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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리하는 일상 Apr 09. 2020

초록 지붕의 앤 5.

Apple Dumplings

오래전에 어떤 괴짜 농부가 심은 커다란 사과나무들이 가지를 넓게 벌려서 길 위를 지붕처럼 덮고 있었다. 머리 위로는 눈처럼 하얗고 향기로운 꽃 지붕이 길게 이어졌다 [...] 하지만 저 사랑스러운 길을 가로수길이라고 부르면 안 돼요. 그런 이름에는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대신에...... 음.......'기쁨의 하얀 길'이라고 불러야 해요.


앤을 읽으면서 에이번리에 가장 눈에 띄는 점 중 하나는 어디에나 있는 사과나무일 것이다. 그린 게이블스로 가는 첫 여행에서 앤은 사과나무가 줄지어 있는 '가로수 길'을 '기쁨의 하얀 길'로 이름 짓는다. 사과나무는 에이번리를 아름답게 꾸며주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 앤과 다이애나의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에이번리 사람들이 요리를 하는데 중요한 재료를 공급해주기도 한다.


다이애나가 딸기술을 먹고 술 취한 그 날에도 앤과 다이애나는 사과나무 밭에서 사과를 따는 것을 놀이로 즐겼다. 비록 그 날의 티 파티는 참혹하게 끝났지만 사과 따기를 놀이를 즐기는 앤과 다이애나의 모습은 항상 즐겁게 기억된다. 




2014년에 개봉한 벨 앤 세바스찬의 스튜어드 머독이 감독을 한 영화, '갓 헬프 더 걸'은 스튜어드 머독이 기획 한 동명의 프로젝트 밴드의 노래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갓 헬프 더 걸의 노래 'Down and Dusky Blonde'에는 '나는 사과를 먹듯 하루에 책을 한 권씩 읽었다'는 가사가 등장한다. 영화 '갓 헬프 더 걸'에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브는 머리에 사과 하나를 올려두고 책을 읽기도 하고 'Pretty Eve in the Pub'를 부르는 제임스의 목소리를 뒤로 무릎에 사과를 올려놓고 편지와 노래 가사를 쓰기도 한다. 중요한 장면도 아니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이지만 왠지 사과가 나오는 영화를 생각하면 이 장면들이 생각난다. 


사과는 가장 익숙한 과일이면서도 가장 실용적인 베이킹 재료이기도 하다. 내가 어릴 때 가장 처음으로 배운 영어 단어도 'apple'이었다. 이렇게 실용적이고 익숙한 재료로 만들 수 있는 디저트 또한 다양하다. 케이크를 만들 수도, 잼을 만들거나 과자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사과로 만들 수 있는 음식 중 가장 사랑받는 디저트는 사과 파이일 것이다. 나 또한 사과 파이를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위에 쿠키 크러스트 대신 크럼블을 올린 사과 크럼블 파이를 만들기도, 먹기도 좋아한다. 따뜻한 크럼블 파이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그리고 직접 만든 캐러멜 소스가 있다면 따뜻한 캐러멜 소스까지 뿌려서 먹으면 소스와 파이의 열기에 살짝 녹아 흐르는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바삭한 크럼블의 식감, 부드럽고 상큼한 사과의 향이 어우러져 추운 날씨에 먹기 가장 좋은 디저트가 된다고 생각한다. 만드는 것 또한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만 그만큼 즐거운 과정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나는 사과 파이를 만들 때 가장 기분이 좋다.




하지만 앤의 이야기에 나오는 사과를 갖고 케이트 맥도널드가 생각한 요리는 사과 파이가 아닌 사과 덤플링이다. 사과 만두라고 할 수 있는 이 요리는 반죽 안에 얇게 썰은 사과 조각을 넣어 그 사과를 잘 덮고 오븐에 구운 요리이다. 파이와 비슷하지만 손에 들고 먹을 수 있으며 사과는 반죽 안에 숨어있다. 반죽은 쿠키 크러스트만큼 달지 않고 부드럽고 더 페이스트리 같다. 따뜻하고 달콤한 이 디저트는 앤의 이야기와도 어울리며 다이애나와 앤이 따 온 사과로 마릴라가 정성스럽게 만들어줬을 것 같은 디저트이기도 하다. 또는 마릴라와 앤이 함께 만들었을수도 있겠다.


'갓 헬프 더 걸'은 거식증으로 인해 정신병동에서 지내는 이브가 병원을 탈출 해 제임스와 캐시를 만나 그동안 꿈꿔왔던 밴드를 꾸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뮤지컬 영화다. 그저 귀여운 소품들과 아기자기하고 알록달록한 빈티지 의상들과 소품들이 가장 눈에 들어오지만 이 영화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한 시간에 한 곳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기적과도 같은 일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모든 영화들이, 모든 책들의 사건들이 한 곳에 모인 사람들의 순간을 담아내긴 하지만 스튜어드 머독이 이 이야기를 직접 제임스의 입을 통해 관객에게 들려주면서 그 순간들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 알려준다. 영화를 보면 그 속의 사람들은 이 사건이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한 순간 그들이 한 데 모였던 그 시간,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무한한 가능성 중 그들이 고른 그 한 가지의 사건은 무엇보다 의미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찬란했던 이 여름은 어디서 왔을까? 그 여름, 우리는 완벽한 순간에 있었다. 가능성은 끝이 없었다. 




크럼블

차가운 버터 70g

밀가루 90g

아몬드 가루 20g

흰 설탕 50g


1. 차가운 버터와 아몬드 가루, 밀가루를 비벼서 섞는다.

2. 설탕을 함께 넣어 섞은 후 조금씩 뭉칠 수 있도록 보관한다.


사과 필링

큰 사과 5-6개

흰 설탕 6 tbsp

시나몬가루 1 tbsp


1. 얇게 썰은 사과와 설탕, 시나몬 가루를 넣어 잘 섞고 30분에서 하루 냉장고에 보관한다.

(조각낸 사과의 경우 버터 1 tbsp과 함께 나머지 재료들과 팬에 설탕이 녹을 때까지 볶는다.)


파이 크러스트

차가운 버터 130g

밀가루 245g

흰 설탕 90g

달걀 1개


1. 버터를 밀가루에 비벼 빵가루와 같은 모양이 될 때까지 섞는다.

2. 가루에 설탕을 넣고 잘 섞고 달걀을 잘 섞어서 넣는다.

3. 반죽을 동그랗게 잘 뭉쳐서 만들고 랩으로 덮어 30분에서 1시간 냉장고에서 휴지 시킨다.


파이 만들기

1. 반죽은 얇게 밀어 타르트 팬에 놓은 후 다시 30분 정도 냉장고에서 휴지 시킨다.

2. 냉장고에서 꺼낸 반죽에 사과 필링을 넣는다 (이때 사과에서 나온 물은 1 tbsp 정도만 둘러준다.)

3. 채워진 파이 위에 만들어 놓은 크럼블을 흘리지 않게 잘 놓는다. 

4. 180도씨 오븐에서 20분에서 30분간, 크럼블과 파이 크러스트가 금색으로 익으면 꺼낸다.

5. 바닐라 아이스크림 또는 캐러멜 소스 또는 둘 다 함께 먹으면 맛있다. (캐러멜 소스를 만들 때 사과에서 나온 주스로 만들어도 맛있다)


*글에 나오는 인용구는 모두 고정아 번역가님이 옮긴 윌북의 <빨강 머리 앤>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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