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2022년 새해가 밝은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지만 나는 동양인이니까 아직 구정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내일이 당장 구정이라니 이제 미룰 수도 없다. 그래서 씁니다. 제가 수제비와 배추전을 해먹은 하루를.
새로운 시작을 위해 어떤 음식을 먹으면 좋을까?
<리틀 포레스트>는 혜원이 눈이 소복이 쌓인 밭에서 겨울 배추를 꺼내오는 장면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간단한 식사를 하고 잠에 든 혜원은 그다음 날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우고 와서 수제비와 배추전을 해 먹는다. 뜨근하고 얼큰한 김치 수제비에 노릇하게 익힌 배추전. 추운 겨울 꽁꽁 얼어버린 몸을 따스하게 녹이기에 충분한 음식이다.
혜원을 따라 나도 2022년을 시작하는 음식으로 김치 수제비와 배추전을 먹었다.
1월 중순에 해먹은 이 요리는 할 때도, 할 생각을 할 때도 기대하게 만들었던 음식이었다. 비단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음식이어서가 아닌, 충분한 준비와 평소 자주 이용하지 않는 재료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기대가 되는 음식이었다.
수제비 반죽은 아침부터 준비를 해놓고 국물로 쓸 육수도 미리 준비를 해두면서 저녁 식사를 기다렸다. 마침 눈이 자주 오는 시기였고 가장 추운 날들이 이어지는 시간이었다. 집에 온 혜원이 밀가루와 쌀을 탈탈 털어 두 끼를 해먹은 것과 같이 나도 무언가를 탈탈 털어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주 생각하게 되는 시기다. 연말을 즐기거나 기대하게 된 지도 이제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고, 예전만큼 연말의 분위기를 느끼고 사랑하는 시기가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 것 같다는 다소 부정적인 생각이 뇌리를 부유하고 있기도 하다. 언젠가부터 장기적인 미래를 기대하거나 큰 목표를 세우는 일이 힘들어졌고,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결국 돌아오는 것이 나에게는 음식이고 요리다. 하루에 끝낼 수 있는, 만족감이 있는 프로젝트. 너무 길게 보지 않아도 되고 그렇다고 허무할 정도로 빨리 끝나지 않는 어떠한 것.
수제비도 그런 음식이다. 음식을 몇 시간 전부터 준비하지만 너무 먼 미래를 바라보지 않아도 되는, 그렇다고 뚝딱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아니어서 기대를 하게 되는. 그냥 그렇게 차근차근 작은 걸음부터 밟아보게 되는 음식이다.
1월은 바깥에 나가는 시간이 줄고 대부분의 눈도 집 안에서 볼 것이라고 예상했던 달이지만, 어쩐 일인지 평소보다 약속이 많았고 친구를 만나는 시간도 많았고 끝없는 즐거움과 바닥이 보이지 않은 것 같은 절망도 함께했던 시기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음식으로 마음을 돌렸고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요리만 하기도 했다. 요리를 하는 동안에는 그래도 내 마음이 가장 안정을 찾은 곳으로 돌아간 것 같다.
수제비 반죽 (4인분 기준)
밀가루 350g
물 100-200ml(조금씩 넣어가며 농도를 맞추면 된다)
소금, 후추로 간
수제비 국물
육수 (바지락 육수 사용)
당근, 호박, 배추, 양파 등 기호에 맞는 채소
배추김치
고춧가루
간장, 참치액으로 간
파
후추
배추전
배추
전분
달걀
(혜원은 부침 반죽을 따로 준비해서 배추전을 만들었지만 나는 배추에 전분을 얇게 묻히고 달걀을 묻혀 부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