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3 에피소드1 2.Eggplant,SimpleCarbohydrates
자신의 감정, 자신의 생각, 또는 자기 자신을 밖으로 꺼내놓지 못하고 숨기는 이유는 아마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속에 있던 어떤 것을 꺼내어 놓는 순간 '다른 사람들이 도망치지 않을까', 혹은 '내가 상처받지 않을까'에 대한 걱정 그리고 두려움. 내가 우울증이 있다는 사실을, 불안에 떨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나를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
Please Like Me 시즌 3의 첫 에피소드들, 에피소드 1과 2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좋아한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과 아직은 두려운 사람, 내가 이상하다는 거을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과 무엇이든 상관이 없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것도 말하지 못하는 사람과 모든 것을 말하는 사람.
채식주의자인 아놀드와 사랑에 빠졌지만 불안정한 아놀드의 마음 상태 때문에 선뜻 고백을 하지 못하는 조쉬는 아놀드에게 가지 요리들로 애정공세를 한다. 자신의 마음을 음식에 담아 그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지를 이용한 채식 요리들을 만든다. 언제가 아놀드가 마음을 열고 자신을 받아주길 바라면서. 그리고 어느 날 아놀드는 말한다. '난 사실 가지가 싫어!'
가지는 흐물거리고 조리를 하기 시작하면 물컹거리게 된다. 그래서 소금으로 물기를 빼거나 오븐에 넣어 탈수를 시킨 후 요리를 시작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물기가 없는 가지를 먹고 싶다면 얇게 썬 가지를 소금과 올리브유로 간을 하고 펼쳐서 오븐에다 굽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여전히 가지는 물컹거리고 흐물거리는 음식이긴 하다. 특별한 방법을 찾지 않는 한. 그래서 나도 가지를 싫어한다. 아니, 가지를 싫어했다. 적어도 한국에서 자라면서 소금과 마늘을 넣은 가지 볶음만이 가지 요리의 전부인지 알았던 때까지만 해도. 지금의 가지 또는 가지류의 모든 채소들, 주키니, 애호박 등의 채소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아직 친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친해지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 프랑스의 대표 채식 요리라고 할 수 있는 라따뚜이를 만들어보기도 했고 가지를 직접 볶아보기도 했고 이번에는 가지 마카로니를 해봤으니 말이다. 그리고 가지와는 조금 더 친해질 예정이다.
아직 알려지지 않길 바라는, 친구의 소개로 가게 된 경복궁역 근처의 한 식당이 있다. 콕 집어서 어떤 음식을 판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태리 가정식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집일 것 같다. 파스타와 수프 등을 파는 이 식당에는 가게 된다면 꼭 먹기를 추천하는 메뉴가 있는데 그 메뉴가 바로 가지 마카로니다. 송송 썰은 가지에 토마토소스와 마카로니, 위에 치즈를 듬뿍 올린 이 메뉴는 소량의 또띠아가 함께 제공된다. 또띠아를 리필해본 적은 없지만 또띠아 함께 먹지 않아도 맛있는 음식이긴 하다.
가지 요리를 처음 생각했을 때 떠올랐던 음식이 가지 마카로니였다. 그동안 파스타 요리는 많이 해봤지만 마카로니는 사용해본 적이 없었고 남은 마카로니는 맥앤치즈를 만들 때 사용할 수 도 있으니 일석이조이기도 했다. 여기서 고백해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나는 치즈를 좋아하지 않는다. 음식을 좋아하고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싫어하는 재료들이 많지만 치즈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치즈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너무 모순적인지만. 어떤 요리에 어떤 치즈가 들어가는 중요하고 좋은 조합으로 요리에 들어 있는 치즈는 좋아한다. 미국식 슬라이스 치즈는 어떤 요리에도 넣지 않으며 먹지 않는다. 특히 생으로는 더욱더. 파스타에 있는 치즈는 좋아하며 피자는 나의 소울푸드다. 그럼에도 난 누가 치즈를 좋아하냐고 물으면 '별로'라고 답한다. 난 절대 생으로 치즈만 먹지는 않으니까.
아무튼 내가 식당에서 먹은 가지 마카로니는 또띠아와 함께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난 또띠아를 만들었다. 피자 도우보다 시간이 덜 걸리고 난보다도 시간이 덜 걸리고 발효의 과정이 필요 없는, 하지만 피자 도우나 난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또띠아는 밀가루, 소금, 물, 식물성 기름만 있으면 10분 안에 완성할 수 있는 음식이다. 또띠아 피자를 만들어 먹을 수 있고 타코를 해먹을 수 있고 가지 마카로니를 얹혀서 먹을 수도 있다. 밀가루로 만들었기 때문에 맛있기도 하다. 글루틴 덩어리이기도 하고.
토마토소스 베이스를 한 요리를 만든 후 조쉬는 바게트 빵을 준비한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온 톰은 바게트 빵을 보고 화를 낸다. '나는 2주 동안 밀가루 음식을 먹지 않았다'라고. 밀가루 음식은 몸에 좋지 않은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음식을 만들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재료 중 하나가 밀가루일 거라고 의심치 않는다. 밀가루가 없으면 빵을 먹을 수 없으며 치킨도 먹을 수 없고 파스타도 먹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얀 탄수화물인 밀가루는 맛있는 음식이다.
우리는 어느 날부터 글루텐을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조쉬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모두가 밀가루를 그냥 먹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 밀가루는 피해야 하는 음식이 되었고 누군가에는 먹지 못하는 음식이다. 조쉬의 아빠에게 인터넷이 그랬던 것처럼 톰에게는 그 글루틴이라는 존재가 무섭고 싫은 존재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터넷은 때로는 즐겁고 밀가루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 인터넷처럼 밀가루도 수많은 형태로 변형이 가능하며 하얗고 부드럽고 좋은 냄새가 나며 밀가루로 빵 반죽을 만들고 있을 때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떤 음식을 만드는 것보다도 베이킹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에 나는 밀가루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도 밀가루를 먹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밀가루가 싫어서가 아니라 일부러,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어느 순간에는 밀가루를 먹기 시작했고 이제는 건강을 챙기려면 밀가루 대신 다른 음식을 먹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밀가루로 만든 음식들은 맛있기 때문에,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밀가루를 포함한 탄수화물은 맛있기 때문에 때로는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먹게 된다. 그 무시무시한 글루틴 덩어리일지라도.
자신에게 좋지 않은 것을 알면 빨리 포기하고 쳐다보지도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Please Lke Me 시즌3 에피소드 2, Simple Carbohydrates는 우리가 항상 먹으면서도 건강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정말로 건강에 큰 해를 끼치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나에게 해가 될거라고 생각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또는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사람들. 그게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이 됐든, 물건에 대한 감정이든, 또는 나 자신에 대한 것이 됐든. 그것을 뱉어내냐 뱉어내지 못하냐는 각자 다르겠지만 어쩌면 모두들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해주길 바라고 있을 사람들, 그것을 드러내지 못할지라도.
사용재료
가지 마카로니: 가지 5개, 토마토 4개, 토마토소스 300g, 양파 1/2개, 마늘, 당근 1/3개, 마카로니 200g, 물 200ml, 식초, 설탕, 소금, 후추, 바질, 리코타치즈, 모짜렐라치즈, 파마산치즈
또띠아: 밀가루 250g, 물 90ml, 식물성 기름 3tbsp, 소금 1/2t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