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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리하는 일상 Dec 27. 2020

초록 지붕의 앤 9.

앤의 특별한 바닐라 케이크

특별한 재료가 들어간 음식은 무엇이 있을까? 

가끔 너무 특별해서 음식이 너무 맛있어지기도 하지만 가끔 특별한 재료는 음식을 망치기도 한다. 앤의 특별한 재료가 들어간 바닐라 케이크처럼 말이다. 앤은 케이크에 실수로 진통제를 넣는다.


하지만 케이크를 잘 만들고 싶었던 앤과 달리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자신의 음식에 특별한 재료를 넣는 캐릭터도 있다. <헬프>의 미니는 자신을 괴롭힌 전 집주인 힐리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신의 유명한 초콜릿 타르트에 자신의 똥을 넣는다. 처음 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을 때는 정말 좋아했지만 이제는 다른 생각이 드는 이 작품에 대해 원작 도서의 작가 캐서린 스토킷은 9/11 테러로 슬퍼진 세계에 기분이 좋아지는 이야기를 쓰려고 <헬프>를 썼다는 말을 했다. 흑인 가정부들을 백인 여성이 필두가 되어 돕는 영화, <헬프> 속 미니 역할을 맡은 옥타비아 스펜서는 이 영화에 출연한 것을 후회한다고도 했다.

이제는 복잡한 감정을 가지게 된 작품이지만 미니의 초콜릿 타르트 이야기, 그리고 책에서 등장하는 셀리아의 이야기는 항상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앤은 누군가에게 특별한 대접을 하기 위해 진통제를 넣은 바닐라 케이크를 만들었고 요리는 실패로 돌아간다. 항상 실수만 저지르는 앤이기에 언젠가는 실수 없이 요리를 하고 그 요리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기대했던 그날 앤은 진통제를 바닐라로 착각한다.

하지만 사람은 모두 실수를 한다. 당연한 이야기고 클리셰인 위로가 되어버렸지만 옳은 말이기도 하다. 그 실수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걸 어떻게 헤쳐나갈지 생각할 필요는 있다.


마릴라 아주머니, 다행인 건 내일은 아직 아무 실수도 저지르지 않은 새로운 하루라는 거예요. 저는 같은 실수를 두 번 저지르지 않아요. 한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는 분명 한계가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걸 다 저지르면 실수에서 벗어날 거예요. 그렇다고 생각하니 위안이 되네요. 



연말에는 실수와 후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올해 자주 쓰진 못했지만 연말이 되면서 더 자주 쓰게 된 일기장에 나는 항상 후회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 시간을 돌릴 수 있으면, 만약 다른 행동을 할 수 있었으면, 뭔가 달라졌을지. 가끔씩 시간에 대해 극심한 두려움을 겪고,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엄청난 슬픔을 느끼는 나는 언젠가 정말 힘든 한 해를 보내고 다음 해 목표로 '나에게 관대해지기'를 쓴 적이 있다.

그 후로 나는 매일 기도처럼 '나에게 조금 관대해지자'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그럼 그런 다짐을 한 이후로 나는 나에게 조금 더 관대해졌을까?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지금도 자책하는 나에게 나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지만, 관대해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횟수는 오히려 더 많아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넷플릭스 Anne with an E 시즌3 에피소드6

어릴 적 나는 앤을 말괄량이 소녀로 기억하곤 했다. 실수투성이의, 제대로 하는 게 없고 상상력만 풍부한 아이. 하지만 지금 나에게 앤은 온몸으로 삶에 부딪힌 아이가 되었다. 자신이 원하는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상상력을 두려움 없이 사용한 앤. 

반드시 실수 없이 요리를 해내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해내는 아이가 아니지만 그런 실수들로 앤은 오히려 더 많이 배우지 않았을까?

앤이 더 배우고 더 성장하고 자신의 실수로 자기 자신을 자책하고 크게 힘들어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과정에서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고 스스로에게 친절해지는 방법을 배워서이지 않았을지 나이가 들수록 더 생각하게 된다.

나에게 관대하고, 남들에게 친절한.

어쩐지 항상 약간은 비관적이고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나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세상에 약간의 희망이 있지 않을까 긍정적인 마음을 한 구석에 품고 있기도 하다. 

최근에 본 책에는 친절에 대한 장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마음 챙김과 정신 건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에서 작가 치데라 에거루는 이런 말을 한다.

'좋음'은 주관적이고 모호하다. 하지만 '친절'은 보편적이고 온화하고 순수하다.  




초콜릿 타르트

앤의 바닐라 케이크는 만들지 못했지만, 올해가 가기 전 나는 미니의 초콜릿 타르트를 만들었다. 내가 타르트를 좋아하는 이유는 항상 나에게 친절한 디저트이기 때문이다. 항상 타르트를 이야기할 때 하는 말이지만, 어느 재료를 넣어도 어울리는, 실패하기 쉽지 않은 디저티이가 나에게는 타르트다. 미니와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초콜릿 타르트를 만들었지만, 미니가 만들 타르트들 만큼 맛있길 바라며.

연말이어서 왠지 희망을 품게 된다. 내년에는 세상이 조금 더 친절하도록, 나도 나 자신에게 조금 더 관대해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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