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일상 2025년 11월 14일
인도출신 영국의 미술가 아니쉬 카푸어가 분통을 터트렸다.
가디언지에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이민국 군인들이 자신의 작품 앞에서 사진촬영을 한 것을 두고 미국의 파시스트라고 일갈하며 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한다.
좀 우스웠다.
파시스트적이라면, 아니쉬 카푸르의 작업이야 말로 가장 '독재적'이고 '파시스트'적이지 않은가?
거대한 규모와, 거부할 수 없는 거울의 형식, 그림자조차 없는 절대적인 검은색을 내놓으며, 관객 위에 굴림하는 작가가, 정작 자신의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은 것을 두고 독재라고 비난하는 것을 보며, 현대 미술의 대가의 허접함이 허망했다. 이건, 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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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인 작가로 활동 중인 이우환이, 지금처럼 '상업화'되기 이전에 '주목'을 받았던 것은, 자신의 작품에서 '자아'를 제거하고 '관객'과 '여백'에게 '자리'를 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서구중심 주의'가 해체되고 제3세계가 주목받는 역사적 '변화'와 일치하는 대목이었고, 작가도, 화가가 화폭을 자신의 '영토'로 규정하고, '영토경영'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거울을 이용한 설치 작업도 마찬가지다. 거울로 무한공간을 연출하는 작업성향은 '복제'를 넘어 하나의 유행처럼 '반복'된다. (진화가 아니라 반복이다. 발전이 없으니..) 쿠사마 야요이의 무한공간도,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점을 찍은 것뿐 그 이전의 무한공간 작업들과 차이점이 없다. 그 안에서 관객은 무한에 '압도'된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 이것이 '독재'가 아니고 무엇인가?
'독재적 성격'이 숨어있는 예술은 '자본'을 만나서 진화한다. 무한 이미지와 같은 패턴의 장식이 백화점 벽면을 채우는 순간, 관객이 아닌 길을 걷는 행인들은 '환영'과 함께 백화점의 세계 속에서 '지갑'을 연다. 거대한 벽면이 채우는 '숭고'한 화면은, 그 이전에 많은 예술이 이르렀던 '숭고'의 경지를, '과정'이 생략된 채, '결과'만 선취한다. 그렇게 예술은 사라지고 '상품'만 남는다.
파시스트적인 자신의 작품 앞에서 파시스트지지자들이 사진을 찍은 것은 두고, 작가는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숱하게 법으로 대응한 작가 다왔다. 법에 의존하는 사회는 그만큼 그 사회가 병들었다는 뜻이다. 학폭도 모두 법정으로 가는 우리 학교들이 병든 것처럼, 사회가 '상식'이 무너지면, 법이 많아진다.
명색이 예술가라는 사람이, 소위 '대표적 작가'로 대접받는 사람의 그 '옹졸함'이 놀라웠다. 자신의 색을 다른 작가는 쓰지 못하게 하는 것도 부족해서, '조롱'도 못 참는 그릇으로 무슨 '파시스트'를 운운하나... 추악한 대가의 모습이었다..
로버트 드니로도 지금 트럼프에 대한 비판 하는 와중에, 아니쉬는 어떤 행동을 했는가? 작가가 아닌 지식인으로서 그 어떤 사회적, 시대적 책무도 없었던 작가가 입에 미국의 파시스트를 운운하는 것은 불쉣, 개소리다. 소아 성애자 왕자를 겨우 축출한 왕가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은 작가다웠다.
#thegreatdays2025 14 Novembre #Anish Angry For What ? The funny situation where a dictatorial artist gets angry at a fascist #members of the U.S. Border Patrol pose for photographs at #Millennium_Park near the #sculpture #CloudGate also known as The #Bean, after snow fell overnight in #Chicago, #Illinois, November 11 #AnishKapo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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