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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리하는 일상 Feb 20. 2020

초록 지붕의 앤 3.

라즈베리 코디얼

앤은 자신의 빨간 머리를 싫어하고 검정머리를 갖고 싶어 한다. 그래서 머리를 검은색으로 염색하지만 초록색 머리를 갖게 되고 결국 머리를 자르게 된다. 검정 머리가 갖고 싶었던 앤의 이 일화는 내가 어렸을 때 읽었던 빨강 머리 앤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 염색 소동과 함께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앤과 다이애나의 다과 파티 장면이다. 라즈베리 코디얼과 딸기술을 헷갈린 앤은 다이애나에게 딸기술을 대접하고 술이 입맛에 맞았던 다이애나는 그날 저녁 취해서 집에 돌아간다.

넷플리스 Anne with an E


앤의 이야기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또 다른 음료는 스테이시 선생님의 레모네이드가 있겠지만 우리는 항상 이 재밌고 앤스러운 이 일화 때문에 라즈베리 코디얼과 딸기술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 일로 베리 부인의 신경이 곤두서는 바람에 앤과 다이애나는 원치 않은 이별을 하게 되지만 말이다.




가자. 밀크셰이크 만들어줄게.


정세랑 작가의 책 <이만큼 가까이>에서는 사이다에 아이스크림을 넣어 크림소다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원작으로 하고 제레미 아이언스와 도미니크 스웨인이 주연을 한 동명의 영화에서 롤리타는 다이너에서 콜라에 아이스크림을 얹고 초콜릿 시럽을 뿌려 마라시노 체리를 올린 크림소다를 주문한다. 하지만 문학과 영화 속 등장하는 아이스크림이 들어간 음료 중 내가 가장 좋아하고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음료는 스티븐 크보스키의 <월플라워>에 등장하는 밀크셰이크다. 앤이 다이애나에게 사랑을 담아 준비했던 다과 파티처럼, 샘은 찰리에게 위로와 사랑을 담아 밀크셰이크를 만들어준다. 샘과 찰리의 우정은 그 밀크셰이크였을 것이다.


영화 <월플라워>


우유와 아이스크림, 믹서기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간단한 음료지만 한 모금 마시면 그 어떤 음료보다도 달고 충만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월플라워>에서 이 밀크셰이크와 이어지는 장면들은 패트릭이 찰리에게 '월플라워'라고 칭하고 찰리에게 친구가 생기는 장면과 샘의 픽업트럭을 타고 도로를 달리며 '무한한 자유'를 느끼게 해주는 노래를 듣는 장면이다. 

넌 그저 지켜보고, 너만의 방식으로 이해하지. 넌 월플라워야.




홈커밍 경기 후 샘과 패트릭의 초대를 받아 가게 된 파티로 향하는 도로 위에서 찰리는 라디오에서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을 만큼의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음악을 듣는다. 친구를 사귀었다는 생각에, 파티에 초대받고 자신이 '참여'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들뜬 찰리만큼 앤은 다이애나와 함께할 저녁 파티를 준비하면서 한껏 기분이 들떴을 것이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친구, 다이애나를 위해 준비하는 첫 번째 저녁 파티에 앤은 모든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채우고 가장 맛있는 음식들로 친구를 대접하고 싶어 한다. 마릴라의 '장미 무늬 찻잔 세트'로 친구를 대접하고 싶지만 계획은 말리라의 반대로 무산된다. 장미 찻잔 대신 평범한 갈색 찻잔 세트만을 허락하는 대신 말릴라는 앤에게 집에 있는 다양한 음식들을 먹는 것을 허락한다. 


라즈베리, 블루베리, 산딸기 코디얼


... 노란 단지에 둔 버찌 절임은 먹어도 돼. 어쨌건 그건 먹을 때가 됐어. 조금 더 있으면 상할 것 같아. 그리고 과일 케이크하고 쿠키, 생강 비스킷은 먹어도 돼.


'정말 관대한' 마릴라는 음식들과 더불어 마릴라는 앤에게 라즈베리 코디얼을 만들어준다. 다이애나와 함께 먹을 수많은 음식들 중 가장 앤을 기쁘게 했던 것, 그래서 다이애나에게 미리 알려주지도 않았던 그 라즈베리 코디얼은 무슨 맛일지 <빨강 머리 앤>을 처음 읽었을 때부터 궁금했다. '딸기술과 헷갈리면 라즈베리 코디얼도 숙성된 베리의 향이 날까?'부터 시작하여 조금 더 컸을 때는 '아니, 다이애나 베리는 어떻게 술을 그렇게 잔뜩 마신 걸까?'까지. 커서는 '코디얼'이 약한 알코올 음료를 칭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간 다이애나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기도 한다. 다이애나는 심지어 딸기술을 두고 자신이 마셔본 라즈베리 코디얼 중 가장 맛있다고 했으니 말이다. 

생각보다 만들기 쉽기 때문에 재료만 있으면 재빠르게 만들 수 있는 이 빨갛고 달짝지근한 음료는 만드는 시간보다 식히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조금 진하게 만들어 얼음을 동동 띄어서 마셔도 되고 라즈베리 대신 다른 베리를 넣어서 만들어도 된다. 나는 라즈베리, 블루베리, 산딸기가 함께 들어 있는 냉동 과일 세트로 음료를 만들었다. 아주 달고 아주 맛있었고 다이애나와 앤이 마신 딸기술의 맛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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