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레온으로!
오늘의 거리는 20킬로다. 이젠 걷는 일이 하루 일과가 되다 보니, 20킬로는 크게 힘들지 않은 거리가 되었다. 가는 길도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날씨가 쾌청해서 좋았다. 이번 순례길이 마지막 도착지라는 생각이 드니, 괜히 기운마저 솟았다.
레온은 이미 며칠간 머물면서 익힌 도시다. 하지만 걸어서 레온으로 가는 일은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말하자면, '걸어서 레온으로'는 처음으로, 이 도시에 발을 딛는듯한 감흥이 들었다.
레온 시내까지 들어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도시의 혼잡을 피해 이리저리 구글맵을 보며 알베르게를 찾아가는 길도 한참이 걸렸다.
내가 머문 곳은 레온의 국립 알베르게인 '산타 마리아 알베르게'다. 레온시의 번화가에서 가까이 있다. 이층에 마련된 침실은 쾌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다.
무엇보다 남. 녀의 침실이 분리되어 있어 편하다. 물론 포근한 담요도 공짜다. (참고로, 무조건은 아니다. 필요한 사람에게만 준다.) 깊숙한(?) 서랍장에 엄청난 담요가 있으니 얼마든지 물어서 사용할 수 있다.
산타 마리아 알베르게 옆 건물로는 성당이 나란히 들어서 있다. 마리아 알베르게가 순례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저녁 미사'가 아닐까 싶다.
미사는 '저녁 일곱 시'에 시작한다. 체크인을 할 때 미리 알려주지만 알베르게 관리인 아주머니가 시간이 가까이 오면 "미사 드릴시간이에요!'하고 순례자들을 성당으로 안내한다.
저녁 미사를 위해 나는 일찌감치 이른 저녁을 먹었다. 사실, 며칠간 레온에서 머무는 동안 저녁미사에 참여했다. 좋았다. 아마, 매일 저녁 미사를 드려도 좋을 정도였다. (참고로,성당에서 촬영은 금지 됩니다.).
성당 (Iglesia del monasterio Chapel)의 오후 미사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이 순례자들이었다. 신부님은 물론, 성가석에 자리 잡은 수녀님들도 한.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연세가 지긋한 수녀님들이었다.
수녀님들의 성가는 천상의 목소리처럼 가늘고,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성가는 높은 성당의 천장을 타고 흘러내려 메아리치듯 울려 퍼졌다.
그중에서 처음부터 눈길을 끈 한 분이 있었다. 등이 굽고, 꽤 연로한 수녀님 한분이었다. 안경을 흘러내리듯 걸친 눈으로 악보를 열심히 들여다보며 풍금을 아름답게 연주하고 있었다. 그처럼 진지하고, 열정적인 수녀님의 연주를 지켜보면서 한동안 감동에 젖었다.
이어서 성만찬이 있었다. 신부님은 일일이 순례자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해 주셨다. 순례길에서 드리는 미사는 쉼과 같은 평화를 느낄 수 있었다. 순례길에서 드린 최고의 미사였다.
미사가 끝나고 알베르게로 돌아오자마자, 한쪽 끝에서 한국사람으로 보이는 한 젊은 여자가 통곡을 하며 흐느끼고 있었다. 너무 서글프게 울었는데 우리 모두는 귀를 죽이고 하던 일을 멈추었다.
결국, 누군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녀의 슬픔이 무엇인지는 묻지 않은 듯했지만 '괜찮을 거야."라는 말만 되풀이되었다. 성당의 저녁미사가 그녀에게도 마음을 쓸어내리는 감동을 주었나 보다.
레온의 가을밤이 깊어간다. 모두들 잠자리에 들었다. 추워서 담요 두 개를 목까지 끌어당겼다. 내일이면 레온을 떠난다. 항상 떠난다는 건' 다른 '출발'을 꿈꾸게 한다.
누군가, 레온에 가면 뭐 할 거야?라고 묻는다면,
'저녁 미사에 가는 거야! '라고 말할거다.
저의 마지막 순례길 여정인 300킬로미터 걷기는 내년에 다시 이어질 예정입니다.
이번 순례길에 관한 글은 2019년도에 이미 발행한 순례길에 이어지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