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프로야구 레전드,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다
다카쓰 신고는 키움 히어로즈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마무리 투수다. 신고는 키움의 창단 원년 시즌 외인 투수로 활약하며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사상 최초 한·미·일 프로야구 세이브의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91년 일본 프로야구(NPB)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다카쓰는 2007년까지 통산 286세이브를 올리며 NPB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군림했다. 2004년과 2005년에는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진출해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마무리로 활약하기도 했다. 전성기 시절의 별명은 '미스터 제로'. 일본 시리즈에서 10경기에 등판해 단 한 점도 내주지 않는 특급 활약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이런 다카쓰가 KBO리그 무대를 밟았던 것은 키움과 다카스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덕분이었다. 다카쓰는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여전히 현역 욕심이 컸다. 다만 일본과 미국에서는 다카쓰를 불러주는 구단이 없었다. 한편 신생 구단인 키움은 야구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만한 무언가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키움은 S급 선수를 영입할 형편이 안 됐다. 오히려 있는 선수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해야 할 판이었다.
아마도 다카쓰에게 있어 KBO리그는 독립리그보다는 훨씬 폼 나게 현역 생활을 연장할 수 있는 무대였을 테다. 키움에게도 다카쓰는 구단의 지갑 사정에 무리가 안 가는 선에서 영입 가능한 최고의 스타였을 것이다. 2008년 6월, 키움은 제이슨 스코비의 대체 외국인 선수로 다카쓰를 18만 달러(계약금 6만 달러, 연봉 12만 달러)에 영입했다.
키움의 승부수는 성공적이었다. 다카쓰의 한국행은 확실한 이슈 메이킹이 됐다. 다카쓰의 한국 무대 도전을 다큐멘터리로 만들고자 했던 NHK 방송국을 비롯, 한동안 외국인 관객들이 목동 야구장을 찾는 일이 벌어졌다. 경기 내적으로는 다카쓰가 1승 8세이브, 평균자책점 0.86의 성적을 올리며 '미스터 제로'가 건재함을 보여줬다. 야구 역사상 최초로 한·미·일 프로 리그에서 세이브를 올리는 대기록도 세웠다(2호 오승환).
다카쓰와 키움의 동행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8년 겨울, 키움은 다카쓰와의 재계약을 포기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김시진 감독이 다카쓰를 탐탁치 않아 했다. 최고 130㎞ 후반대의 느린 구속과 40대에 접어든 고령의 나이는 '연투 가능한 파이어 볼러'를 선호하던 김시진 감독의 취향에 맞지 않았다. 둘째로, 키움은 약팀이었다. 팀이 이기는 상황에서나 등판하는 마무리 보직에 외국인 선수 슬롯을 낭비할 이유가 없었다.