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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 사냥

직장 내 괴롭힘, 일곱 번째 이야기

by 난주

"부장님 왜 혼나시는 거예요?"

"어제 식당 예약이 잘못되어 있었데요."

"아니, 결혼기념일 예약을 왜 부장님한테 시키는 거예요. 상무님 너무하시네요."


아침부터 사무실은 소란스러웠다.

최 부장이 세 번이나 전화를 걸어 겨우 예약한 식당이 실수로 룸이 아닌 홀에 자리를 잡아 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집무실 너머로 고 상무의 격앙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병색이 완연한 최 부장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모습으로 자리에 돌아왔다.


올해로 마흔여섯.

팀장 발령을 앞두고 있던 최 부장은 전략기획팀에서도 손꼽히는 인재였다. 깔끔한 업무 처리와 책임감 있고 배려 있는 태도로 상사와 동료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던 그는 직장 정기검진을 받던 중 대장암을 발견했다.


다행히 좋은 의료진을 만나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쳤지만, 팀장 자리는 후순위였던 이 부장에게 돌아갔고 최 부장은 경영지원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투병으로 건장했던 체격이 눈에 띄게 줄어든 최 부장은, 팀장 직책에서 제외되고 부서까지 변경되면서 더욱 작아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양반'이라는 별명답게 그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업무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경영지원팀을 이끄는 박 팀장을 비롯한 팀원들은, 성실한 그의 모습에 인간적인 호감과 업무적인 신뢰를 가지게 되었다. 최 부장도 동료들과 유대를 쌓으며, 점차 몸과 마음이 안정을 되찾는 듯했다.



그러나 최 부장의 수난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경영지원팀 담당 임원인 고 상무는 처음부터 최 부장을 껄끄러워했다. 무조건적인 순종과 낯간지러운 아부를 부하 직원의 최고 미덕으로 간주하는 그에게, 명석하면서도 진중한 최 부장은 결이 맞지 않는 상대였다.


"거참, 사람이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하는데. 아파서 밀려났으면 조용히 있어야지, 고새를 못 참고 또 사람을 모으네?"


회식 자리에서 동료들과 웃으며 담소를 나누는 최 부장을 보며 고 상무는 읊조리듯 한 마디를 뱉었다. 옆에 있던 박 팀장이 뜨악한 얼굴로 고 상무를 보며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이내 힘없이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날부터 고 상무는 최 부장에게 사적인 부탁, 아니 부탁을 가장한 지시를 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약속을 위한 식당 예약은 최 부장의 몫이 되었다. 고 상무는 일부러 골탕이라도 먹이려는 듯 예약이 힘든 맛집만을 골라 번호까지 알려주며 능글맞게 웃어 보였다.


술자리가 있는 날이면 병환으로 술을 마시지 못하는 최 부장에게 운전대를 쥐여 주었다. 보다 못한 박 팀장이 대리 운전을 부르려고 하면 운전할 사람이 있는데 왜 쓸데없는 돈을 쓰냐며 눈을 번뜩였다.


심지어 사고만 치고 다니는 아들의 도피 유학 자료까지 번역하게 했다. 영어를 잘하는 인재가 부서에 있으니 든든하다고 호기를 부리는 고 상무의 모습에, 팀원들은 모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상한 것은 최 부장의 태도였다.


원래 예의가 바르기는 해도 자신의 기준을 넘어서는 일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선을 긋던 최 부장이었다. 그런 그가 고 상무가 시킨 일에 대해서는 한 마디 불평 없이 순종하는 모습이었다.


보다 못한 박 팀장이 최 부장을 조용히 불러냈다.

"최 부장, 많이 힘들지? 나도 도와주고 싶은데 힘이 없네. 인사팀이랑 이야기라도 한 번 해보는 게 어때?"


한참 침묵 속에 앉아 있던 최 부장은 결연한 표정으로 어렵게 말을 꺼냈다.


"팀장님, 생각해 주셔서 감사해요. 저 때문에 팀원들도 눈치 보죠? 사실 지난주에도 노동부 전화해서 괴롭힘 신고라도 할까 고민했어요. 근데... 제가 이년 전에 늦둥이 봤거든요. 애가 셋이에요. 와이프도 늦둥이 때문에 회사 그만두고 집에 있고요. 몸이라도 안 아프면 이직하고 싶은데 요즘 상태가 좋지 않네요. 어쩌겠어요. 버텨야지. 고 상무님 집에 가실 날만 기다립니다. 허허-"


절박한 사정을 털어놓으면서도 팀장에게 감사 인사부터 하는 최 부장의 모습에 박 팀장은 말을 잇지 못하고 시선을 떨궜다.


그 뒤로 삼 개월, 최 부장은 병세가 악화되어 병가를 내고 쉬게 되었다. 고 상무는 자리를 비운 최 부장 대신 또 다른 사냥감을 찾는 중이다.


본 사례는 여러 사람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인물이나 회사를 식별할 수 없도록 각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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