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소울 만드신 분
이민 생활에서 예전에는 한국 식품이 제일 아쉬웠고 한국에 남겨진 부모 형제 친구들이 그리웠다. 남편이 한국 갔다 올 때는 떡, 당면, 김, 고춧가루 순으로 트렁크가 터져라 하고 사 날랐다. 한 때 국제선 짐 무게가 35kg에다 두 개까지 부칠 때가 있었는데 정말 신바람이 나서 이불부터 작은 다과상까지 바리바리...
요즘은 대형 한인 마트들과 캐나다 회사가 사들인 중국 마트까지 한국보다 더 싸게 파는 미끼 상품들이 지천이다.
물론 다양하진 않지만 옛날에 비해서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풍성한 한국 음식들이여.
한식당들도 많고 빵집도 꽤 있는데 웬 빵값이 그리 비싼지 손이 선뜻 안 나가고 괜히 없는 당뇨를 떠 올리면서 스스로 가스라이팅을 한다.
해외에서 식품은 그렇다 치고 이젠 자동차까지 말하면 배부른 흥정인데.
한국이 자동차 강국으로 잉태되던 시점에
남편이 포니 생산 당시 현대 자동차에 근무했었다.
그래서 포니를 탔던 1세대로써 북미를 휩쓰는 한국 차들과 유럽에서 생산돼서 보였던 코나를 보면서 속으로는 흐뭇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이민 초기에는 캐나다의 엄청난 땅덩어리에 걸맞게 무거운 미국차를 썼는데 기름을 많이 먹고 고장이 잦아서 언젠가부터 일본차를 쓰기 시작했다. 밴쿠버의 온화한 기후에 적합한 가볍고 고장이 거의 없어서이다.
지금은 하이브리드를 많이 생산하는 브랜드를 쓰는데 전기차처럼 충전하는데 신경을 안 써도 되고 기존의 차보다 기름 값이 1/3은 절약되는 것 같아서 은퇴한 노인에겐 적합해서 잘 타고 있다.
오히려 아이들은 한국차가 디테일과 연비가 미쳤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면서 타고 있다.
작은 아들은 현대 벨로스터의 수동을 구해서 탄다. 벨로스터가 처음 나와서 광고를 할 당시에 뒷문의 손잡이가 상단 구석에 있는데 유령이 나와서 손잡이를 못 찾아서 그냥 가던 희한한 광고가 있었다.
서양 안사돈마저 한국인 사위라고 기아차를 타고 바깥사돈은 거구에다 스포츠를 즐겨서인지 미국산 지프를 좋아한다.
큰 아이는 워낙 차를 좋아해서 한때 스포츠카에 꽂혀서 첫 애를 임신한 와이프랑 차를 보러 매장에 갔더니 가족용 밴을 권했다고.
결국 Miata 2인승을 사니까 세일즈 맨이 가족은 어쩌려고 하는 눈총을 보내더라나.
며느리도 기아 차를 좋아해서 타고.
신차식이라고 2인승 스포츠 카에 나를 태워서 쌀쌀한 날씨에 휘슬러로 드라이브를 했는데 선루프 열고 달리다 왔는데 집에 와서 감기 들고 폭풍 설사를 했다는.
큰 애는 돈을 벌면서 생애 첫 차로 밴쿠버에 최초로 들어온 Mini Cooper를 사서 쓸고 닦고 하던 차 마니아가 이젠 결국 차를 만들어 보겠다나 뭐라나.
중고 기아 소울을 사서 부품을 다 빼고
엔진만 사용하면서 새 부품으로 교체하고 차 껍데기는 새로 디자인해서 핸드메이드 차를 만든다고.
설명을 해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고 그런가 보다 하는데 주말에 막내 손자랑 작업하는 중에 사진 몇 장을 보내왔다.
너무 재미있는 것은 엄청난 양의 부품을 인스펙션 하고 합격품만으로 차를 만들어 출고하는 것을 상상해 보는 일이었다.
하기야 식품도 제조일과 검수한 사람의 이름이 찍히는 세상에서 자동차는 잘못 타면 움직이는 흉기이니 철저하게 검수를 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해체한 부속에서 몇 분의 이름이 찍혀있는데 그분들의 인스펙션과 여러 단계를 거쳐 조립되고 출고되면 국내와 해외로, 또한 해외 자체 공장에서 만들어진 한국 차들이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을 것이다.
차 내부라서 뜯지 않고는 못 보는...
남편이 현대 자동차에 근무할 당시만 해도
자동차를 만드는 나라라는 자부심이 꽤 컸다.
그 당시 우러러보던 롤스로이스도 독일로 가고 재규어도 인도에 팔렸으니 세상 일
아무도 모른다.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 조선업을 시작하려고 런던의 사무실에 있던 남편과 직원들한테 외국회사를 설득하기 위해 거북선이 있는 한국 지폐를 보여주려고 한국돈을 가져오라고 했다고. 그러나 해외 근무자들은 한국돈이 없고 출장자에게 있어서 정주영 회장이 받아서 선박제조의 긴 역사로 설득하던 시절이 이젠 레전드로 남아있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던 세월이 어언 반세기 흘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눈부시게 발전한 자동차 강국의 위엄을 이제는 전 세계가 다 알고 있다.
우리 집도 아버지 세대를 이어 아들과 손자까지 한국 차를 타고 만지고 있으니 삼대 째 내려오는
전통이 앞으로도 주욱 계속되기를 빌어본다.
에어버스와 보잉으로 양분된 비행기 시장에도 도전장을 내밀어서 앞으로는 비행기도 만들어서 비행기 강국이 되기를 아울러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