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품이었는데
행커치프(handkerchief, 핸커치프)라고 불렸던 손수건.
젖먹이 아기부터 노인까지 사용했던 손수건이 내 느낌으로는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 것 같다.
아기가 젖 먹고 트림하다가 토하면 얇고 부드러운 가제(거즈) 수건으로 닦아주고
초등학교 입학식에는 엄마들이 가슴에 직사각형 하얀 면수건을 옷핀으로 꽂은 옷을 입혀 보냈다.
그 옛날에는 왜 그렇게 아이들이 코를 많이 흘렸는지, 그것도 누런 콧물이.
잘 빨아 입히지 못한 겨울 스웨터의 소매로 콧물을 훔쳐서 묻은 콧물이 말라 붙기도 했다.
추운 겨울의 양지바른 운동장에 쪼그리고 앉아 있으면 그 말라버린 콧물이 생선 비늘처럼 반짝거렸다.
그래서 초등생 콧물용 손수건도 있었고 여중생이 되면 패션처럼 손수건을 갖고 다녔다.
손수건 사치가 그 시절부터 유행처럼 번졌던가.
각종 꽃무늬와 현란한 색깔의 손수건으로 땀을 닦고 음식 먹다가 입도 닦았다.
나도 나름 검은색 바탕에 화려한 보라색 난초가 그려져 있는 시크한 손수건을 갖고 다녔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요 면 조 면으로 돌려 쓰면 요즘처럼 공기가 나쁘지 않아서 일주일 정도 빨지 않고 쓰다가 물이 담긴 대야에 휙 던지고 가면 담주에는 깨끗하게 다려진 채로 책상 위에 있었다는.
아버지들의 손수건은 주로 흰색이나 회색 바탕에 남색과 붉은색의 격자 패턴이 많았고 엄마가 정성스레 준비해서 현관에서 구두를 다 신으신 아버지에게 손수건을 건네셨다.
주로 면이기도 하지만 한여름엔 아사면이 주 소재였다. 이불은 더울 때는 인견을 쓰지만 손수건은 인견이 물을 흡수 못 해서 적당치 않았다.
양복점 쇼윈도우를 지나다 보면 마네킹에게 입힌 멋진 양복에는 윗 주머니에 반드시 행커치프가 꽂혀 있었다. 그 재질은 알록달록하거나 기하학적 무늬의 실크 수건이었던 기억이 난다.
송창식 윤형주가 만든 남성 듀오인 트윈폴리오가 부른 해외 번안곡인 ' 하얀 손수건'의 가사 내용처럼 감성적으로 쓰인 손수건은 사실 오래된 가요에 많다.
연인과 헤어져서 떨어져 내린 눈물로 적셔진 손수건 사연들이.
옛날 결혼식에서는 엄마들이 딸 결혼식에서 눈물을 닦는 장면이 종종 있었다.
특히 맏딸이 개혼일 경우에.
그때나 지금이나 엄마들이 한복을 예식에 많이 입는데 눈물이 나면 급히 저고리 소매 속에 넣어 두었던 손수건을 꺼내서 눈물을 닦기도 했다.
이렇게도 손수건이 생활필수품이요 없어서는 안 될 아이템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손수건이 사라져 버렸다.
대신에 클리넥스 티슈는 아기들 차지, 어른들은 식당에서 종이 냅킨으로 입도 닦고 코도 풀게 되었다.
반세기 전만 해도 푸세식 화장실이 대부분이던 시절에는 신문지나 잡지 표지를 떼낸 종이를 굵은 실이나 노끈으로 걸이를 만들어서 끼운 종이를 뻣뻣하면 비벼서 사용했....
인쇄술도 발달이 안 돼서 손에 검은 잉크가 묻어났던 그런 시절도 있었다.
그러다가 이름도 귀여운 '뽀삐'화장지가 나왔으니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보드랍기가 명주(실크)천 같고 검은 잉크가 범벅된 신문지만 보다가 백설 같은, 천도 아닌, 종이도 아닌 두루마리 휴지의 탄생이라니.
짠돌이 가장들은 비싸기도 하고 사치품 같아서 아이들에게 두 칸 이상 못 쓰게 하면 엄마들은 위생상 많이 써야 된다고 쓸데없지만 절실한 부부 싸움도 벌어졌었지.
한술 더 떠서 식탁이 없던 시절에 앉은뱅이 밥상 옆에 바로 그 두루마리 휴지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더랬다.
한국에서는 그렇다 쳐도 이민을 와 보니
어느 한인 가정집에 초대받아 가니 식탁 위에 그 두루마리 휴지를 냅킨 대신 사용 하더라.
한국 방송을 보면 먹방이 많은데 이상하게 출연자들이 냅킨을 거의 쓰지 않고도 흘리거나 입 주위에 음식을 묻히지도 않고 먹는 신박한 모습에 놀라곤 한다.
식탁에 냅킨도 없는데 연출을 그렇게 하는 건가?
내가 사는 외국에선 냅킨 인심도 후할 뿐만 아니라 냅킨이 모자라면 거의 패닉 상태가 된다. 음식을 떨어뜨리기도 잘 하고 입가에 묻히기도 하니까. 일단 포크나 수저 같은 것도 냅킨 위에 놓아주고 엑스트라 냅킨도 뭉텅이로 갖다 준다. 거의 낭비 수준으로.
그래서 몇 십 년 이민 생활을 하다 보니 손수건에 대한 필요성도 없고 모든 빨래를 강력한 세탁기로 돌리니 손바닥만 한 손수건 한 장 빠는 손빨래는 거의 망각 수준이 되었다.
세월이 어찌 빠른지 오늘이 모친이 돌아가신 지 15주기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부모님이 돌아 가시면 남편이 가고 그 다음에 아내들 차례가 다가온다. 영화 제목처럼 '사라짐의 순서'가 맘대로 되진 않지만 그렇게 사라지고 잊혀지는구나.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친척 결혼식에 가신다고 곱게 차려입은 한복에 맞춘 비즈(구슬)백을 드셨던 모습이 떠 올랐다. 요즘의 what's in my bag?처럼 백 안을 들여다보니 부채와 지갑 그리고 연한 핑크색의 손수건이 들어있었다. 향수도 안 쓰던 때에 분 냄새가 은은하게 배어있던 모친의 손수건 냄새가 나의 기억을 되감았다.
그 생각을 하자 나는 지금 손수건 한 장도 없다는 생각에 급 우울해졌다.
눈물 콧물을 닦는 용도만의 손수건이 아닌 추억과 이야기들이 씨줄 날줄처럼 짜인 직물이 바로 손수건이었기에.
동시에 '그 많던 싱아'가 아닌 '그 많던 손수건은 문명의 이기와 편리함을 추구하는 기능이 우선되는 세상이 오자 그렇게 활용성이 많던 물건이 퇴물로 슬그머니 밀려난 것 같아서 애잔하다.
우리도 때가 되면 다른 사람들이 갔던 길로 갈텐데 그러다가 산 자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가겠지.
난 손수건이 한 장도 없는 관계로 사진으로 남길 수도 없어서 워낙 알뜰하고 뭐든지 손으로 잘하는 '저장성향'이 있는 친구와 다한증이 있는 친구에게 손수건이 있냐고 물으니 좌르르 나오더라.
색상과 무늬가 다르듯 우리네 인생도 이처럼 다양한 것임에 이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