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질맛 나는 라즈베리 파이
라즈베리 파이가 든 도시락 가방을 보면서 다이애나는 생각한다,
라즈베리 파이를 열 명이 나눠 먹으면 한 사람이 얼마큼씩 먹게 될까?
달지 않은 파이 크러스트인 파트 아 퐁세와 가까운 크러스트를 사용한 라즈베리 파이는 라즈베리의 달콤함과 크러스트의 바삭함이 잘 어울리는 디저트다. 먹을 것을 좋아하지만 친구들을 좋아하기도 한 다이애나에게 이 라즈베리 파이를 도시락으로 먹으며 친구들과 나눠 먹는 것은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타르트, 또는 파이가 등장하는 소설을 생각하면 지금은 근친상간의 대표작이 된, 책의 제목, 'Flowers in the attics'라는 문구가 근친상간을 대체하는 말이 된, VC 앤드류스의 <다락방의 꽃들> 시리즈에 등장하는, 지금은 타르트였는지 케이크였는지 기억나지 않는 레몬 디저트가 생각난다. 학창 시절 할머니 댁에서 찾은 이 책은 그 당시 읽은 소설 중 가장 이상하고 힘들었지만 2편인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을 처음으로 읽기 시작한 나는 그 후 도서관에서 1편에서 5편까지 빌려 읽기도 했다. 어느 장면에서였는지, 어느 상황에서 이 디저트가 등장했는지는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레몬 디저트가 등장했던 것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 부분을 읽었을 때 나에게 레몬 타르트든, 케이트든 다 생소한 디저트였기 때문이다. 한번 먹어보고 싶었고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조금 더 밝은 이야기들을 생각한다면 <더 헬프>에서 미니의 초콜릿 파이가 있을 것이고 <플립>에서 줄리의 엄마, 트리나는 로스키 집의 저녁 파티에 직접 만든 블랙베리와 치즈 케이크 파이와 피칸 파이를 들고 간다. 오랜 시간 이웃으로 지내며 한 번도 큰 교류가 없었던 이 두 집에 처음으로 모든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함께 한다. 두 엄마, 팻시와 트리나는 서로의 가족을 위해 음식을 준비한다. 브라이스는 줄리에 대한 헷갈리는 감정을 들여다보고 줄리는 브라이스 가족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소설이자 커서는 영화를 좋아하게 됐던 나에게 이 이야기 속 가장 큰 의미로 다가왔던 장면은 이 저녁 파티였다. 그날 트리나가 공들여 준비한 두 종류의 파이는 어떤 심정으로 만들어졌을지, 그것을 받은 브라이스의 가족들은 어떤 감정으로 파이를 받았을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파이들은 브라이스에게 트리나의 파이가 아닌 줄리의 파이들이었던 점도. 파이야말로 <플립>에서 중요한 달걀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음식인 점도 잊을 수 없다.
다이애나 베리는 욕심쟁이로 놀림을 받지 않기 위해 라즈베리 파이를 학교 친구들과 공평하게 나눠 먹었을 것이다. 세 개 밖에 없는 파이이지만, 비록 다이애나는 감질맛 나는 정도밖에 남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학교를 처음으로 간 앤은 친구들에게서 사과와 카드를 받고 친구의 구슬 반지를 껴보기도 한다. 앤이 학교를 좋아하게 되고 그 가장 큰 이유가 친구들, 특히 다이애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아져서일 것이다.
라즈베리 파이를 혼자 다 먹거나 친구들하고만 먹으면, 영원히 '욕심쟁이'라는 낙인을 피할 수 없었다.하지만 열 명이 파이를 나눠 먹으려면, 자기 몫은 감질날 정도밖에 안 되었다.
앤의 수많은 이야기의 또 다른 시작점이기도 하다. 상상력이 많은 앤은 학교 첫날 오솔길을 걸으며 그 아름다움에 감탄을 했고 다이애나는 라즈베리를 생각하며 걸었다.
다이애나가 양껏 먹고 싶어 했던 그 라즈베리 파이를 <빨강머리 앤 레시피 북>의 저자 케이트 맥도널드는 달지 않은 파이 크러스트와 물과 설탕을 라즈베리와 함께 넣고 졸인 필링으로 완성했다. 만들기 쉬워 도시락 디저트로 걸맞지만 맛있어서 자꾸 생각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케이트 맥도널드의 라즈베리 타르트를 만들고 케이트 맥도널드의 크러스트가 아닌 나의 파테 사브레 크러스트로도 파이를 만들어보았다.
밀가루 240g
차가운 버터 125g
슈가파우더 100g
소금 1/4 tsp
달걀 1개
*글에 나오는 인용구는 모두 고정아 번역가님이 옮긴 윌북의 <빨강 머리 앤>에서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