느낌이 난다 싶더니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어?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채 자각하기도 전.


쿵-.


바닥에 얼굴부터 처박혔다.

뺨에 느껴지는 차가운 물기와 거친 콘크리트 감촉. 고개를 들자 흐릿한 시야 너머로 뒤집힌 채 나동그라진 슬리퍼 한 짝이 보였다.


뭐야.

나 지금 넘어진 건가?


"야야ㅡ"


다음 순간 이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 멈춰서 나를 돌아보는 것이 느껴졌다. 이어지는 말은 찰과상, 무릎, 손, 피, 병원... 이런 단어들이었지만 꿈결처럼 멀리 느껴질 뿐이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몬티.

몬티가 어디에 있지?

몬티가 보이지 않았다.


"하이고, 젊은 아가씨 무릎이 다 까져서 어째?"


마침 비 구경을 하고 있던 동네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한마디 내뱉었다.


"괜찮어?"


하얗게 질린 얼굴로 피가 철철 흐르는 내 팔뚝과 다리를 보며 묻는 이모에게 나는,


"몬티는?"


몬티의 행방부터 물었다.


"뭐어?"

"아니... 넘어지기 전까지 안고 있었는데..."


내 눈이 황급이 주변을 훑기 시작했다.

세상이 기우뚱 뒤집히는 것 같던 때.

차 밑으로 튀어 나가는 모습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니, 확실하지 않았다. 순간이었으니까.

저만치 날아간 슬리퍼를 다시 신지도 못한 채 맨 발로 주변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차 밑을 들여다보고, 담장 모퉁이를 살피고, 배수구 틈을 확인하고.

그런데-.


"... 안 보여."


그 어디에서도 몬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넘어지고 일어서는 사이, 몇 초도 안 되는 그 시간에 몬티는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온 사방이 다 담장으로 막혀 있는데. 어디로 사라진 건지."


이모가 허리춤에 손을 얹고 잠시 숨을 돌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머리가 멍했다. 현실감이 없었다.


이게 진짜라고?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처음부터 잘못됐다는 자각이 이제야 들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의 산책을 계획한 것부터, 하네스도 없이 고양이를 안고 밖으로 나갔던 거, 비 오는 날 장화대신 미끄러운 슬리퍼를 신은 일, 그리고 칠칠치 못하게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장판지를 보지 못한 것까지.


전부 내 잘못이었다.


그 뒤로 다섯 시간 가까이 온 동네를 뒤졌다.


비는 그친 지 오래였지만. 온몸이 땀인지 빗물인지 모를 것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무릎과 팔뚝에서 피가 흘렀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몬티의 이름만 외치며 걷고 또 걸었다. 골목을 돌고, 담벼락을 따라 걷고, 다시 돌아와 같은 길을 돌고....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막다른 골목길 앞. 다리에 힘이 풀린 나는 낯선 담벼락에 기댄 채 주저앉았다. 주변은 벌써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몬티는 지금 어디 있을까.

어둠 속에서 혼자, 떨고 있을까. 배고파하고 있을까. 나를 찾고 있을까. 아니면 날 원망하고 있을까.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양손으로 무릎을 감싸 안고 몸을 웅크리자 그제야 참고 있던 눈물이 왈칵 터졌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어쩌지.

그렇게 답 없는 질문만 되풀이하기를 수어 분.

계속 여기 이렇게 앉아 있을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축축하고 차가웠다. 상처는 쓰라렸고 배도 고팠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옷을 갈아입고 상처를 소독하고, 뭐라도 먹고. 그리고 다시 나와야 했다.

힘내자.

이럴 때일수록 무너지면 안 돼.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비틀대며 골목을 다시 되짚어 걸어갔다. 한참 길을 되돌아가 이모네 집 대문 앞을 지나치던 그 순간.


휙.

무언가 담장 모퉁이에서 움직이는 게 보였다.

고양이였다.


"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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