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만예몸 #실천법 #액땜 #기립성저혈압 #블랙아웃 #기절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마치 수면 내시경을 위해 프로포폴을 맞고 잠들 때와 비슷했다.
'숫자 거꾸로 세 보세요.' / '십.. 구......'
그랬다. 잘 드는 가위로 싹둑 잘라낸 것처럼 기억의 끝이 날카롭게 끊겨 있었다.
갑자기 머리가 너무 아팠다. 두피를 파고드는 통증 속에서도 순간 번쩍 든 생각은 '내가 왜 여기 누워있지?'였다. 곧장 '내가 침대에서 떨어졌구나'라고 생각하며 내가 침대에서 떨어지는 모습의 이미지를 상상해 냈다. 하지만 나는 침대에 누워 있지 않았다. 혼란스러웠다. 혼란스러움과 함께 곳곳에서 통증이 밀려들었다. 머리도 아팠고, 목도 아팠고, 팔꿈치도 아팠다.
불과 몇 분 전, 나는 침대에서 눈을 떴다. 주말에 늦잠도 잘 잤으니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해 보자는 심산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드레스룸 쪽으로 걸으며 힘껏 기지개를 켰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핑하고 돌았다. '아! 기립성 저혈압인가? 어지럽네' 어지럼증을 느낀 후 나는 진정을 하기 위해서 양손으로 벽을 짚고 머리를 벽에 대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빡!' 하는 소리도 들은 것 같다. 그냥 아픈 게 아니라 정말 많이 아팠다. 그 와중에 침대에서 굴렀구나 생각했지만 곧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아! 내가 쓰러졌구나'
난생처음이었다. 기억을 잃고 쓰러졌다. 벽에 손을 짚고 나서의 몇 초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술쟁이들이 겪는다는 '블랙아웃'을 술도 안 하는 내가 겪었다. 최근에 달리기를 하면서 체력도, 폐활량도 많이 올라온 후라 더 충격이 컸다. 결국 하기 싫은 '나이 탓'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벽을 짚고 있는 상태에서 180도를 돌아서 쓰러진 모양이었다. 쓰러지면서 침대 모서리에 머리를 스쳤다. 천만다행이었다. 조금만 더 깊게 쓰러졌다면 머리가 깨졌을 것이다. 다행스럽게 스치면서 두피를 빨갛게 긁어놨다. 뇌진탕 같은 충격을 직접 받았다면 피가 나도, 안 나도 큰 일이었을 텐데 정말 다행이었다.
쓰러지면서 목에도 충격이 있었다. 없으면 이상했다. 가벼운 추돌 교통사고에도 충격을 받는 게 목인데 이건 가벼운 추돌 사고 수준이 아니었다. 두피가 까진 통증과 두통이 같이 밀려왔다. 목 때문에 두통을 겪어 본 지라 구별할 수 있었다.
쓰러지고 나서 '침대? 아닌데? 아파! 아~기절했구나!'를 순차적으로 생각하고 난 후 가만히 누워서 아픈 곳을 찾았다. 의외로 허리는 괜찮았다. 그런데 넘어지면서 나풀거리는 팔이 바닥에 그대로 닿았던 모양이다. 팔꿈치 양쪽이 너무너무 아팠다. 이건 타박상의 통증 그 자체였다.
다행히 곧 일어날 수 있었다. 피가 철철 나지도 않았고,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세상에 이런 감사한 일이 있단 말인가! 근처에 원목 벤치도 있었고, 겨울이라서 들여놓은 풀업바도 있었다. 그 어디 모서리에 닿기만 했어도 바로 119행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로 잘도 쓰러졌다.
'이것으로 올해의 액땜은 끝인가?' 싶을 정도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2주 전 주말에 발생했다. 2주 동안 출혈이나 구토 같은 부작용은 없었다. 심지어 달리기도 했다. 이제는 누웠다 일어날 때 잠시 앉아 있는다. 앉았다 일어날 때도 벌떡벌떡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만 조심했더니 그 뒤로 다른 문제는 없었다.
나는 건강에서도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성의 폐경만큼 급격하고 뚜렷하진 않지만 시나브로 내가 알지 못하는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과거엔 경험하고 대응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경험에 따른 리스크가 너무 커졌다. 결국 사전에 모든 가능성을 예비해야 하는 비효율의 국면에 진입했다.
왜 다양한 차원의 여유로움을 준비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이제부터가 진짜로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인생 참 대단하다. 안정은 찰나요 변화는 일상이라 편하고 조용한 인생은 애초에 불가한 것이었다. 바닷물 짠지 안 짠지 찍어 먹어 보는 것처럼 이제야 알게 되었다. 똑똑한 척하고 살아봤자 인생의 변화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던 것이었다.
운동의 차원에서도 좀 더 부지런해질 필요가 있겠다. 이제까지 해왔던 운동들을 모두 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 하나의 운동으로 편하게 건강을 지킬 수 없는 시절이 되었다. 40대 이후에는 선제적, 예비적 운동을 많이 해야 한다. '하면 좋다'거나 '좋을 수도 있다'가 아니라 '무조건 해야 한다'라는 것을 잊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