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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속유발자들 2

함께 해서 행복했던 그들에 대한 기억

by 난주

지난주, 근속유발자들의 첫 이야기를 쓰며 감사라는 감정을 새삼 느꼈다.

오랜 시간, 수많은 고비가 있었음에도 직장 생활에 대한 나의 자부심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본이 되어 준 상사와 선배들 덕분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오늘은 두 번째 이야기로 동료와 후배들에 대한 추억을 나누고자 한다.

때로는 가족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속을 터놓고 난관을 함께 헤쳐왔던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여러분 곁의 근속유발자들을 떠올리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어깨를 내어 준 그들


신입 사원 시절, 선배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직장에서 만난 동료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라는 충고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것은 타당하고도 합리적인 조언이다. 권한과 진급을 목표로 전투가 벌어지는 직장에서 누군가를 온전히 신뢰하고 뒤를 맡긴다는 것은 녹록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장에서도 우정과 사랑은 피어나듯이 직장에서도 진정한 인간관계는 싹틀 수 있다. 동갑내기 동료 S와 K, 각각 다른 회사에서 만났고 하는 일도 전혀 다르지만 온유한 성품과 현명한 태도가 닮은 그들은 척박한 직장 생활 중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다.


변함없는 믿음으로 나를 지켜 준 S

세련된 단발머리에 H라인 스커트, S의 첫인상은 차도녀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녀는 누구보다 정이 많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회사 전체를 통틀어 유일한 업무를 홀로 수행하는 터라 외로울 법도 했지만 그녀는 특유의 사교성과 따뜻한 배려로 많은 동료들 사이에서 인정받았다. 갑작스러운 발령으로 낯설어하고 있던 내게 그녀는 먼저 손을 내밀어주었고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함없이 곁을 지켜주었다.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언제나 너는 잘될 거라고 진심으로 지지해 주는 친구. 그녀는 나에게 동료를 넘어 마음을 나누는 단짝이 되어 주었다. 아들 둘을 키우는 워킹맘이면서도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살피는 여유를 가지고 있는 그녀에게 나도 더 단단하고 든든한 전우가 되어주고 싶다.


서로에 대한 존중 위에 우정을 쌓은 K

K는 못하는 게 없다. 젊은 나이에 임원에 오를 만큼 업무 역량이 출중하고 박사 과정을 밟을 만큼 학구열도 높다. 가정에서도 아내와 엄마, 주부 역할에 열심이다. 그러나 그 뒤에는 남다른 성실성과 끊임없는 성찰이 숨어 있다. 늘 기도하고 고민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그녀는 많은 고난의 시간을 극복한 성숙한 사람이다. K는 내가 힘들 때마다 누구보다 먼저 고민하고 주저 없이 나를 돕곤 했다.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선뜻 해외여행을 추진하고 집에 불러 따신 밥을 챙겨 먹이는 그녀는 동갑이지만 언니 같은 의지할 수 있는 친구이다. 친해진 지 수년이 지났지만 우리가 아직도 서로 존대를 하는 것은 이런 성숙함에 대한 존경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뒤를 지켜 준 그들


MZ세대가 자기중심적이라고 평하는 리더들이 적지 않다. 실제로 일부 젊은 직원들은 지나치게 이기적인 모습으로 업무나 조직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이는 개인적 특성일 뿐 전체의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후배 복이 있는 건지, 젊은 세대와 잘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좋은 후배들을 만나 새로운 변화를 경험해 왔다.


누구보다 열심히 업무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자기 관리를 하는 S를 보며 공부와 운동을 다시 시작했고, 나의 업무 역량을 인정하고 따라주는 H와 D가 있어 더욱 힘을 내서 업무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부드럽지만 불의에는 타협하지 않는 Y가 있어 어려운 결정에 용기를 낼 수 있었고,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항상 배우고 성장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K가 있어 가르치는 보람을 얻었다. 전략적인 사고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N이 있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고, 인생의 성장 과정을 함께 나눠주는 K가 있어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었다.


MZ세대가 기성세대에 비해 개인적 삶과 업무적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런 모습이 자신을 더 잘 이해하려는 의지와 한 번뿐인 인생을 꽉 차게 살아내고 싶다는 열정으로 비쳤고, 결과적으로 잠들었던 나의 몸과 마음을 깨워 또 다른 성장으로 이끄는 단초가 되었다.


부족한 나에게 아버지라는 애칭을 지어주고 무조건적으로 지지해 준 그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한다. 그들이 가진 잠재력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직장과 상사를 만나 행복한 직장 생활을 이어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직장 생활도 결국 사람이 전부다.


공동의 목표를 위해 각자의 역할이 부지런히 돌아가는 곳이 직장이지만 그것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사람이다. 능력과 인품을 고루 갖춘 사람 한 명이 조직을 키우고, 사리사욕에 사로잡힌 사람 하나가 조직을 흔든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성향과 양상이 다채로운 퇴사유발자들과 달리 근속유발자들은 그 결이 닮아있다. 그들은 뛰어난 업무 역량과 성실한 태도를 갖추고 있으며,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다.


결국 근속유발자들은 직장이라는 간판과 직함이라는 감투 뒤에서 술수를 부리는 퇴사유발자들과 달리 본질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직장 생활을 넘어 삶 속에서도 인간이 가지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며 직장과 사람 모두에게 가치를 더한다.


직장 곳곳에 숨어있는 근속유발자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전하며, 우리의 일터에 그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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