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를 접수하다
안우진은 키움 히어로즈의 영구 결번을 노릴 수 있는 우완 에이스다. 안우진은 데뷔 시즌 150㎞대 강속구를 공략당하며 7점대 평균자책점에 그쳤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실력을 가다듬은 끝에 KBO리그를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안우진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이미 '당장 프로야구 선수로 뛰어도 통할 선수'라는 평을 받았다. 최고 156㎞의 강속구도 위력적이었지만, 100구 넘게 던져도 높은 구속을 유지할 수 있는 스태미나가 더 높은 평을 받게 해줬다. 윤석민 이후로 사실상 끊기다시피 한 우완 강속구 에이스 계보를 이어갈 재목으로 기대받았다. 이는 안우진이 201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키움의 1차 지명을 받는 결과로 이어졌다.
데뷔 1년차였던 2018년, 안우진은 모두의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올렸다. 1군에서 20경기에 출전하며 41.1이닝을 던지는 동안 7.1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평균 구속은 148㎞로 웬만한 KBO리그 투수의 최고 구속 수준이었다. 그러나 피안타 46개 중 6개가 피홈런이었을 정도로 타자들에게 쉽게 공략당했다. 야구 외적인 문제로 비시즌을 제대로 준비하지는 못했다고 해도, 실망스러운 성과였다.
데뷔 2년차, 안우진은 풀타임 선발투수의 기회를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기대 이하의 성적에 그쳤다. 2019년 안우진의 포심 패스트볼 피안타율은 3할 4푼 4리였다. 아마추어 시절 안우진에게 6억 원의 계약금을 안겨준 강속구가 그의 발목을 잡은 셈이었다. 이듬해 키움의 신임 감독으로 취임한 손혁은, 안우진에게 단 한 번의 선발 기회도 부여하지 않았다. 선수 본인도 선발로서 끊임없는 실패에 지쳐 불펜 전업을 고민했다.
포기하지 않았다. 안우진은 2021년부터 다시 선발투수로 경험을 쌓으면서 풀타임 선발에게 필요한 덕목을 공부했다. 무작정 힘으로 승부하는 대신, 타자와의 수싸움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제이크 브리검, 에릭 요키시 같은 팀 동료에게 몸 관리 요령을 물어보며 선발에 적합한 몸을 만들었다. 체격이 좋아지니 신인 시절 148㎞이었던 평균 구속이 153.5㎞까지 올랐다. 유리한 수싸움을 위해 최고 150㎞의 고속 슬라이더도 장착했다.
2022년, 안우진은 KBO리그에서 가장 많은 이닝(196IP)을 던지면서도 가장 낮은 평균자책점(ERA 2.11)을 기록했다. 224개의 삼진을 잡아내면서 최동원의 KBO리그 토종 투수 단일 시즌 최다 탈삼진(223개) 기록을 경신했다. 2014년 이후 KBO리그 역사상 네 번째로 적은 득점 지원(경기당 3.54점)을 받으면서도 15승으로 다승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양현종(2017년) 이후 5년 만에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토종 투수가 됐다.
안우진을 KBO리그 최고의 투수로 인정받게 만들어준 것은 자신의 몸보다 팀의 성적을 중시하는 '에이스로서의 책임감'이었다. 안우진은 2022년 포스트시즌 5경기에서 26.2이닝을 던지며 2.03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는 투구 중 손가락이 찢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유니폼에 피를 묻혀가며 꿋꿋이 마운드를 지켰다. 이날 안우진의 투혼에 공명한 키움 선수단은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7대 6으로 승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