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읽기 첫 번째 모임

박경리 문학의 집 방문

by 달과

9시에 만나 우리는 10시에 뮤지엄 산에 도착했다. 박완서 전집 읽기를 성공리에 완수하고 우리는 겁 없이 호기롭게 토지 읽기에 돌입했다. 미정 씨의 제안에 누구도(회원이라 봐야 나와 금주 언니뿐이지만) 거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승인했다. 사실 우리는 박완선 전집 읽기에서 책을 완독 했다는 기쁨 못지않게 함께 한다는 가치를 느끼고 있었고 그래서 그다음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애초에 아무 기대도 없었던, 그래서 더 홀가분하고 가뿐하게 해낼 수 있었던 우리의 공동 목표 완수가 다음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했다.

우리는 그 첫 모임에 박경리 문학관에서 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의욕만 앞섰던 아줌마 셋을 하동이라는 긴 여정을 포기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경기도 광주에서 한 시간여 밖에 되는 안는 원주로 방향을 틀었다. 하동은 우리가 움직이기에 너무 넘었고, 그보다는 좀 더 큰 야망(1박 2일의 짧은 여정이 아니다 적어도 3박 이사의 긴 여정으로 일정을 짜야할 것 같은 생각이 앞섰다.)이 있었기에 원주를 선택했다.

원주는 정말 만만한 고장이었다. 우리 중 가장 연장자인 금주 언니에게 온종일 핸들을 맡기기에도 덜 뻔뻔해질 것 같았다. 출발하기 직전 언니는 물까지 한 병씩 안겨주면서 우리를 편안하게 리드해 주었다. 자동차 딜러인 언니는 우리 중에 제일 안전하고 멋진 차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연장자임에도 불구하고 운전을 자처했다. 철없는 동생들은 마냥 신나서 조수석과 뒷좌석을 차지했고, 뒷좌석에 앉은 나는 편안하게 누워서 멀리를 달래면서 이동했다.

뮤지엄 산은 나로서는 처음 방문하고 곳이었는데, 얼마 전에 아들은 건축학도인 여자친구에게 구경을 시켜준다면 우리의 차를 가지고 갔던 곳이었다. 나는 아빠를 닮은 아들의 자상함에 아들의 여자친구를 부러워했었던 적이 있기 때문에 뮤지엄 산에 도착했을 때는 설레기까지 했다. 안도 타다오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고

맏며느리밥상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박경리 문학의 집을 방문하고 그의 자료들을 살펴보았다. 문학관은 크게 나를 감동시킬만한 것은 없었지만 박경리 선생의 사진을 보고는 생전 말 한마디 나눠보지도 못한 그분이 그리워지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옆에 위치는 서희라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서희 카페는 생각보다 프로페셔널한 모습에 나는 놀랐다. 무엇보다는 간단한 메뉴판에 놀랐다. 보통 맛집의 메뉴판은 아주 심플했는데 여기도 그 이상의 맛집임을 보여주었다. 그보다 더 놀란 것은 주문을 받아주는 바리스타들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들을 보고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으로서 나의 모습을 반추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 여행이 끝난 후 내 카페를 어떻게 운영할지, 운영할 사장의 모습을 어떠해야 할지 영감을 받았다. 나는 철저하게 그들을 벤치마킹해야겠다는 다짐을 했고 그 다짐은 오래간만에 상당히 양심적이게 느꼈다. 한편으로는 빨리 카페에 복귀하고픈 마음이 들기도 했다.

우리는 카페 이층에 전시되어 있는 여러 버전의 토지 전집을 놓고 사진을 찍었고, 나는 그걸 어떻게든 기록에 남겨야겠다는 의욕으로 마음이 앞섰다. 카페는 그저 문학관 주변에서 돈이나 벌려고 하는 카페와는 달리 그 카페 자체만으로도 품격이 있어 그곳을 방문한 방문자를 한껏 고양시켰다. 그 기분에 힘입어 나는 내가 아는 만큼의 토지에 대해서 아는 체를 실컷 했다. 사실 나는 토지를 몇 해 전에 읽을 적이 있었지만 이번 모임 전에는 읽지 않았다. 나는 5월 1일에 이번 달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노라고 블로그에 선언을 했고, 그래서 미정 씨와 금주언니에게 미리 언질을 주었다. 나 이번 달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노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었던 기억을 더듬기 위해 책 중간중간을 발췌독을 하며 메모했고, 여기저기에 기록된 기록들을 살펴보았다. 게다가 블로그에 성실하게 토지 리뷰를 올린 블로거의 글을 감동적으로 읽어서 다시 읽지 않아도 읽을 것처럼 아는 척할 수 있는 정도로 기억을 복기했다.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도 즐겁게 토지에 대해 입을 털어서 속이 시원했고,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열정에 1시간여 이상을 카페에 머문 후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문학공원에서 돗자리를 펴고 5월을 느껴보기로 했던 마음을 실행에 옮겼다. 금주 언니 차 트렁크에 있던 돗자리를 박경리 선생의 동상 앞에 펴고 우리는 자리를 잡았다. 하나가 누우니 나머지 둘 도 누웠다가 아차 과일 바구니가 있었지 하며 과일 바구니를 열고 방울토마토며 체리를 먹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늘을 보고 누워 이 계절의 바람을 속 시원하게 즐겼다. 거기에 아무 기척 없이 누워 있는 금주언니가 깊이 잠들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고, 미정 씨는 인스타에 우리의 여정을 올리는데 여염이 없었다. 나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면 내가 여기까지 흘러온 날들에 대해 생각하고, 새삼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우리 옆에 있던 나무속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었을 때는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것의 현실감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대로 만족스러웠다. 우리는 이제 곧 문을 마감할 시간이라는 관리인의 안내를 받고 돗자리를 접기 시작했다. 문 닫을 시간까지 알차게 박경리 문학의 집을 즐겼다는 사실에 더없이 좋았다.

문지기가 열쇠를 닫은 것을 볼 즈음에 딸에게서 온 카카오 톡 메시지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엄마 너무 작아보워, 박경리 작가가 너무 커 보여.

조금 전 내가 박경리 선생의 동상 옆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말했다.

맞아 박경리 선생님은 아주 큰 사람이야.


나는 앞으로 박경리 선생의 작품을 다 볼 기대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