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10월은 기가 막힌다.
우수수 내리는 낙엽, 잔뜩 흐린 날씨, 잔잔히 내리는 가랑비, 스산한 바람, 분위기로는 만점이다.
그래서 런던은 버버리를 만들어냈고, 유명해졌다고 한다. 거리에는 버버리인지 뭔지 , 알 수 없는 트렌치코트를 입은 여인들 천지다.블루진에, 스니커에 아무렇게나 걸쳤는데도 멋스럽다.
가을날, 트렌치코트로 멋내기에 런던만한 도시가 있을까? 패션감각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그 남자(남편)도 런던의 가을이라면 트렌치코트는 필수지! 했으니까.
나도 분위기 좀 내려고 트렌치코트를 챙겨갔다.
거기에다 뉴스보이 캡(Newsboy Cap)도. 영국식 뉴스보이 캡은 2년 전, 런던에 갔을 때 하나 장만했다.
계절인 것만큼 캡을 쓴 사람들이 많았다. 장사꾼들도 한창 대목이다. 가는 곳마다 뉴스보이 캡을 파는 리어카들이 많다. 잘만 고르면 제법 , 질이 좋은 울모자를 고를 수 있다. 하지만, 가격은 만만치 않다.
캡은 나 같은 여행자에겐 필수품이다. 시도 때도 없이 불어대는 런던의 바람막이로 유용하다. 매번 메이컵 하는 일도 귀찮다. 얼굴 분장은 간단하게. 대신, 트렌치코트와 캡만으로 멋을 내기로 했다. 가을의 런던은
코트와 캡, 두 가지 아이템만으로 분위기 내는데는 그만이다.
그런데..
런던의 10월은 날씨로는 여행자에게 최악이다. 얄미울 정도다. 있는 2주동안 매일같이 요동치는 날씨란다.
하늘은 시커멓다가 갑자기 해가 반짝이다가 또 비가 퍼붓는다. 이런식이다.
게다가, 바람은 사진 방해꾼이다. 나 같은 여행자에겐 '재수 없는 그 무엇'이다. 삼각대를 세우고, 뭐 좀 한컷 찍으려고 폼을 잡는다.
순간, 바람은 '에라~!' 하며 후려친다. 삼각대는 휘청~하며 땅으로 떨어진다. 얼굴은 머리카락 공세를 맞는다. 그것도 완전히.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휘청, 휘청, 뒤뚱, 뒤뚱, 동동거린다.
매번 그렇게 불어 제킨다. ' 이 봐~사진 따위 집어 쳐! 그냥 놀아!" 하는듯 하다. 비가, 바람이 손잡고, 매섭게 얼굴을 때린다.
나는 이 짓거리를(삼각대 놓고 사진찍기) 한. 두 번 시도하다가 급기야는, 그만두었다. 폰으로 배경사진 찍는 일도 그만두었다. 마음이 내키면 어쩌다 한. 두 컷 정도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
그렇지.. 어차피 이번 여행은 좀 이모셔널 한 여행이니까.. 사진이고 뭐고 잊어버리자고. 그냥 내 마음을 달래 보려고 떠나온 여행이 아닌가?. 날씨가 마음 편히 놀래잖아? 그래, 그냥 놀기로 했다.
런던을 즐기기로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런던의 10월은 명소가 아니더라도 동네든, 버스정류장이든, 시장입구든, 그 어디든 분위기가 있다.
그저 좋다.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캡을 눌러쓰고. 여행자가 아닌 , 슬쩍~런던러가 되어본다.어슬렁 골목길을 여유 있게 누비는 재미나 누리자구.
그래야, 런던은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아! 런던이 이렇지! 하며.
런던의 10월은 이상하고, 로맨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