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花樣年華) 1
서울에서의 한 달은 꽤 무시무시했으나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태평양을 건너 이곳에 올 땐 의뭉스런 기대 한 가득이었으나 이제는 그게 기대든, 미련이든, 희망이든, 뭐가 됐든 내려놓을 수 있을 성싶다.
뭐 또 놓아주지 않으면 어쩔 텐가.
이 무거운 걸 머리에 이고 지고 남은 생을 견디단 심각한 경추 압박으로 목숨이 위태로울 판이니.
이 무모한 여행의 시작은 1년 전 차고에서 우연히 발견한 아주 오래전 지인들과 주고받은 백여 통은 족히 넘어 보이는 편지 꾸러미 탓이다.
그 케케묵은 꾸러미에 든 건 비단 편지만은 아니었다.
찬란한 허상과 허망, 순수함과 영악함, 오해와 진실 등이 뒤섞인 내 눈부신 청춘이었다.
그 거역할 수 없는 눈부신 빛에 미혹돼 오랜동안 떠돌던 사막을 벗어나, 간신히 잊었다 믿었던 오아시스로 기어이 발을 들였다.
비가역적 백기투항이었다.
누군가 그랬다.
과거는 힘이 없다고. 그럴지도.
그러나 생각보다 추억은 만만한 놈이 아니다.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지랄 총량의 법칙'과 열역학 제1법칙에 의거해 언젠간 당신도 이 놈에게 호되게 당할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처럼.
나는 지난 시간 그놈의 괴력을, 저력을, 끈질김을 지나치게 무시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애써 놈을 외면하다 기어이 뒤통수 호되게 맞은 것이다.
내 삶에 대한 통찰이 이다지도 부실했으니 그래도…나는 싸다.
이메일도 카톡도 없던 시절이었다고는 하나 그때도 편지는 그리 일반적인 통신 수단은 아니었다.
가장 사적이며 내밀한 매개였다.
그래서 편지는 200여 통에 가까운 적잖은 양이었으나 정작 발신인은 열 손가락도 채 안된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편지 한 두 통을 주고받은 발신인들을 제외하면 주요 발신인은 결국 다섯 손가락 내외인 셈이다.
모두 내 청춘에 뜨거운 화인(火印)을 남긴 이들이었다. 간혹 그때는 화인인지 몰랐으나 이제 와서 '앗 뜨거' 한 편지들도 있다.
뒤늦게 화인임을 알아챈 편지의 발신인 중 한 명은 K다.
고교 1년 후배인 K는 내 열여덟 생일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보단 내가 가지고 있는 게 더 의미 있을 것 같다며 그가 열일곱 평생을 모은 우표스크랩북을 편지와 함께 건넸더랬다.
당시 나는 그 낡은 겨자색 가죽 커버의 스크랩북을 건네받고는 아주 잠시 뜨악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봤던 듯하다.
생일 선물로 우표수집책이라니… 참으로 생뚱맞지 않은가.
이후 우리는 몇 통의 편지를 더 주고받았고 내가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K는 10여 통의 안부 편지를 더 보냈다.
아니, 이제 보니 안부를 가장한 연서(戀書)였다.
K의 편지는 대개 수험생활에 대한 신세한탄으로 포장돼 있었으나 다시 읽어보니 실상은 그 행간마다 차마 전하지 못한 사랑과 그리움이 꾹꾹 눌러 담겨 있었다.
금방이라도 그 섣부른 감정이 터져 나올까 전전긍긍하는 마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감기 몸살로 심하게 앓다 겨우 일어났다는 날,
누군가가 몹시 그립다던 날,
경주 토함산에 다녀온 다음 날,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며 누군가를 떠올렸다던 날이면
K는 어김없이 나에게 편지를 썼다.
극도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조심한 탓 편지 내용은 대개 뜬구름 잡는 쪽으로 흘러가기 십상이었고 덕분에 글의 맥락 파악이 쉽지 않았다.
당시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그 행간 속 K가 끝끝내 전하지 못한, 심중에 감춰 둔 그 말 한마디가 무엇인지 자못 궁금하기는 했으나 굳이 그에게 물어 확인하지는 않았다. 그저 나는 건강히 남은 시간 잘 버티라는, 건투를 비는 상투적인 답신을 보냈던 듯싶다.
어쩌면 이게 더 그에겐 잔혹한 처사였으려나.
그때 내가 K의 그 조심스러운 마음을 눈치챘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제와 그 편지들을 찬찬히 읽어보니 그가 그토록 애달프게 그리워했던 이가 바로 나였을지도 모르겠다는 합리적 의심을 지울 길 없다. 어이없게도.
지금 와서 이 팩트 체크를 어찌해야 할지 알길 없으나 당시 K가 그의 인생에 전부였을 우표스크랩북을 건넸을 때 나는 눈치챘었야만 했다.
청량한 눈빛을 가진 그 소년이 평생(!) 애지중지했을 우표수집책을 넘긴 건 자신을 넘긴 것에 다름없었음을.
(혹여 내가 그 소년의 마음을 곡해하는 것이라면 부디 누군가 내게 알려주길, 그럼 마음의 빚을 덜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를 어쩌랴.
나는 K에게 우표스크랩북을 생일선물로 받았다는 사실조차도 이제와 그의 편지를 통해 어렴풋이 기억해 낼 만큼 부주의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이 부주의함이 결코 내가 당시 너무 어려서거나 미숙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반백 년을 살면서 그 시절의 나만큼 영민하고, 예민하고, 용감했으며 지적인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 누군가의 가냘픈 사랑을 알아차리기엔 너무 이기적이었으며 허술했을 뿐이었다고 해두자.
K가 대학에 입학한 후 우리는 몇 차례 만났던 듯한데 내 비루한 기억력 덕분에 당시 그와 나 사이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겨우 한 살 차이인 K에게 나는 꽤나 어른 행세를 했던 듯싶다. 겨우 내 나이 스물이거나 스물한 살이었다. 참으로 가소롭지 않은가.
내가 K에게 애써 여든 노파처럼 군 게 본능적 방어기제였는지 아니면 축적된 학습효과 때문이었는지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제
비로소 아주 오랜 시간을 건너 그에게 때늦은 안부를 건넨다
안녕 K? 혹은 안녕 K!
그 시절 난해하다 믿었으나
이제와 보니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였던 너의 행간을 조심조심 건너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에 이르러서야
그 시절 한 번쯤은 해줬어도 좋을 가벼운 포옹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