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낯선 친숙함] 공공의 적

#베트남여행기 #베트남 #푸꾸옥 #Vietnam #PhuQuoc

by Maama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징표는 많다. 주름이 생기고, 처지고, 언제 다쳤는지 모르게 다치고, 쉽게 낫지 않으며, 아무렇지 않던 곳이 아프기 시작한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노화만큼 명확한 징표는 없다. 그런데 노화는 눈에 보이는 몸에만 오지 않고 생각에도 온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 새로운 정보 처리와 문제 해결을 위한 '유동성 지능'은 떨어질 수 있어도 경험과 지식에 기반한 '결정성 지능'은 향상될 수 있다고 한다. 나이가 들고나서 똑똑해졌다고 느껴지는 이유다. 그런데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아이들의 시도 때도 없는 스마트폰 사용이다.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대면 중 스마트폰 사용이다. 요즘 아이들은 사람을 앞에 두고도 대화를 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본다. 이게 회사에서 업무 중에도 환장하는 포인트인데, 여행 중이라면 어떨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낯선 환경, 낯선 공기, 낯선 소리들 속에서 하는 일이 스마트폰이라니! 아무리 여행이 낯선 곳에서 익숙한 것을 찾는 여정이라고 내가 말은 했지만, 익숙함을 낯선 곳에서 찾아야지 스마트폰에서 찾는 것은 절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이해 불가의 문제가 내 생각이 늙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 세계의 부모들이 똑같이 겪고 있는 문제라는 것을 이번 베트남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베트남 푸꾸옥은 잘 개발되어 가고 있는 휴양지다. 그러다 보니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많았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 대만, 홍콩,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유럽, 호주 등에서 관광객들이 온다. 그런데 이 다양한 나라의 가족들도 모두 같은 문제를 겪고 있었다.


각국의 아이들은 모두 같은 행동을 보였다. 고개를 숙이고 가슴팍의 스마트폰을 보았다. 대부분 숏츠나 게임을 했다. 여행지에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와이파이가 되는 곳이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각국의 부모들은 똑같은 잔소리를 했다.


호텔 방 안에서, 로비에서, 이동하는 버스에서, 줄을 서고 기다리는 순간에도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봤고 부모들은 잔소리를 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공통되고 일관성이 있었는지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났다.


'이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문제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묘한 해방감이 들었다. 그러면서 어쩌면 이것은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C 통신이 시작되고 인터넷이 되었을 때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던 우리도 잘 늙지 않았는가!




거대한 콘텐츠 플랫폼이 제공하는 공통된 경험의 결과는 지역과 인종을 초월해서 똑같이 나타나고 있었다. 똑같은 자세로 똑같은 콘텐츠에 몰입하고 있는 같은 나이대의 사람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스마트폰과 거대 플랫폼이 만들어 낸 세대가 지구 곳곳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그 세대를 보는 부모들은 모두 똑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고, 그 세대들은 그런 부모들의 말과 걱정을 가볍게 '스와이프'하고 있었다.


스마트폰과 거대 플랫폼은 새로운 세대에겐 그냥 '공공'이었고, 그 세대를 양육하는 부모들에게는 '공공의 적'이었다. '우리도 자랄 때 그랬나?' 그 시절의 나는 그 시절의 부모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억을 떠올려 봤자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부모님께 여쭤보는 것이 정확할 텐데, 그건 또 무서운 일이었다. 무언가 벌거 벗겨지는 느낌이랄까. 민망해서 앞으로도 묻지 않기로 했다.




요즘 유모차엔 스마트폰 거치대가 있다. 용도는 두 가지다. 아이가 볼 때도 있고, 유모차를 미는 사람이 보기도 한다. 아이한테 스마트폰을 보여준다고? 아이를 케어하면서 스마트폰을 본다고? 이런 생각이 들겠지만 이젠 적응을 해야 한다. 유동성 지능은 노화로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것은 그냥 외워서 결정성 지능으로 만들어야 한다.


전 세계인들이 모두 겪고 있는 일이니 외롭지 않아 얼마나 좋은가! []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낯선 친숙함] 무너진 언어 장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