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성인과 어른의 경계

우리를 어른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by 은유 Metaphor


우리 모두는 성인이지만,
어른은 아닐 수도 있다.



성인이 된 나는 그 문장을 안경 대신 눈앞에 끼고, 어른들을 바라봤다. 당신은 성인이지만 어른은 아니군요. 아, 너는 어리지만 어른이구나. 하나, 둘. 저 문장의 좁은 틈새를 통해 마치 여과되듯 몇 방울의 단상과 어쭙잖은 판단들이 머리 안에 쌓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그 문장을 통해 나의 부모와 친척들을 바라봤을 때, 나는 질문에 대답하기가 어려워졌다.


어렸던 내 목을 한 손으로 들어 올려 뺨을 때리고, 친부와 닮았다는 이유로 나를 학대했던 그들은 어른이었을까? 내가 성인이 되어서야 그 잘못을 시인하고 내게 사과한 그들은 어른이었을까? 어른이라면 버렸어야 할 감정들을 가정보다 우선시하여, 내게 세 명의 새아버지를 선사한 내 모친은 어른이었을까? 어릴 적 내게 식칼을 들이밀며 훈육했던, 사라진 내 부친은 어른이었을까?


우리는 미성숙하다. 나이만 든 채 어른의 행세를 할 뿐, 속은 십 대처럼 철없고 여리다. 그리고 그때는 아마 그들도 미성숙했을 것이다. 처음 살아보는 삶이라서, 처음 해보는 어른 역할이어서, 그랬을 것이라 이를 갈며 믿어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른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어른이든, 어른 행세를 하는 성인이든, 무엇이든 말이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어른들이.


하지만 이제 어른들은 우리 곁에 없다. 때로는 압제적으로, 때로는 이타적으로, 때로는 온화하게, 우리에게 거침없이 그 연륜과 삶의 족적에서 흘러나오는 윤기가 흐르는 기름 같은 문장들을 건네줄, 아니, 사실 그 어떤 말이라도 좋았을, 어른들은 더 이상 우리의 곁에 없다. 이 시대와 갈등은 어른과 우리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시켰다. 어른과의 따뜻하고 끈끈한 무언가들은 이제 MZ 혹은 꼰대처럼 세대갈등을 대변하는 단어들 속에 파묻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루 평균 3~4명의 30대가 자살로 숨을 거둔다. 당신이 오늘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세 명의 사람 중 한 명은 다음날까지 살아있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균등한 기회의 부재, 살인적인 물가와 주거비, 정체된 초년임금, PF의 위축, 1인 가구의 증세 등 다양한 통계들이 모여 하루 서너 명의 목숨을 앗아갔겠으나, 나는 그 모든 것들을 감내하고 버텨낼 수 있었을 무형의 인간관계, 즉 어른과의 유대, 함께하는 시대정신 속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들과의 신뢰와 끈끈한 무언가, 그 무언가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 따뜻하고 끈끈한 무언가들이 사라진 빈자리에는 무엇이 남았나? 혐오와, 세대갈등과, 몰이해와, 서로 조심하여 건드리지 않으려는 거리 두기만이 남았다.


무엇이 우리를 어른으로 만드는 것일까? 우리가 믿고 따랐던 어린 시절의 어른들은 그저 하나의 시대상에 불과한 것일까? 지금, 그리고 앞으로 출현할 어른들이란 지금처럼 헤매는 젊은이들을 방관하고 그저 자극하지 않으려는 소극적 시대상으로 변화해 갈 뿐인가? 아니, 사실은 우리가 그들을 그런 어른으로 만든 것은 아닌가? 아직 어른들은 실존한다. 단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 뿐, 어른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허나 무언가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와 어른들 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 없다면, 그나마 남아있는 어른들은 그저 시대착오의 화석에 불과하게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화석으로 치부하기에, 나는 몇몇의 얼굴을 지나치게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꽃 향기가 나는 어른,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귀인 같은 어른, 그리고 누군가의 방황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따뜻한 어른. 그 어른들은 어디에 있는가? 어쩌면 그들은 지금 말수가 줄어든 채로, 자기 차례가 아닌 순간에도 책임을 느끼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서 어디선가 숨을 고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드러나지 않기로 선택했거나, 이미 여러 번 상처받아 한 발 물러난 채로 말이다.


다만 몇 가지는 분명해졌다. 이제 우리가 그들의 순서를 이어받을 나이가 되었다는 것과, 그들이 더 이상 우리 위에 서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들 또한 누군가의 어른이 될 준비 없이 어른이 되었고, 우리는 그 부재를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하고 어른을 보며 혀를 찼던 기억이 있다면, 이제 당신과 나의 차례다. 보람 하나 없는, 보상 한 줌 없는, 그 고독하고 외로운 역할극을 이제 우리가 시작해야 한다. 세상은 너무 치열해졌다. 양보하는 사람은 바보가 되고,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은 멍청이가 되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연습해야 한다. 상대의 이야기가 실존하고 있음을 믿는 것, 냉소적인 태도를 버리고 따뜻한 온기를 건넬 수 있는 마음, 몇 마디 말 보다 더욱 오래 남을 태도, 가르치려 들기보다 더욱 견디는 자세, 내 몫의 책임을 조용히 떠안고 타인에게 그것을 전가하지 않겠다는 다짐. 우리가 덕목이라 부르는 그것들이 결국 우리들에게 다시 한번 따뜻하고 끈끈한 무언가를 만들어 줄 유일한 희생의 형벌이라 믿는다. 우리는 그러한 어른이 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