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4 에피소드 5. Burrito Bowl
누군가와 나의 관계를 가장 잘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그 사람에게 얼마나 의지를 하고 있는지, 또는 그 사람이 나에게 얼마나 의지를 하고 있는지,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믿고 있는지, 또는 그 반대 거나. 아무래도 그 사람이 사라지고 나면 그 사람과 내가 맺었던 관계를 가장 잘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부리또 볼은 우리가 알고 있는 부리또 속 모든 음식을 그릇에 꺼내어 놓고 먹는 음식이라고 볼 수 있다. 밀가루 이불에 가려지지 않은 재료들이며 때로는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채식을 하기 위해 먹는 음식이기도 하다. 고기를 넣지 않고 초록색 채소와 양파, 옥수수, 밥, 매콤함 치포틀 소스 또는 사워크림을 넣고 만드는 부리또 볼을 조쉬의 아빠 또한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먹는다. 조쉬에게 전화가 온 아빠는 콩이 탄수화물인지 물어보고 조쉬는 엄마가 죽었다는 대답을 한다.
시즌 4 에피소드 5, 부리또 볼은 제프리의 재등장으로 시작한다. 조쉬가 게이임을 깨달은 후에 처음 만났던 남자 친구이자 예쁜 얼굴에 조쉬를 좋아했지만 한없이 지루했던 남자 친구. 하지만 제프리의 마지막 선물이었던 뻐꾸기시계는 시즌이 지나면서도 틈틈이 집 안에서 울렸고 조쉬는 때로는 제프리를 본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조쉬의 인생에 다시 들어온 제프리와 하루를 보내며 조쉬는 다시금 제프리와 자신이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깨닫게 된다. 더 이상 연인이 될기에도 친구가 되기에도 의미가 없을 만큼. 이 에피소드에서 조쉬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재확인하게 된다.
나는 한때 고기를 먹지 않았던 적이 있었고 한때 밀가루를 먹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우유를 포함한 모든 유제품을 피했던 적도 있다. 부리또 볼 에피소드를 보면서, 그리고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부리또 볼을 만들면서 나는 이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관계,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됐지만 나와 음식과의 관계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왜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는지, 난 왜 밀가루를 먹지 않았던 적이 있는지, 난 왜 유제품을 싫어하지만 피자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단지 동물들이 불쌍해서?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유당불내증이 있어서? 아니면 그 이유들 뒤에 숨겨진 또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일까.
부리또 볼은 모든 재료를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먹기 쉬운 음식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눈 앞에 날 것 그대로 있을 때 그거에 대해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지 한 번에 알 수 있다. 보통은 맛있고 건강하고 신선하고 약간의 유전자 변형이 된 식품들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채식주의자라면 무엇이 들어 있는지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되고 고기가 꼭 있어야 식사를 한다면 먹지 않을 수도 있다. 대신 내가 무슨 재료들로 이루어진 음식을 먹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나에게 이미 다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나는 부리또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밀가루와 쌀알이 함께 있는 느낌을 싫어하기 때문에 부리또를 먹게 될 경우 밥 대신 감자튀김을 넣어서 먹는다. 고기를 먹지 않던 시기에 내 부리또에는 감자튀김과 새우튀김 그리고 양배추만 가득했다.
우리는 학교를 다니면서 한 번쯤은 육류를 섭취하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그 다큐를 보면 한 시간 정도는 고기를 먹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고기를 먹지 않은 이유는 철저히 동물들이 불쌍해서만은 아니었다. 쿠크다스 내장을 갖고 태어난 나는 나의 상태를 고기 또는 밀가루 탓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들을 먹지 않으면 조금이라도 살이 빠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여자는 평생 다이어트를 한다'라는 문구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쓰레기 같은 표현이지만 사회의 시선으로 인해 여자는 자신을 잘 가꾸고 항상 날씬해야 하고 미인이어야 하고 화장을 해야 하고 속옷을 갖춰 입어야 미덕이 있었다. 그리고 난 여자고 그 시선을 무시하기엔 아는 것이 부족했다. 음식을 먹는 것 자체가 무서울 때도 있었다.
고기를 먹지 않고 밀가루를 멀리하는 것이 물론 내 몸에 변화를 주기는 했다. 하나는 나를 건강하게 만들었고 하나는 나를 힘없이 마르기만 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둘 중 무엇이 내 몸에 어떤 변화를 줬는지는 말할 수 없다. 나는 채식주의자도 아니고 비건도 아니며 글루틴에 알러지가 있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어떤 것을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닌 것 같다. 나는 지금은 그냥 다 먹고 있다. 고기보다는 해산물을 좋아하지만 고기를 먹고 있고 밀가루가 내 속을 더부룩하게 만들긴 하지만 빵을 좋아하고 피자와 파스타를 좋아하기 때문에 나와 떨어질 수 없는 재료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내가 먹는 음식들을 조금 도 표용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아직도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하긴 한다. '채식주의자가 되면 조금 더 건강하고 날씬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가끔은 앞에 있는 파파존스의 올미트가 너무 맛있기 때문에 오래가지는 않는다. 먹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기에는,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맛있고 즐겁게 먹기에도 시간은 너무 짧다.
사용재료
밥: 귀리, 흑미, 현미, 흰쌀, 라임, 소금, 설탕
토핑: 양상추, 상추, 옥수수, 토마토, 아보카도, 양파, 파마산 치즈, 검은콩, 라임
소스: 살사소스, 고추장, 고춧가루, 라임, 꿀, 사워크림 또는 치포틀 소스, 사워크림, 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