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산, 나무, 나무의 지루한 캐나다
그날이 그날인 캐나다에서 참다못해 여행을 가려하면 언젠가부터 내 침대, 내 베개, 내 이불 냄새가 편해서 호텔이고 뭐고 다 싫어지더라고.
겨울 내내 어둑한 아침에 블라인드를 걷은 것이 불과 몇 시간 전인데 오후 4시면
어두워져서 블라인드를 내리면서 우울했다.
기분이 나쁘면 몸이 안 좋고 몸이 아프면 기분이 저조해진다.
고물가와 급작스레 올라간 외식비 덕분에 집밥을 고수하다 보니 없던 입맛까지 달아날 지경이다.
자연이 좋다한들 나무나 꽃을 뜯어먹고 살 것도 아닌데 좀 재미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처럼 집 앞에만 나서면 골목골목에 카페들이 포진해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나른하게 커피라도 마시면 좀 좋아.
여기서는 커피 한잔 마시려 마음만 먹어도 벌써 귀찮아진다.
옷 갈아입고 운전해서 적어도 15분 이상은 가야 하니 앓느니 죽지 안 먹고 만다. 커피조차도 이럴진대 친구와 약속이 있는 날은 그 전날 밤에 무엇을 입을지 시뮬레이션을 하다 잠을 걸친다. 막상 당일에는 대충 후드티에 청바지, 패딩 가방을 들고 나가게 된다.
앞을 보나 뒤를 보나 캐네디언들의 후줄근한 국민복을 보니
나는야 멋쟁이.
아무리 긴장감이 없는 생활이라 해도 불안, 초조할 때가 있다.
가령 피검사를 하고 결과를 알기 위해 앱을 여는 순간이라던가, 또 의사가 갑자기 오라고 할 때 등등.
며칠 전 친구가 유방암 수술하고 정기 마모그램을 했는데 기관에서 이상 없으니 1년 후에 보자고 해서 기분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서 룰루랄라 하고 있는데.
며칠 후에 패밀리닥터가 약속을 잡으라 해서 이건 반드시 무슨 큰 이상이 발견 됐구나 하고 거의 초주검 상태가 되었는데.
막상 전화를 받으니 들뜬 목소리로 이상 없으니 축하한다고 했다나.
의사 따로 기관 따로 국밥?
의사가 옆에 있으면 그냥 콱. 기절을 넘어 뇌절이었다고.
나이가 들면서 하루 루틴이 무한 반복되는 것에 감사해야 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세파는 없을 수 없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에 따라 병이 오기도 하고 평온하게 넘어갈 수도 있다.
그래도 지루한 건 지루한 거다.
나름대로 불안감과 지루함을 잘 참고 견디는 것도 삶의 지혜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실행을 못해서 그렇지.
노인들이 눈도 안 좋은데 언제부터인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계속 들여다보고 있는것이 진짜 신기하다.
나도 한쪽으로 누워서 유튜브로 이것저것 보다 보면 1,2시간은 휙 지나간다. 눈이 시려서 인공눈물을 넣어가며.
그래도 책 보는 것보단 나은 것이 조명아래서 책을 보면 눈알이 더 빠지더라.
그래서 눈도 쉴 겸 쇼핑몰에 나가본다.
포목상집 딸이어서 그런지 예쁜 천이나 이불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시름을 잊게 된다. 마치 아기가 엄마품에 안긴 것 마냥. 내가 이민 와서 제일 놀란 것은 카드 종류( 생일, 결혼, 졸업 등등)도 많을 뿐만 아니라 엠보싱 된 종이 질이 어찌나 좋은지,
게다가 디자인과 색감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황홀 그 자체였다.
카드를 주고받는 문화가 아니었던 한국에서 자란 사람으로서 또 한 번 놀란 일이 있었다.
10여 년 전 내가 터키 이스탄불에 살 당시, 밴쿠버에 다니러 왔다가 공항으로 가는 길에
아들, 며느리를 잠깐 보는데 서양며느리가 카드를 건네주었다. 나중에 열어보니 영어와 삐뚤빼뚤한 한글로 인사말만~ 쓰여 있었다.
나는 당연히 현금이 들어있을 줄....
봉투도 캐나다 지폐가 떨어질세라 조심스레 열어봤건만.
참, 친정 모친 장례식 때에도 서양 사돈은
카드만 달랑, 나중에 보니까 부조금 개념은 없고 상 당한 집에 음식을 만들어서 가져다주는 것이 위로 문화였더라.
한국인은 무조건 캐쉬 위주인데 반해서.
예쁜 카드, 빈 봉투 문화에 익숙해지지 않는 이 질긴 DNA란.
슬렁슬렁 몰 안을 걷다 보면 구수한 커피냄새를 따라 들어가서 홀짝홀짝 커피를 마시면서 캐나다의 겨울생활을 이기기 위해 별 짓을 다 해봐도 지루한 건 변함이 없다.
이불도 보고 예쁜 종이컵, 말랑한 젤리도 보면 기분이 좋아지지만 그것도 잠시
결국은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로 지루함을 겨우 달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