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Free Spirit

순례길 무드가 바뀐 걸까?

by Blue Moon

2024년 10월 12일 : Santiago De Camino

El Burgo Ranero- ㅡMansilla de las Mulas: 19 km



오늘은 약간 흐린 날씨다.

다른 때보다 일찍 잠이 깼다. 이른 시간부터,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일어나야 했다.


알베르게를 나설 준비가 끝났다. 시간은 대략 7시 30분이다. 하지만 바깥은 여전히 어둡다. 나는 겁쟁이다. 준비가 다 되었다고 어두운 길을 선뜻 나서지 않는다. 언뜻 보니.. 한국에서 오신 어르신 그룹들이 떠날 채비를 다 끝낸 분위기다. 속으로 '어르신들을 따라나서야지' 하고 있었다.


마침 , 어르신들이 손에 손을 얹고 '출발!‘ 하고 구호를 우렁차게 외쳤다. 이럴 땐 자연스럽게 함께 길을 나서게 된다. 나 같은(겁쟁이) 분이 또 한분 있었다. 그 아주머니도 어르신들의 출발 그룹에 조인했다.


한국에서 오신 어르신들은 일흔이 훨씬 넘은 분들이었다. 그 연세에도 숙소예약, 동키서비스, 길 찾기에 탁월한(?) 기술을 가지신 분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알차게 순례길을 준비하고 오신 것 같았다. 매일 나처럼 조금씩 걷는다. 큰 배낭하나에 무거운 짐을 나눠서 보내고, 각자 작은 배낭 하나만을 매고 걷는다.


약간 어두운 길인데도 용케도 길을 찾아내며 안내를 하신다. 이미 한번 언급했듯이 순례길을 혼자 걷고 있다면, 특히 이른 아침 또는 길을 걷기 시작할 때는 사람들을 따라가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안전하기도 하고, 엉뚱한 길로 들어설 염려도 없다. (물론, 카미노 앱이 있지만 나 같은 길치고 겁쟁이라면 이 방법도 좋다) 일단, 길에 들어서면 표식에 따라 걸어가면 되니깐.


오늘도 운치 있는 메세타 구간을 하염없는 사념에 빠져 걸었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진작에 느낀 사실이 한 가지 있다. 몇 년 전, 내가 순례길을 걸을 때와는 분위기가 좀 달라졌다. 메세타를 걷게 되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순례길도 세월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나?


팬데믹 이후로 걷는 순례길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내가 그 사이에 나이가 들어서 그러나?. 아니면 나이 든 나의 눈에는 나이 든 사람만 보인다고.., 순례길에는 대부분이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수두룩하다.


대부분이 6070 세대들이다. 2019년도에 순례길을 걸을 때는, 앞, 뒤, 좌. 우 사방천지가 20대 청년들로 북적거렸다. 반면에 나이 드신 어르신들을 만나는 일은 좀 드문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 순례길에서는 가는 곳마다 어르신들로 가득 찼다. 젊은 사람들은 대도시에서나 쉽게 볼 수 있었다. 순례길 위에서는 만나는 일이 많지 않았다. 마치, 산티아고 순례길은 이제 '은퇴 후에 걸어야 하는 길'로 분위기가 바뀐 것처럼 보였다


6070 세대 중에는 부부끼리 걷는 사람들도 꽤나 되었다. 그중에서도 상당한 사람들이 여성들이었다. 홀로 온 여성들은 주로 걸을 땐 혼자였다가 일단,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친구들을 만들었다. 함께 식사를 한다거나 동네 구경을 가기도 한다. 또 어떤 어르신 분들은 나처럼 홀로,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어떤 부부는 '멍에를 함께 지고'가 기도 했다. 여기서 멍에란 그들의 '배낭'이다. 어떤 부부는 배낭을 수레에 싣고, 끌면서 걸었다. 그들은 최대한 느리게 걸으면서 함께 힘겨운 길을 걷고 있었다. 어떤 분은 아내는 배낭을 메지 않고, 남편만 배낭을 메고 걷는 분들도 많았다.


어르신들의 순례길 걷기는 힘들어도 계속 행진이다. 무거운 배낭을 동키 서비스로 보내는 한이 있어도 정해진 길은 절대 건너뛰지 않는다. 꾸준히 길을 걷고 있었다.


어쩜, 그들도 궁금했던 걸까?..

순례길은 인생길과도 흡사해서 인생길에서 놓친 순간들을 느끼며, 그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젊은이들은 힘들면 팍~팍 건너뛰기도 하며 그러다가 다시 마음이 동하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나부터도 그렇고,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순례길을 다시 걷는 일을 계획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순례길 걷기에 더 애착하며 알뜰히 걷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공립 알베르게(Municipal Philgrims hostel)다. 어느 날 이후로, 공립 알베르게에 머무는 일이 많아졌다. 알고 보니 공립이 가격도 저렴하고, 무엇보다 친절하다. 게다가 키친을 포함하여 시설이 깨끗하고, 잘 되어 있는 곳이 많다.


만실라는 조용한 골목길마다 표정이 있는 마을이다. 늘 그렇듯, 나는 묵게 되는 마을에 도착하면 마을 종탑을 찾으러 나선다.


어느 마을이나 비슷한 모습이지만 종탑은 마주칠 때마다 새롭다. 이제까지 만났던 그 수많은 종탑은 한결같다. 은은한 선율은 늘 같은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도 생각한다. 저 종탑 하나를 내가 사는 동네로 가져갔으면 하고.


이번 순례길에 관한 글은 2019년도에 이미 발행한 순례길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